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발로키테스바라, 관음의 또다른 이름

기자명 법보신문

스미스 칼리지에서 연수를 하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중 티베트 출신 학생들도 있었다. 이 대학에서 티베트불교를 가르치는 제이 가필드 교수의 배려로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이었다. 제이미 허버드 교수의 강의를 청강할 때 만났는데, 생김새도 분위기도 다른 티베트인들과 전혀 달랐고 유창한 영어에 자연스럽게 미국학생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라마’라는 성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미국학생들과 달리 나에게 무관심한 그의 태도 때문에 학기가 한참 흐른 뒤에 그 학생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짧은 대화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뉴욕주에 있는 사원이 집이며 아버지가 티베트 스님이라는 사실과, 드럼과 록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키드였다.


스미스 칼리지는 아주 작은 학교지만 그 학생을 다시 만난 것은 다음 해 봄이었다. 도서관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먼저 아는 체하며 인사를 했다. 이번 학기 피터 그레고리 교수의 ‘아바로키테스바라’ 강의를 듣고 있는데 무척 재미있다면서 장차 티베트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수업이 있다면서 급히 강의실로 향하며 이번 방학에 뉴욕에 있는 자기 집, 즉 티베트 사원에 오라면서 주소를 적어주었다. 록음악만 알던 아메리칸 키드가 대학에서 불교를 배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못 느꼈던 동질성을 나에게서 느끼는 듯 했다.


‘아발로키테스바라’는 피터 그레고리 교수가 그 학기에 새로 개설한 강좌였다. 그는 당송대 선종 전공자로서 오랫동안 선종 강의를 해왔지만 점점 학생들의 관심이 식어 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청강했던 것이 그 마지막 강의가 되었는데, ‘육조단경’, 규봉 종밀의 ‘도서’, 그리고 관련된 2차 문헌을 읽고 발표하는 세미나 수업이었다. 우수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높았지만 ‘깨달음’, ‘돈오’와 같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은 학생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 개설한 것이 바로 인도와 티베트, 동아시아에서 성행한 관음신앙에 대한 강좌이다. 관세음보살의 여성성이 여대라는 학교 특성과도 맞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도 학생들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이는 불교에 대한 연구와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명상 이외에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과 신행요소가 수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얼마 전 거의 휴면상태에 있는 내 페이스북으로 미국에서 만난 스위스 여성 불자가 최근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받았다. 개인적인 연락 외에 거의 댓글을 달지 않지만 이번에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말미에 쓴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빈다는 축원에 감동되어 다시 답장이 왔다.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주었다는 염주 때문에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명법 스님
이처럼 이제 관세음보살은 아시아를 넘어 서양의 사람들에게 자비의 이름이 되었다.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폄하하지만 관세음의 따뜻한 손길은 명상이라는 지적인 수행 못지않게 서양인의 마음에 파고들고 있다. 우리가 서양에 전해야 할 불교적 가치, 아시아적 문화는 많다. 불교의 여러 가지 방편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전파한다면 한국불교를 알릴뿐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