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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템플스테이

기자명 법보신문

입하가 지났습니다. 계절로는 여름이라 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세상은 완연한 봄인 듯합니다. 만화방창의 꽃들은 지금도 저마다 간직한 향기를 지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봄이라 하든, 여름이라 하든,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입니다. 이 맘 때쯤이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사찰의 손길도 제법 바빠집니다. 겨울과 이른 봄에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멈추지 않지만, 그래도 산사를 찾는 발길은 이 때 부터 초가을까지가 제일 붐비기 때문입니다.


산사를 찾는다는 것, 며칠이라도 사찰에서 머무르려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단순관광 차원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고, 듣고, 나아가 경험해 보려는 의식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나아가 경험케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국 각지의 템플스테이 사찰이 운영프로그램 마련에 많은 고민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템플스테이 인기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요구가 다양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내보인 사찰들이 있어 아쉽습니다. 일부 사찰들이 홍보하는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한 예라 할 것입니다. 템플스테이 속에 이미 ‘휴식’이라는 의미도 배어 있는 게 사실이니 무슨 문제냐 하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프로그램이 없다’는 겁니다. 즉, 프로그램 없는 템플스테이가 ‘휴식형 템플스테이’인 겁니다.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절제하며 산사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지요. 이러한 템플스테이를 원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정해진 예불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하는 일이 번거롭게 여겨질 수 있고, 등을 만들고, 사경을 하는 일 역시 체질에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산사가 지향해야 할 템플스테이 방향이 이것일까요?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봅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산사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을 체험하는 것 아닙니까? 일상생활을 체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찰에 머무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산사에 담긴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수행’의 의미도 나름대로 챙겨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 배어 있습니다. 휴식(休息)의 ‘휴’는 나무 아래서 쉬는 겁니다. ‘식’은 스스로(自) 자신의 마음(心)을 보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찰에 머물기만 한다면 이는 ‘휴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휴’일 뿐입니다. 적어도 템플스테이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무의미합니다.


해당 사찰은 이렇게 강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템플스테이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서 화두 들며 정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일반 재가선원에서도 나름대로의 청규를 갖고 운영합니다. 그 나름대로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 때나 들어 와서 아무 때나 돌아다니는 선원은 없습니다.


옛 스님들과 선각자가 걸었던 작은 길 하나도 더 정성들여 가꿔가는 사찰이 있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의’를 위해 훼손한 자연의 일부라도 하루라도 빨리 복원하려 노력하는 사찰이 있습니다. 도심에서 벗어 난 사람들의 가슴에 담을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게 서로 연관되며 새로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창출되는 겁니다.

 

▲노현스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결코 ‘규제’나 ‘구속’이 아닙니다. 또 다른 세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는 작은 문(門)일 뿐입니다. 그 문을 여는 일이 어찌 또 다른 구속이겠습니까. 진정한 ‘휴식’의 템플스테이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노현 스님 속리산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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