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생이 일으킨 한 생각 무명이 그대로 여래의 마음

기자명 법보신문

중도는 참 법계이며 진실한 이치의 자리
아름답고 추한 모든 행들이 부처님의 일
유마경에서 유마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

 

▲수월관음상(모사). 11~13세기. 둔황연구원.

 

 

75. 선과 악이 불사다


現相品云 爾時 諸菩薩光明中 同時發聲 說此頌言 諸光明中出妙音 普遍十方一切國 演說佛子諸功德 能入菩提之妙道. 乃至 逆順善惡 無非佛事 如從二乘至佛是順行 從地獄至魔王是逆行. 又 如釋迦純行善 調達純行惡 身子志誠信 善星堅不信等 姸醜同歸 無非佛事.


‘화엄경 여래현상품’에서 모든 보살이 광명 속에서 동시에 소리 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광명 그 속에서 묘한 소리 울려 나와/시방세계 빠짐없이 온갖 국토 두루 하여/불자들이 가진 공덕 남김없이 설파하니/깨달음의 오묘한 도 들어갈 수 있었다네.


또한 나아가 “보살행을 실천하거나 실천하지 않거나 선과 악이 모두 부처님의 일 아닌 것이 없었다. 예를 들면 이승(二乘)에서 부처님 경지에 오르는 행과 지옥에서 마왕에 이르는 행, 또 석가모니의 순수한 선행과 조달의 가장 나쁜 악행, 사리자의 지극한 믿음과 선성의 뿌리 깊은 불신처럼 아름답고 추한 모든 행들이 똑같이 부처님의 일로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故經云 平等眞法界 諸佛不能行不能到. 又云 實際理地 大魔王不能行不能到 以佛魔俱不出法界之門實際之地 以是一法故. 若有行有到則 有人有法 在法界之外成二見故.


그러므로 경에서는 “평등하고 참다운 법계는 모든 부처님이 갈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다.” 하고, 또 “진실한 이치가 있는 자리에는 대마왕이 갈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부처님과 마왕이 함께 법계의 진실한 이치가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갈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곧 ‘인(人)’과 ‘법(法)’이 있어 법계 밖에서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된다.


강설) 잘못된 견해라고 번역한 ‘이견(二見)’은 ‘양변(兩邊)’이라고도 한다. 불교 사상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심명’에서는 글 전체가 모두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를 역설하고 있다. 양변이란 ‘미움과 사랑’ ‘거역과 순종’ ‘옳음과 그름’ 같은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데, 시비 분별로 이루어진 한 쪽에 치우친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여기서 중도는 ‘평등하고 참다운 법계[平等眞法界]’이며 ‘진실한 이치[實際理地]가 있는 자리’이다.


76. 크고 작은 모습이 서로


維摩經者 此云 淨名 卽是一切衆生自性淸淨心. 此心 弗澄而自淸 弗磨而自瑩 處凡而不垢 在聖而不淨. 故云 自性淸淨. 所言名者 以心無形 但有名故. 文中所說 以四海之渺瀰 攝歸毛孔 用須彌之高廣 納入芥中 飛佛土於十方 未移本處 擲大千於界外 含識莫知 日月懸於毫端 供具現於體內 腹納劫燒之燄 火事如然 口吸十方之風 身無損減 斯皆自心轉變 不動而遠近俄分 一念包容 無礙而大小相入.


‘유마경’에서 ‘유마(維摩)’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정명(淨名)’이라 번역하니 곧 모든 중생의 ‘자성청정심’을 말한다. 이 마음은 맑히지 않아도 저절로 맑고 다듬지 않아도 저절로 빛이 나며, 범부에게 있어도 더럽혀지지 않고 성인에게 있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품이 맑고 깨끗하다’고 한다. ‘정명(淨名)’에서 ‘명(名)’이라 말한 뜻은 마음에 형체가 없이 다만 이름만 있기 때문이다.


‘유마경’에서 설하기를 “아득히 넘실대는 온 바다의 물을 한 터럭 구멍에 거두고, 커다란 수미산을 작은 겨자씨 가운데 넣는다. 부처님의 국토를 시방세계에 날려도 본디 있던 자리를 조금도 이동하지 않고, 삼천대천세계를 이 세상 밖으로 내던져도 중생들이 알지 못한다. 해와 달이 터럭 끝에 매달리고 시방세계 공양물이 몸 안에 나타나며, 뱃속에 우주를 태우는 불길을 들여도 타는 불길이 여전하고 시방세계에 부는 바람을 몽땅 마셔도 몸이 손상되지 않는다.”라고 하니, 이는 모두 자신의 마음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도 멀고 가까운 경계를 순식간에 나누고, 한 생각에 온갖 것을 포용하여 걸림 없이 크고 작은 모습이 들어간다.


