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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시리마

기자명 법보신문

썩어가는 육신 통해 생주이멸 가르침 전한 우바이

라지가하서 활동하던 거리의 유녀
웃타라와의 인연으로 불법에 귀의

 

 

▲삽화=김재일 화백

 


풍요롭고 활기찬 기운이 넘치는 도시 라자가하. 이곳에서 활동하던 유녀들 가운데 시리마라 불리는 매력적인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부처님의 시의(侍醫)로 유명한 지와카의 여동생이자, 역시 라자가하에서 이름을 떨쳤던 아름다운 유녀 사라와티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미모를 쏙 빼닮은 시리마는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녀의 몸값 또한 하룻밤에 천금을 부를 정도로 치솟으며 사그라질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렸다. 그런 시리마에게 어느 날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보름 동안 제 남편의 시중을 들어준다면 1만5000금을 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눈 꼬리를 살짝 치켜뜨며 고민하던 시리마는 이내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는 제안이라 여긴 시리마는 곧 짐을 챙겨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수마나장자의 집이었다. 시리마에게 제안을 한 여인은 바로 수마나의 며느리 웃타라(Uttara-)였다. 집에 도착하자 웃타라는 서둘러 시리마를 남편에게 데리고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보름 동안 이 여인이 당신의 시중을 들도록 해 주세요. 저는 그 동안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대해서 공양을 올리고 가르침을 청해 들으려 합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앞에 서 있는 시리마의 아름다움에 이미 푹 빠져 버린 남편은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마음대로 하구려.”
웃타라는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없이 기뻤다. 사실 이 일은 웃타라의 아버지인 푼나(Pun. n. a)장자가 생각해 낸 묘안이었다. 원래 푼나는 수마나에게 고용되어 일하던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함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승가에 대한 보시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리풋타에게 공양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 공덕 때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돈을 얻어 갑부가 되었다. 이를 지켜본 수마나는 느끼는 바가 있어 푼나의 딸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제안을 건넸다.


부처님 시의(侍醫) 지와카 여동생


하지만 수마나는 다른 종교를 믿는 자였다. 푼나는 그런 집에 딸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수마나의 간곡한 청과 친지들의 설득에 지고 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수마나의 집으로 들어간 웃타라는 공양은커녕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불법을 접하며 신심을 키웠던 웃타라는 삶의 의욕을 잃었고, 딸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푼나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시리마를 그 집으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사위가 유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웃타라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리마는 자신의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한 남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부엌을 들여다보며 빙긋이 웃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자리를 뜨기를 기다린 시리마는 다가가서 부엌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는 웃타라가 하녀들과 함께 부처님께 올릴 공양 준비를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순간 시리마의 가슴에 질투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야? 저 모습에 그렇듯 흐뭇한 미소를 떠올릴 정도라면 애정이 없는 게 아니잖아. 그럼 난 뭐야.’
뭔가 모를 배신감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시리마는 미친 듯 부엌으로 쫓아 들어갔다. 자신이 유녀로 그저 보름동안 돈을 받고 고용된 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질투의 화신이 된 그녀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한다. 요리를 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던 펄펄 끓는 기름을 떠서는 웃타라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던 것이다. 웃타라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선택 덕분에 부처님께 공양할 기회를 얻었고 또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은인입니다. 만약 내게 당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기름이 내게 화상을 입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화상을 입히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질투심으로 뒤덮여버린 시리마의 귀에 웃타라의 자비로운 말은 조롱처럼 들렸다. 더욱 더 감정이 격해진 시리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웃타라의 얼굴을 향해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그 순간 기름은 차갑게 식어버렸고 웃타라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멍하니 서있던 하인들은 서둘러 시리마를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웃타라는 이를 저지하며 그녀를 다독거려 주었다.


