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핏빛 오월의 비문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5.23 10:29
  • 수정 2016.04.15 16:56
  • 댓글 0

“아들아 서러워 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오월항쟁에 나선 민주시민의 묘비명 가운데 하나다. 1980년 오월 그날로부터 31년이 흘렀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적잖은 사람들은 새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오월의 민주시민들이 꿈꾸던 새날이 과연 부익부빈익빈 세상이었을까.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그날의 민주시민들을 다시 학살하는 야만이 벌어지고 있다.

자칭 ‘보수단체’인 ‘국가정체성회복 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까지 직접 찾아가 5·18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단순히 의견 차이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들이 낸 청원서에는 오월항쟁에 이북의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더구나 그 단체가 정부로부터 국고지원을 받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기실 오월항쟁에 이북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전두환-노태우 일당이 학살극을 자행할 때부터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항쟁을 두고 “북괴가 침투시킨 제5열이 획책한 소요”라는 주장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했다. 물론, 터무니없는 그 주장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2011년을 맞아 다시 표면화한 이북 개입론은 당시의 논리와 사뭇 대조적이다. 북의 ‘간첩’이 민주시민을 가장해 소요를 ‘획책’한 게 아니라 되레 민주시민 학살에 앞장섰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펴고있다. 단체이름도 요란한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는 “살인자들은 한국군이 아니라 북한이 파견한 북한특수부대 군인들”이고 “북한군이 광주시민과 남한 군인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하여 무고한 광주시민을 사살”했다고 주장한다.

어떤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국군보안사령관 출신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지금껏 침묵만하고 있겠는가. 그들의 피 묻은 학살극을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으로 그 이상 좋은 게 있었을까.

그럼에도 왜 지금 갑자기 말살에 쇠살인 주장이 고개를 드는 걸까. 이명박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 스스로 오월항쟁을 폄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대통령은 오월 기념식에 취임 첫해만 참석한 뒤 지금까지 내리 3년을 참석하지 않고 있다. 따가운 눈총을 모면하고자 청와대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다. ‘국제기구 사무총장 접견’을 비롯한 공식 일정이 많아 “지방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정이 바쁘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쉽지 않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에도 카이스트 개교 40주년 행사, 경상북도 상주 자전거축전 개막행사, 경찰대학 졸업식을 비롯해 지방 행사를 자주 찾았다.

과연 그래도 좋은 걸까. 오월항쟁은 아직도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다. 오월항쟁이 벌어질 때 행방불명된 365명은 아직 유공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어둠에 묻힌 진실을 규명하려고 나설 섟에 국제기구에 엉뚱한 청원서를 내는 단체에게 혈세를 지원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개탄스럽다.

찬찬히 짚을 일이다. 저 야만에 우리가 침묵만 한다면 저들의 억지가 어디까지 갈까. 1980년 학살의 피 묻은 손으로 저지른 ‘10·27법난’까지 이북의 소행으로 주장하진 않는다며 우스개를 나눌 때가 아니다. 노상 개탄만 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손석춘 이사장
 
비판과 실천이 현실을 바꾼다는 진실은 올해 기념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30주년 기념식 식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 멋대로 ‘방아타령’으로 바꾸었던 그들은 따가운 여론과 민심을 의식해 올해는 그 노래를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래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살았던 저 민주시민들의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다시 가슴으로 쓴다.

“아들아 서러워 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