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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알렉산더의 후예들 ‘다르족’

기자명 법보신문

고향도 칼도 버리고 꽃 머리 장식하며 지상 정토 꿈꾼다

 

▲오똑한 코에 쌍꺼풀 짙은 눈, 갈색 눈동자. 확연한 유럽인의 외모를 지닌 다르족은 남녀 모두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양털로 지은 옷 위에 터키석 등으로 장식한 은제 장신구와 조개껍질 등을 엮어 만든 목걸이 등으로 한껏 치장하는 독특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지난밤의 경험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악몽이었다. 레로부터 70km 가량 떨어져 있는 알치의 숙소를 찾아가는 길, 한 밤의 여로는 공포체험이었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가운데 가로등과 중앙차선 따위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비포장의 굽이진 도로를 차는 좌우로 번갈아가며 휘청거리며 돌아 달렸다.


그러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도로 밖을 휙하고 비출 때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창밖으로 낭떠러지, 그 아래 까마득히 흐르고 있는 인더스강이 시커먼 모습을 불쑥 드러낸다. 곧이어 불빛이 방향을 바꾸면 강물도 어둠속 깊은 곳으로 다시 몸을 숨긴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할 텐데. 불빛이 닿을 때마다 잠깐 잠깐 드러나는 시커먼 강물, 어두워 더 까마득해 보이는 낭떠러지 옆길을 달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창밖에 묶여버렸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저 낭떠러지와 시커먼 강이 불쑥 들려들어 일행을 집어삼킬것 같아 겁에 질린 시선을 도무지 돌릴 수가 없었다. 이미 녹초가 된 몸을 차창에 아무렇게나 기대고 있다가도 차가 휘청이며 비탈길을 아슬아슬하게 돌아갈 때마다 온몸의 세포들이 오그라들듯 진저리를 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건지. 그렇게 바짝 겁에 질린 채 ‘다시는 밤중에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곱씹으며 라다크의 어두운 밤길을 내달렸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밤 우리가 차로 이동한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그것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차는 시속 40km 미만으로 느릿느릿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1시간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시간처럼 느껴졌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믿지 못할 것인지,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서야 새삼 깨닫는다.


새벽5시. 긴장을 풀지 못하고 그냥 잠든 탓인지 아침부터 몸이 뻐근하다. 따듯한 물로 샤워라도 한다면 훨씬 좋아지겠지만 호텔 직원이 방으로 갖다 주는 한 양동이의 더운물로 샤워를 하기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 간단히 ‘고양이 세수’만 하고 만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서두는 까닭은 오늘 찾아갈 목적지가 인도 국경의 끄트머리 ‘다(dha)마을’이기 때문이다. 화덕에 구워낸 밀가루빵 몇 장을 인도식 커리에 적셔 먹는 것으로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마을로 출발한다.
레로부터 서쪽으로 160km 가량 떨어져 있는 다마을은 라다크 지역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인도에 포함되지만 사실은 수 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 국경분쟁 때문에 ‘분쟁 지역’으로 남아있는 인도 북부, 민간인이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동네가 바로 다마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국경분쟁에 관심 있어서가 아니다. 다마을의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다르족 또는 드록빠으로 불리는 이곳 사람들은 라다크 지역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라다키들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갖고 있다. 라다키들이 북부 티베트 지역으로부터 이주해온 몽골인인데 비해 다르족은 아리안계통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양인, 유럽인의 외모를 갖고 있다. 아리안족이라고 하면 한때 독일의 히틀러가 주장했던 ‘순수 아리안 혈통’이 먼저 떠오르는데 흰 피부에 파란 눈, 금발머리가 아리안족의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리안족은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민족으로 기원전 1700∼1800년 사이에 남쪽으로 대이동을 시작, 지금의 인도까지 내려와 인도지역의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의 문화를 흡수하며 인도문명을 일으킨 혈통이고 유럽에서는 그리스 라틴계, 히브리어, 슬라브어계 등의 어족을 총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어쨌든 이들의 외모가 라다키들과는 확연히 달라 유럽인이나 인접한 파키스탄 지역의 사람들과 훨씬 유사한대 비해 힌두교나 이슬람교 대신 불교를 받아들여 문화적으로는 라다크에 흡수돼 있는 매우 독특한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유럽인 외모 지닌 라다크 소수민족

 

 

▲다마을에서 만난 다르족 여인들. 길게 땋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이고 형형색색의 꽃을 각자의 솜씨대로 엮어 머리를 장식한 다르족 여인들은 일상 속에서도 꽃머리 장식을 빼놓지 않는다. 단, 꽃머리 장식은 결혼한 후에만 가능하다.

 


알치에서 다마을까지는 차로 2시간여를 가야된다. 더구나 국경분쟁지역에 인접해 있어 사전에 허가증을 받아야만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필요한 서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차에 오른다. 차안에는 간밤에 묵은 호텔에서 준비해준 점심도시락 상자가 먼저 실려 있다. 다마을 인근에는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없어 호텔 측에 부탁해 도시락을 준비한 것이다. 본격적인 오지탐험이 시작되는 듯 마음이 설렌다.


간밤에 내린 비 덕분인지 라다크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촉촉한 아침 공기가 싱그럽다. 한 시간 여를 달렸을까. 지나치는 마을마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하나둘 길가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 등교시간이다. 타박타박 걸어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어느 나라나 아침 등교시간 아이들의 풍경은 비슷해 보인다.


