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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윤리와 종교윤리, 다양성의 미학

기자명 법보신문

붓다 연기법은 시대가 요청하는 바른 가치

인간은 나약한 동물
그러나 약점이 강점
불완전함서 문명 발전
진화하는 미적 존재

 

 

▲ 불교윤리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다름의 미학'이다. 다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붓다가 제창한 연기의 윤리인 동시에 이 시대가 요청하는 바름의 가치이다.

 

 

‘한비자’에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나약한 존재라는 언급이 있다. 사람에게는 질긴 가죽이나, 위력적인 손발톱과 이빨, 그리고 민첩함과 같은 무기가 없다. 게다가 동물들과 달리 다른 사람의 보호가 필수적인 유년시절이 특히 길다. 이는 동물들이 탄생 직후부터 스스로를 추스르며, 1년 안에 성장을 완성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더딘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인간은 한없이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를 발전시켜, 뭇 동물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약한 가죽은 생존과 관련해서 의복과 주거문화를 파생한다. 그리고 무력의 약화는 도구와 무기의 계발을, 또 속도의 부족은 기계를 통해서 보충된다. 인간의 생장기간이 긴 것은 사회성을 통해서 보완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인류는 문명을 형성하게 된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이야말로 인류문명의 근본 토대인 것이다.


우리는 상어가 진화과정에서 가장 완전한 진화를 이룬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상어는, 백악기 이후 더 이상의 이렇다 할 진화를 시도하지 않고 화석화된다. 즉, 상어의 진화완성이야말로 상어의 또 다른 한계이자 무덤인 것이다.


굳이 불교의 연기법을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변화할 때 의미가 있다. ‘노자’는 어린아이의 유연함을 들어 생(生)의 가치를, 노인의 경직성을 들어 죽음(死)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변화와 불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어떤 유기체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불완전함과 더불어 유전하는 변화의 가치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윤리는 보편적 가치
일부 종교와 갈등도
불교는 다양성 전제
평화와 다름의 미학


유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윤리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형이상학적 원리나 신(神)에 대한 의존이 약하기 때문에, 유교는 인간끼리의 관계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것이 유교윤리의 근간이 되는 ‘인(仁)’과 ‘예(禮)’이다. 인이란 정약용에 의하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다름 아니다. 또한 예란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처해야할 합당한 도리이다.
‘논어-미자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공자가 주유천하를 하던 도중 도가계열의 은자였던 장저와 걸익을 만나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한다’고 조롱당한다. 즉, 세상을 피해서 사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사람이 새나 짐승과 함께 살수는 없다. 내가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또 천하가 어지럽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겠는가!”라고 말한다.


동양고전 중 이 이상 문화와 윤리를 잘 대변하는 구절은 없다. 인간과 인간의 문제, 그리고 그 속에 내포된 질서와 가치. 그것이 바로 윤리이다. 즉, 윤리는 인륜(人倫)인 것이다.


윤리는 사회적인 보편성에 입각하여 점차 규범화된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는 모든 인간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라는 의미에서 보편윤리, 또는 일반윤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들에도 상황에 따른 변수가 있다.


이순신과 같은 경우, 그는 많은 일본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순신을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순신과 같은 경우는 외적의 침입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윤리적인 잣대는 특수상황을 고려한 상황윤리의 판단 하에 놓이게 된다.


일반윤리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특수윤리라는 것도 있다. 윤리기준은 해당 문화의 보편성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러한 윤리기준이 특정종교와 관련되는 경우가 있다. 즉, 각각의 종교에는 그 가르침에 기반을 둔 종교윤리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는 해당종교의 보편성에는 맞는 것이지만, 인류의 보편성과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를 특수윤리라고 한다.


이슬람의 율법에는 지하드, 즉 성전(聖戰)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이슬람의 효율적인 전파나 외부적인 위협에 처했을 때, 전쟁을 불사해야한다는 종교의무를 가리킨다. 지하드는 종교윤리와 일반윤리의 충돌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생명복제문제와 관련해서 생명의 창조는 신의 고유권한이라고 판단한 기독교계의 반발은 실로 엄청났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는 어디서부터를 생명체로 볼 것이냐는 생명윤리의 문제까지 결부되어 보다 복잡한 다종의 문제들을 파생했다.


윤리는 그 문화권의 집단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변하는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도 노예가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인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분명해진다. 그러나 종교윤리와 같은 특수윤리에는 그 종교적인 교리와 관련된 명확한 답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가치가 상충할 때, 우리는 문명의 충돌과도 같은 심리적 갈등양상에 놓이게 된다.


불교는 다양성과 연기의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윤리에 있어서도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유연하다는 것이 불교적인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답이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다양성 속에서 다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불교윤리가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외적으로는 대립과 갈등이 만연하게 될 것이고, 내적으로는 문화적 충격 속에서 불교 역시 가치관의 혼란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자현 스님

불교윤리는 이슬람윤리나 기독교윤리와 같이 충돌의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평화의 윤리’이자 ‘다름의 미학’이다. 즉, 다름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것이 붓다가 제창한 연기의 윤리인 동시에 이 시대가 요청하는 바름의 가치라고 하겠다.

 


자현 스님
동국대 철학과와 불교학과를 거쳐 동대학원에서 불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과 석·박사학위를, 동국대에서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에서 철학과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동국대와 울산대, 성균관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원 교수아사리로 영평선원장 및 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 교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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