흥분이 가라앉은 시리마는 허탈하고 부끄러웠다. 웃타라는 결코 자신이 질투의 대상으로 삼을 여인이 아니었다. 한 순간 질투와 분노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을 돌아보며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게다가 그런 자신을 비난하기는커녕 따뜻하게 감싸준 웃타라의 모습은 그녀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던 그녀는 웃타라의 권유로 부처님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부처님은 그녀가 찾아오자 “분노는 분노하지 않는 것에 의해 이겨내야 하며, 악은 선에 의해 이겨내야 하며, 아까워하는 마음은 보시에 의해 이겨내야 하며, 거짓은 진실한 말에 의해 이겨내야 한다”는 취지의 설법을 해주셨다.


이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엄청난 죄를 저지를 뻔 했던 뼈저린 경험을 갖고 있던 시리마에게 부처님의 설법은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시리마는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했고, 이후 열성적인 신도가 되어 매일 8명의 불제자를 초대해서 공양을 올렸다.


아름다운 유녀가 손수 수행승에게 매일 공양을 올린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수행승들 사이에서 그녀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리마의 공양을 받은 적이 있는 한 수행승이 다른 지방에 갔다가 그 곳에 있는 수행승들에게 자랑삼아 시리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라자가하에 시리마라는 유녀가 있는데 그녀는 매일 8명의 수행승에게 손수 공양을 올린답니다. 음식도 훌륭하지만 그 보다 더 훌륭한 것은 그녀의 외모이지요.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랍니다.”


아직 시리마를 본 적이 없던 수행승들은 흥미진진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행승들 가운데 한 명은 정말 시리마에게 애타는 연모의 감정을 품게 되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인을 마음에 품게 된 그는 드디어 라자가하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리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리마가 공양하던 승가에 들어간 그는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시리마의 공양을 받는 날이 다가왔다.


매일 수행자 8명에게 공양


꿈에도 그리던 시리마를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수행승의 마음은 터질 것만 같았다. 안타깝게도 시리마는 그때 중병에 걸린 상태로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수행승은 생각했다.
“중병에 걸렸는데도 이토록 아름다운 걸 보면 예전에는 정말 눈부셨겠구나. 어찌 저리도 고울까.”
공양을 받고 정사로 돌아온 후에도 수행승의 머릿속에서는 시리마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고 결국 상사병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한편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시리마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시리마의 소식은 승가에도 전해졌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시리마의 시체를 화장하지 말고 그대로 묘지로 옮긴 후 짐승들이 입을 대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왕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왕은 부처님의 당부대로 실행하도록 대신들에게 지시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아름다운 시리마의 육체는 부풀어 오르며 부패해갔다. 곳곳에서 우글우글 구더기가 기어 나왔고 부패한 시체로부터 흘러내리는 액체는 사방으로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러자 왕은 부처님의 지시대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부처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부처님은 곧 모든 수행승들에게 시리마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시리마에 대한 연모의 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져누워 있던 수행승은 죽은 시리마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 그 곳으로 갔다. 도시의 사람들과 수행승들이 모이자 부처님은 왕에게 물으셨다.


“왕이시여,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이 여인은 지와카의 여동생 시리마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곳에 모인 자들에게 물으셨다.
“천금을 내고 이 여인과 하룻밤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침묵이 흘렀다.


“역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는 이 시체가 정말 그 아름답던 시리마란 말인가.”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룻밤은커녕 잠시 보고 있는 것조차도 고역이었다. 그녀를 연모했던 수행승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심하게 마음이 동요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정신이 들었다.
“영원할 것 같던 아름다움이 죽음 앞에서는 이렇듯 추하게 변하고 마는구나. 도대체 나는 그 동안 무엇에 그토록 집착하며 고통스러워했단 말인가.”

무상의 이치를 깨달은 수행승은 부처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부처님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계셨다.


 

▲이자랑 박사

그 순간 시리마 역시 얼굴에 미소를 띠지 않았을까. 신심 깊은 웃타라와의 기묘한 인연을 통해 부처님과의 만남을 이루었던 시리마. 이후 8명의 수행승에게 날마다 손수 공양을 올릴 정도로 그녀의 신심은 남다른 것이었다. 아마도 부처님은 그녀의 공덕을 완성시켜 주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죽어서까지 자신의 육체를 불살라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던 시리마. 그 어떤 공덕이 이 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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