잠시 속도를 내는가 싶던 차는 인더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길가에 멈춰 선다. 길옆 언덕을 따라 작은 오솔길 하나가 이어진다. 오솔길 입구에는 흙벽돌 몇 개를 쌓아 엉성하게 만든 문이 있다. 다마을 입구다. 문은 분명 문인데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게 생겼다. 그냥 “여기서 부터가 다마을”이라는 표시만 해 놓은 듯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조금 걷다보니 길은 금방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나무가 우거진 작은 골짜기를 따라 다랑이논 같이 생긴 텃밭들이 이어진다. 마을 입구에서부터는 제법 밑둥이 굵은 살구나무들이 줄을 잇는다. 추위에 강하고 가뭄에도 잘 버티는 살구나무는 이곳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과실수이며 말린 살구는 라다키들이 즐겨 먹는 간식거리다. 척박한 땅에서 춥고 건조한 기후를 이겨내며 열매를 맺는 살구는 라다키들과도 닮아있다.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다마을 입구엔 곳곳에 보리밭이 푸르고 제법 커다란 양배추와 빨갛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도 눈에 띤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지천에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꽃이다. 풀 한포기 없는 척박한 땅만 보아왔는데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은 이곳이 라다크라는 사실 조차 잊게 만든다.


그런데 꽃은 땅위에만 피어있는 것이 아니다. 다르족 사람들은 머리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해 ‘꽃의 부족’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마을 곳곳에서 만난 여인들의 머리는 하나 같이 한 다발 들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여러 종류의 꽃과 열매, 이파리 등 지천에 널려있는 풀과 꽃을 엮어 만든 꽃다발은 어느 꽃꽂이 전문가의 솜씨 못지않게 아름답고 화려하다. 여기에 은, 터키석, 동전 등 치장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엮어 만든 화려한 장신구를 더해 머리위로 한 가득 쌓아 올렸다. 밭을 매고 있던 호호할머니의 백발 위에서부터 마을 밖 장터에 물건을 사러가는 아주머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평범한 아이엄마의 머리까지 한곁같이 한 다발 꽃묶음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한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차를 한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내외는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다마을 토박이란다. 우뚝한 코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편은 분명 라다키들과는 다른, 유럽인에 가까운 얼굴을 가졌다. 부인 역시 오뚝한 코에 짙은 쌍꺼풀을 가진 갸름한 얼굴이다. 라다크 지역이 처음 외부에 개방된 후 이들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순수한 아리안 혈통’에 대한 이상을 좇아 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다마을을 비롯해 하누, 베마 등 인근 다르족 마을로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순수한 아리안 혈통’인지는 알 길이 없다. 도대체 ‘순수하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곳 다르족들은 지금까지도 다르족끼리만 혼인을 하고 다르족 사람이 마을 밖으로 나가 사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에서도 다르족 아이들은 자신들끼리만 어울리는 편이란다.


다르족 고유 언어도 라다키들의 언어와는 매우 다르다. 언어학자들은 이들의 언어가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어 산스크리트어의 원형이 이들 언어 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르족은 고유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아 기록된 역사는 없지만 대신 이들이 히말라야기슭에 모여 살게 된 역사를 말해주는 수 많은 노래들이 구전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이들이 로마로부터 와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노래도 있다고 한다.


현재 다르족들은 4개 마을에 4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파키스탄과 인도의 국경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마을들이 번갈아가면서 매년 축제를 열고 축제 때에는 이들의 역사를 노래로 부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개 마을이 파키스탄쪽에 속해 있어 이곳 주민들은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로마에서 왔다”

 

 

300여년 전 불교를 받아 들인 다르족의 마을엔 라다크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마을 곳곳에 초르덴이 세워져 있다. 

 


“우리 조상은 유럽의 로마로부터 왔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떠났을 때 따라왔던 군사의 일부가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외부와 고립된 다르족들은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섞여있는 토속종교를 형성했는데 300여년 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금은 불교와 토속종교가 혼합된 형태에 더 가깝지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스크야바빠 씨는 자신의 조상들이 로마로부터 왔다는 옛 전설에 확신을 갖고 있는 표정이다. 그들의 조상이 로마로부터 왔다면 그들은 왜 로마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을까. 어쩌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진저리치고, 거친 인더스강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가야할 귀향길이 너무도 아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전쟁도, 국경도, 이념도 없이 그저 아늑한 계곡 한 자락에 모여 소박하게 농사를 짓고 예쁜 꽃으로 머리 장식하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이곳에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조상들의 피가 이어진 까닭에 지금까지도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길 거부하며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조개껍질과 양털로 만든 소박하지만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길 즐기며 자신들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부는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보여주었다. 남편과 아내 모두가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조개껍질과 동전, 터키석 등 각종 보석을 엮어 만든 장신구의 양털옷을 입은 이들의 모습은 전쟁이나 다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저렇게 예쁜 꽃으로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데 전쟁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라다키들은 이들을 다르족이라는 명칭 보다는 ‘드록빠’라는 이름으로 더 즐겨 부르는데 “드록빠 같다”는 말에는 ‘바보스럽다’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다르족 남자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죠. 여자들도 라다키들에 비해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다른 부족과 혼인하지 않아요. 좋은 일자리도 마다하고 자신들의 마을에만 모여사니 라다키들도 이들이 조금 바보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가이드는 주인 내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설명하지만 정작 다르족들은 이런 외부의 시선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보다는 파키스탄과의 국경분쟁이 하루빨리 마무리되서 다르족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모이는 축제가 다시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라다크의 변방, 히말라야의 산자락 깊숙한 곳에 만든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이 평화가 깨어지지 않길 바라는 이들의 소망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원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다마을로 가는 입구. 국경분쟁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 허가증을 검사하는 검문소가 위협적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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