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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녀와의 갈등 해소법

기자명 법보신문

자녀가 미울땐 태어났을 때 사진을 보라

 

▲ 사이쿄인에는 마야 이외에도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 머문다. 아침마다 개를 산책시키는 소임을 맡은 나인(16)의 손목에는 자살 기도로 인한 상처가 흉터로 남아있다. 그는 “사이쿄인에 온 후 밥도 잘먹고 마음이 편해서 살이 많이 쪘다”고 웃었다.

 

 

2008년 여름, 법회로 하로시마(廣島)에 가 있었던 나에게 우리 절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저씨, 마야라는 아이가 가출해서 우리절로 왔대요”
“몇 살이야?” “초등학교 4학년이래요.”
“어디서 왔대냐?”
“가나가와현(神奈川縣)이래요.”
기차로 300Km를 넘는 거리를 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혼자 찾아왔단 말인가? “아저씨는 오늘 좀 늦는다. 너희들 마야를 잘 데리고 있어라.” 그런데 몇 시간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저씨, 지금 마야의 부모님이 마야를 데리러 왔어요!” 그 소리 뒤에서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난 집에 안 가! 언니, 오빠, 나를 좀 살려줘. 난 집에 가기 싫단 말이야!”
그날 마야의 집은 난리가 아니었다고 나는 나중에 들었다. 어린 딸아이가 안 보이자 부모는 온 동네를 뒤지고 학교와 경찰서에까지 신고를 했다. 그러다가 마야가 평상시 들고 다니는 빨간 가방이 없음을 눈치 챈 아버지가 마야가 쓰는 컴퓨터를 켜봤다고 한다. 혹시 무슨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과연 인터넷 검색란에 집에서부터 우리 절까지 찾아오는 방법과 교통편을 찾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길로 마야의 부모는 부랴부랴 사이쿄인(西居院)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날 늦게 내가 귀가하니 거실 탁자위에 마야의 부모 명함 두장이 나란히 있었다. 나는 우리 절 아이들한테 모든 이야기를 전해듣고, 바로 그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 탄생 생각하면 절로 행복


“지금 당장 마야를 여기로 데리고 와! 안 데려오면 내일 내가 당신들 직장까지 찾아가서 난리를 치겠다!” 큰 소리로 그렇게 외치고,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야의 아버지는 도쿄에 있는 대학병원 의사이고, 어머니도 역시 가나가와현에 있는 대학병원 의사. 마야는 의사 부부의 외동딸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고급승용차 한대가 우리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마야는 집에 가기 싫어요. 여기 있게 해주세요!” 흥분해 있는 마야를 잠시 다른 방으로 데려다 주고, 나는 거실에서 마야의 부모와 마주 앉았다.


“당신들이 의사라고 하는데, 마야의 부모 맞아? 사랑하는 딸이 왜 가출했는지, 아이의 마음을 정말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런 부모는 부모 자격이 없다!”
마야의 부모는 그저 고개를 숙여 가만히 앉아있었다. “마야를 우리 절에 두고, 당신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나는 한가지 약속을 꼭 지키라고 말했다. 그것은 다음 날부터 아침마다 종이에다 크게 “마야 고마워”라고 쓰고 팩스로 보내라는 것이다. 매일 매일 빠짐없이 마야한테 고맙다고 쓰고, 그 옆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꼭 친필로 사인하라고 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아버지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이런 식으로 모르는 사람한테 혼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스님, 오늘 일요일인데 나는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마야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야 때문에 동네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폐를 끼쳤는 줄 아십니까. 거기다 이 먼 거리를 두 번씩이나 왕래했는데, 도대체 그런 딸에게 뭐가 고맙다고 편지를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의미를 알기 전에는 마야를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빨리 가라!”
마야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떠났다. 그날 오후 두시쯤인가 우리 절에 있는 팩스기가 울렸다. “마야 고맙다”라는 말 옆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바로 마야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마야는 밝은 표정으로 한참동안 보다가 갑자기 그 종이를 던져버렸다.


“아저씨, 이 글씨 다 엄마가 혼자 쓴 건데요.”
그 날부터 삼일 동안 같은 글씨체의 팩스가 들어왔다. 나는 화가 나서 다시 마야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신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지금 당장 마야가 태어났을 때 찍은 사진을 꺼내봐! 2350g의 아주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당신들의 마음이 어땠었는지, 그 당시 마음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이 세상 모든 부모는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어린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 준 것만 해도 너무나도 고맙게 여겼을 것이다. 그 감사의 마음으로 지금 아이를 맞이하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날 마야의 부모는 아주 오랜만에 마야의 어릴 때 사진을 꺼내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팩스가 들어왔다. 마야한테 보여주려고 하니 마야는 “어차피 엄마가 다 썼을 텐데요”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봐라”하니까 겨우 종이를 건네 받았다. 한참동안 보고 있던 마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고맙다’ 반복하면 ‘감사함’ 생겨


그 날 이후 매일 매일 같은 내용의 팩스가 오다가 일주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종이 한 장에다 “마야 고맙다, 고맙다”라고 50번 가량 쓰고 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팩스와, 역시 어머니 이름으로 고맙다는 말이 50번 가량 적혀 있는 팩스가 들어왔다. 마야는 그 팩스를 들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마야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 날 마야의 부모는 말 그대로 날라 왔다. 아버지는 도착하자마자 차 시동도 끊지 않은 채 우리 절 입구의 계단을 한숨에 올라와 마야를 껴안았다. “마야, 미안하다. 아빠가 잘 못했다. 마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러자 어머니도 “엄마가 잘 못했어. 다 엄마 잘 못이야. 그리고 마야 고마워”라고 셋이서 껴안고 한참동안 울었다. 그렇게 해서 이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다. 마야는 지금도 가끔씩 나에게 문자를 보내온다. 지난 번 온 문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아저씨, 항상 고마워요. 마야는 엄마 아빠와 같은 의사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 히로나카 스님

어떤 부모든 때로는 아이를 대하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아이가 태어났을 당시의 감사의 마음을 뒤 살리고 지금 아이와 마주하면 문제는 꼭 풀릴 것이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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