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굶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 전등록 권9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것은 노동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기계 문명은 인간을 편하게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안락이란 바로 퇴폐로 가는 기점이 된다. 인간의 몸이 편하면 편할수록 노동이 기계로 바뀌어지면 바뀔수록 인간에게 남는 것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뿐이다. ‘선(禪)’하면 흔히 생각하기 쉽다. 노동과는 아주 멀고도 먼 세계처럼, 아닌 게 아니라 선원의 정좌(正坐), 침묵의 부동자세는 육신의 움직임을 최대한 축소시키는, 노동의 말살 작업 같이 보인다.
그러나 선만큼 노동과 관련이 깊었던 것도 없는 것 같다. 정신의 극치에 가면 그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의 집중력은 그대로 일상의 움직임이 되어 터져 나온다. 여기에 구태여 ‘철학이 어떻고’ ‘인생이란 무엇이며’ ‘한이 어떻고’ 따위의 너저분한 찌꺼기가 붙을 리 없다. 중국의 선원을 보면 그 자체 내에서 자체의 힘으로 운영된 것 같다. 약간의 외부 신자들의 협력도 있었지만 집수리를 한다든가 채소 가꾸기, 나무심기 따위는 선수행의 또 다른 한 면으로서 영위되어 왔다. 그것은 깡마른 머리로서의 선이 아니라 대지의 훈훈한 입김 속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는 선수행이야말로 참다운 선의 본질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잊을 수 없는 스님이 있다. 특히 선에 있어서 노동을 주장한 소위 노동선(勞動禪)의 제창자인 백장회해(?~814)선사가 그 분이다. 백장의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은 너무나 유명하다. 백장선사 문하는 철저한 노동선이었다. ‘선즉농 농즉선(禪則農 農則禪)’의 가풍이 어느 문하보다도 엄격히 유지되었다. 중국, 특히 당송시대의 선원들은 일종의 집단 농장 체제를 갖추었다. 선은 노동으로 하여 더욱 생동력을 갖게 되었고 노동은 선에 의하여 더욱 능률적으로 영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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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육조의 디딜방아 이야기를 비롯해 공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오면 용성 스님의 선농일치(禪農一致)가 있다. 용성 스님은 북간도에 큰 농장을 마련해 놓고 농사지으면서 공부하는 대각교를 창설하신 분이다. 불행히도 이분의 유업을 이은 제자가 없어서 모처럼의 선농일치는 깨져버리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