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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한인사찰에서 여성의 역할

기자명 법보신문

그동안 미국 주류사회에서 부는 불교 붐과 한국기독교의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이민 2세들에게 불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현재 한인사찰이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인사찰은 이민 2세들이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이지만 한국 전통 중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요소가 온존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권위주의이다. 한국 유학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한국여자들은 미국에서 잘 적응하는 반면, 한국남자들은 적응을 잘 못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 보니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반면, 권위주의에 익숙한 한국 남성들은 낯선 문화에서 약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분석까지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한국에서 약자였던 나는 미국생활에 상당히 잘 적응했다.


우연히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대통령이 프레스룸에 모습을 나타내자 기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보통 미국문화는 위아래도 없고 예의범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미국사람들은 탁월한 성취를 이룬 개인을 존경하고 그 권위를 기꺼이 인정한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는 부정하지만 권위는 인정한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스승을 존경하긴 하지만 승가 전체에 대한 무조건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달라이라마 스님이 미국에서 록 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격의 없는 태도와 솔직함, 그리고 유머 때문이다. 반면 우리 스님들의 경직되고 권위적인 태도는 미국사회에 한국불교를 전파하는 일뿐 아니라 이민 2세들이 불교를 가까이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 중 여성 불자의 문제는 중요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찰에 나오는 신도의 대다수는 여성이지만 여성의 역할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음식을 장만하거나 청소하는 등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반면, 승속을 막론하고 한국남성들은 주차관리나 잔디 깎기 정도의 일을 하거나 여성들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다. 이는 비구와 비구니의 역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더 이상 성에 따른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에서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고착되어 있고, 더욱 놀랍게도 미국대학에서 활동하는 비구 스님조차 사찰에 돌아오면 전근대적인 성의 역할 분담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미국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남녀평등적 이다가 한국 사람과 함께 있으면 가부장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한인사찰은 여성 불자들의 헌신이 없으면 운영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적 사고에 익숙한 한인 2세 여성들이 그들의 어머니가 절에서 했던 역할들을 그대로 하려고 할까? 남녀가 공평하게 일을 나누어 한다면 몰라도 남녀차별적인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또한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차별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차별은 비구 스님들의 권위를 드높이기보다 불교의 전근대성을 두드러지게 할 뿐이다. 한인 2세의 포교를 위해, 나아가 미국사회에 융합되기 위해, 더 근본적으로 한국에서의 불교 발전을 위해 여성 불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왔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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