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식편중 현상 갈수록 심화 학교 교육만 교육으로 착각

기자명 법보신문

‘듣는 그 자체를 들으며, 보는 그 자체를 되본다.(聞復聞 見復見)’  

능엄경


교육의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교육은 솥의 삼발[三足]처럼 정비례해야 된다. 학교교육, 그 이상으로 가정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가정교육 못지않게 또한 사회교육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의 문명을 흡수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학교교육만을 교육으로 착각, 가정은 학교교육을 위한 뒷바라지의 역할로 격하돼 버렸다.


교육의 울타리 밖으로 가정은 밀려나 버렸다. 그 결과란 무엇인가. 가정교육의 공허지대에 나타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십대들의 현격한 범죄 증가와 잔인한 사회악뿐이다. 출세주의, 치맛바람이 이 사회를 휩쓸고 있다. 지식 편중의 경향이 일류병을 낳았다.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기형인간이 탄생되었다. 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하나의 손놀림에서부터 하나의 걸음걸이까지가 모두 교육 아닌 것이 없다. 세수하고 목욕하고 식사하고 공부하는 것, 또 남과의 대화와 인간관계, 이 모두가 교육인 것이다.


오늘의 문명은 ‘지(知)의 문명’이라고 잘라 말한다 해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지(知)의 독주의 불균형에서 흉악범의 격증과 사회 부조리 현상이 나타났다. 왜냐? 이는 교육이 지·정·의의 조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학교교육만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이다. 가정이 교육의 권(圈)으로부터 밀려났기 때문이다. 전인교육,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를 다 같이 교육권으로 복귀시킨다는 것은 현대의 교육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석지현 스님

현대교육의 약점은 의문사의 빈약이다.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부호의 결핍이다. 선은 끊임없는 의문사로부터 시작된다. 선 공부로서의 공안 자체가 의문사의 집중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의문의 극치에 가서 산산이 파괴되어버리는 의문사의 전무지대로서의 완전을 얻자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의문의 응집은 나가는 빛을 되꺾어서 ‘빛이 나오는 그것을 되비쳐 보는 것(回光返照)’을 뜻한다.


알립니다

석지현 스님의 ‘가슴에 남는 명구’는 개인사정으로 당분간 연재를 중단합니다.

내년 초부터 새롭게 재개할 예정입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