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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세계화는 신뢰로부터

기자명 법보신문

서양인에게 불교를 설명할 때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대자대비를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하여 말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이렇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서양에서 어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사랑과 희생이 아니라 강한 고집과 냉정함으로 표상된다.


내가 만난 미국인 중 어머니에 대하여 동양인과 같은 감정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춘기 반항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머니와 심리적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설명하면서 “어머니처럼”이라고 말하면 서양 사람들은 감동은커녕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므로 서양에 불교를 전할 때 문화적 차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했던 스님을 만나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그 중 하나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채식을 한다고 해놓고 뒤에서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고기를 먹는다고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럴 일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지만, 미국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문화의 뿌리가 청교도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왜 미국인들이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의상의 칭찬과 호의로 가끔 헛말을 하는 미국동부와 무뚝뚝하지만 진실 된 미국서부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짓말은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작은 약속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시간보다 늦은 적이 한 번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미국불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모임에서 노숙자들에게 저녁식사를 공양한 적이 두 번 있었다. 두 번째 공양하는 날, 하필 그 날 저녁 스미스 칼리지에서 불교학자들의 세미나가 있어서 동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후에 음식 장만하는 것만 돕기로 했다.


매사추세츠의 봄은 더디게 오지만 그 해에는 늦은 봄까지 폭설이 내렸다. 제설차가 차도는 신속하게 치웠지만 인도는 빙판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평소처럼 시간을 계산하여 길을 나섰으나 마기 그레고리의 집에 도착하는 데 평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도 않고 전화해도 받지 않으니까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짐작하고 그들끼리 일을 하고 있다가 꽁꽁 얼어 도착한 내 모습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렇게 고생해서 온 줄 몰랐다면서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차로 데리러 가겠다고 연신 미안해했다. 그 뒤로 마기 그레고리는 사소한 일도 귀찮아하지 않고 나를 태우러 기숙사까지 오곤 했다. 신뢰가 형성되니 그들은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었다.


불교교리를 설명하고 명상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님들의 행동이다. 미국인들은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준다. 문화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뢰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중요하다. 수행자가 신뢰를 주지 못하면 법을 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스님들의 자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외국에 나가면 방만해지는 스님들이 있다. 승복을 갖추어 입지 않거나 자유롭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말이 통하지 않고 풍속이 달라도 스님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은 서양 사람들도 느낌으로 눈치 챈다. 더구나 세상이 좁아져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세상 어디서든 법의 표상이 되려면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실천이 필요하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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