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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행 중인 석가보살

기자명 법보신문

처절한 고행 사실적 표현

 

간다라 2~3세기,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출가 수행자가 된 보살은 빔비사라 왕이 다스리는 라자가하 도시에 도착해 걸식하여 지냈다. 어느 날 걸식하는 보살을 본 빔비사라 왕은 그 수승한 용모에 반해 사람을 보내 보살을 살피게 했다. 보살이 수행할 당시 출가자는 나무뿌리를 거처로 삼고, 쓰레기더미에서 주은 누더기로 만든 옷을 의복으로 삼고, 탁발한 음식을 먹이로 삼고, 소의 썩은 오줌을 약으로 삼으며 생활했다. 보살 역시 이와 같은 길을 걸었다. 보살은 알라라까라마와 웃다까라마뿟다라는 스승을 만났으나, 결국 그들의 곁을 떠나 네란자라 강이 흐르고 있는 우루웰라 숲으로 향했다.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보살은 “물에 빠졌던 나무라도 마른 땅으로 끄집어내서 잘 말린다면 불을 지필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애욕을 완전히 말렸고, 정신적·육체적으로 애욕을 멀리하는 사람은 올바른 방법론에 입각해 고행을 실천하여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밍군 사야도 저·최봉수 역주, ‘大佛傳經 Ⅳ’)고 생각했다. 싯다르타 태자가 탄생한 직후부터 이미 고행자의 삶을 시작한 5명의 사문이 있었는데, 보살은 이들과 함께 6년 동안 네란자라 강 근처의 우루웰라 숲에서 숨 쉬지 않는 고행과 음식을 줄이는 고행을 거듭하며 지냈다.

부처님께서 고행하던 수행자 시절을 상기시키는 고행상이 현재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있다. 호흡의 억제와 단식에 의한 매우 마른 고행상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각가의 목적은 보살의 힘든 고행을 잘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지적은 무의미하다. 대좌에는 길상초가 깔려 있고 그 아래에는 중앙에 타오는 불이 있는 향로 또는 성화단(聖火壇)으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

 

▲유근자 박사

6명의 수행자는 그것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6명으로 표현된 이들은 6년 동안 함께 고행하다가 고행을 포기하고 보살의 곁을 떠난 이들로, 부처님 성도 후 녹야원 첫 설법 도량에서 첫 제자가 된 5명의 승려들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 전개될 보살의 깨달음과 교단의 창시를 암시한다.  

 

유근자 박사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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