天台疏 云. 以須彌之高廣 納芥子中 無所增減 須彌山王 本相如故. 而四天王 忉利諸天 不覺不知 己之所入 唯應度者 乃見須彌入芥子中 是名不可思議解脫法門. 又 以四大海水 入一毛孔等 此是明不思議之大用也. 正以實慧與眞性合故 得有斯莫測之用.


‘천태소’에서 말한다.
커다란 수미산을 작은 겨자씨 가운데 넣어도 수미산이나 겨자씨에 조금도 증감이 없는 것은 수미산의 본디 모습이 여여(如如)하기 때문이다. 사천왕과 도리천의 모든 하늘 신은 자기들이 들어간 곳을 모르지만 오직 깨달은 사람만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보니 이를 ‘불가사의 해탈법문’이라 한다. 또 온 바다 물을 한 터럭 구멍에 들인다는 이런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커다란 쓰임새’를 밝힌 것이다. 바로 진실한 지혜와 성품이 하나로 되었기에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此如大智論偈云 水銀和眞金 能塗諸色像 功德和法身 處處應現往. 若須彌高廣 內於芥子 而無增減 亦不迫迮 不覺不知者 具不思議解脫者 迹居依報之境 得自在也 此義難解.


이는 ‘대지론’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수은이나 진금으로 덧칠을 하여/온갖 색을 아름답게 칠할 수 있듯/공덕이나 법신으로 작용을 하여/중생들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간다.


만약 커다란 수미산을 작은 겨자씨 안에 넣어도 그 크기에 증감이 없고 또한 억지로 줄어들게 한 것도 아닌데, 하늘 신들은 들어간 곳을 모르지만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감을 보는 ‘부사의 해탈’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자취는 세간의 경계에 있으면서 자재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이치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有師言 神力能爾. 今謂 不思議性 非天人脩羅佛之所作 神力何能爾.
有師言 小無小相 大無大相 故得入也 今謂 小是小 大是大 是自性小大. 不得相入者 小大大小 旣是他性之小大 何得入也.


어떤 사람은 “신통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말하지만, 지금 말하는 불가사의한 성품은 천인이나 아수라 또는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니 신통력으로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작은 것은 ‘작다’는 모습이 없고 크다는 것은 ‘크다’는 모습이 없어 서로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 말하는 ‘작은 것’은 작고 ‘큰 것’은 크니 수미산과 겨자씨의 성품은 크거나 작은 것이다. ‘서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작거나 크고 크거나 작은 것이어서 이미 다른 성품으로서 크고 작은 것이니 어찌 서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今解華嚴經 明一微塵 有大千經卷 觀衆生一念無明心 卽是如來心. 若見此心 則能以須彌入芥子 無相妨也. 下諸不思議事 窮劫說 不能盡 皆是此意耳.


지금 풀이한 ‘화엄경’은 한 티끌 속에 삼천대천세계 경전이 있음을 밝히고, 중생이 한 생각 일으킨 무명이 그대로 여래의 마음이라고 본 것이다. 만약 이 마음을 본다면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갈 수 있어 서로 방해될 것이 없다. 모든 불가사의한 일들을 영원토록 설하여도 다 설할 수 없는 것이 모두 다 이 뜻이다.


강설) 의상 조사는 법성게에서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있듯 또한 모든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있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고 하였다. 아주 작은 하나의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가 들어 있으니, 이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이나 부처님의 국토, 아득히 넘실대는 온 바다, 삼천대천세계가 빠짐없이 두루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하나의 티끌에서 시방세계를 헤아리니 시방세계가 작아지고 시방세계가 한 티끌 속에 들어가니 하나의 티끌이 커지게 된다.


▲원순 스님
부처님의 국토 하나하나가 시방세계에 가득 차되 이 시방세계가 하나의 티끌 속에 모두 들어가니, 이는 생각으로 헤아려 아는 것도 아니요 지혜의 눈으로 볼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세상사 모든 경계가 낱낱이 ‘자신의 맑고 깨끗한 마음’인 ‘자성청정심’ 이란 하나의 마음속에 언제나 있을 뿐이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