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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태산 국청사·지자탑원

기자명 법보신문

동토의 석가 말 없음으로 법을 설하다

천태 대사 육신 모셨다는
지자육신탑이 향객 맞아

 

 

▲ 천태 지의 대사 육신탑이 모셔진 지자탑원은 산 정상에 자리잡은 작은 절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대사의 말 없는 법을 전하고 있다.

 

 

천태지의 대사가 수양제에게 유서를 남기면서까지 불사 마무리에 공을 들였던 국청사 들머리에는 ‘과거칠불탑’이 있어, 천태산으로 들어서는 길손을 맞는다.


과거칠불의 공통된 가르침이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義)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 이곳 천태산에 들어서는 모든 대중에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며 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렇게 잠시 옷매무새를 돌아보게 하는 과거칠불탑을 지나면 문수보살 후신 한산, 보현보살 후신 습득과 더불어 ‘국청삼은(國淸三隱)’으로 불렸던 당나라 때 도인이자 아미타불의 후신으로 추앙받았던 풍간선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풍간교’가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 순천 선암사 승선교의 아름다움에 비할 정도는 못되어 생긴 자체로 세인의 이목을 끌지는 못함에도 과거 한 시대를 풍미한 도인의 자취가 서린 곳이기에 잠시 옛 중국 고승들의 삶을 떠올려보게 되는 곳이다.

 

 

▲ 지자 대사 육신탑이 모셔진 탑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풍간교를 건너 출세간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절 이름을 알리는 ‘국청강사’ 편액을 머리에 인 첫 번째 문을 만나고, 다시 몇 개의 작은 문을 지나면 이 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대웅보전 앞마당에 올라설 수 있다. 대웅보전을 지나 순례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정표를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된 경내 건축물들을 돌아보고 나니 다시 대웅보전 앞마당이었다.


그리고 대웅보전을 향해 선 자리에서 왼편으로 마치 별도의 정원처럼 꾸며진 곳이 눈길을 끈다. 그 공간으로 들어서면 낮은 건물들이 지붕을 맞대고 섰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나한당 내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금으로 도금한 나한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온갖 표정을 다 모아놓은 듯하다. 그 속에 지금 내 모습, 조금 전의 내 모습, 그 이전의 내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 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내 마음, 내 얼굴이 저랬을까’ 하는 생각에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 묘한 감정을 갖게 하는 나한당 뒤편으로 천태산 여러 사찰에서 나온 유물을 모아 놓은 전각이 있다. 멀리는 수나라 때 유물로부터 가깝게는 청나라 유물까지 꽤나 많은 유물이 보관돼 있어 1400년을 이어온 국청사의 역사가 그리 간단치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국청사에서의 또 다른 볼거리 중 하나는 음식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찾았을 때는 맛보기 어렵겠지만,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천태종 불자들을 대접하는 마음을 담아 마련한 요리는 먹는 맛 이전에, 보는 맛에 취할 정도다.
온갖 모양을 낸 10여 가지 요리는 잘 차려진 한정식집 상차림을 연상케 하지만, 이 모두가 콩으로 만든 요리다. 공양간에서 장작불을 때가며 밥을 짓고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온 터라 그 정성까지 느껴지니 음식 맛은 말 그대로 천하일미다.

 

천태사상의 근원이 되는 국청사에서 산 정상에 위치한 지자탑원까지는걷기엔 먼 거리여서 미니버스를 이용했다. 대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오르면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계단식 논밭이 즐비하고 사이사이로 농가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간과 출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정토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풍경에 한참이나 눈길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 지자탑원 입구 조벽에는 ‘여기가 곧 영측산’ 이라는 뜻의 ‘즉시영산’이 새겨져 있다.

 


육신탑이 있는 진각강사(眞覺講寺)는 천태산 봉우리 중 하나에 위치한 매우 작은 절이다. 본래 이름은 진각사로 597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절 입구에 이곳이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신 영취산이라는 뜻을 담아 조벽에 ‘즉시영산’이란 글자를 새겨놓았다. 그 조벽을 등지고 서면 곧바로 탑원의 입구다. 중국에서 미륵불의 모습으로 상징화한 포대화상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지자육신탑’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 6각3층의 석탑이 있고, 석탑 안에 지자 대사의 육신이 모셔져 있어 ‘진신보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지자육신탑’ 안에는 6각3층으로 조성된 진신보탑이 있다.

 


흰색의 대리석에 6각3층 모양으로 세워진 육신탑은 지의 대사의 육신이 모셔져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천태종도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성지 중의 성지일 수밖에 없다. 1층 탑신에는 지자 대사 영전이 그려져 있고, 천장부터 내려 온 작은 벽면에는 그의 전기를 새겨 넣었다. 또 상층에는 영축산 왕사성의 화장세계가 새겨져 있으며, 건물 벽면은 정면을 제외한 삼면을 따라 대리석판에 천태종 역대 조사들을 새긴 영정이 봉안돼 있다. 이 중 우리나라 고려 출신의 스님인 천태종 16조 보운 의통이 있다.


그리고 이 탑원 정면으로 지자 대사를 동토의 석가모니로 칭송하는 ‘동토가문’이라는 편액이 있다. 입구 조벽에 새겨진 ‘즉시영산’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석가모니부처님에 의해 일어난 불교가 중국에 와서 대소승 교의와 실천법을 천태의 일승으로 총정리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천태종문을 연 대각국사 의천도 바로 이곳에서 “중국에서 전해 받은 교관을 본국에 돌아가 신명을 다해 전해 널리 펼 것”을 다짐했었다. 의천은 이곳에서 굳게 다짐하고 그로부터 10년 후 고려 국청사를 창건해 강설하는 날 “지자대사의 탑묘에서 목숨 다하도록 법의 등불 전할 것을 정성으로 서원하였더니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회고하면서 동토가문 지자 대사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기도 했었다.


승속을 떠나 오늘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의천이 소름 돋게 느꼈던 그만한 감흥이나 전법 의지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900년 그 이전에 이 탑원을 참배한 의천은 그 자리에서 벅찬 희열을 느끼며 전법의 서원을 세우고 실천했던 것이다.

 

의천도 이곳서 전법 서원
10년 후 고려 국청사 개창


지자탑원의 이름이 진각강사로 붙여진 것은 본래 처음 절이 지어질 때 진각사로 불렸기 때문이다. 또한 전에는 감실 앞에 쌍으로 된 석탑이 있어서 정혜진신탑원이라고 불렸다고 하나, 지금은 이 석탑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오랜 세월 피폐한 상태로 있던 절은 청나라 융경(또는 명나라 시절인 1567∼1572년) 연간에 진임이 불전과 승방을 중흥시켰다고 한다.


중국 선종사찰에서는 선승들의 육신을 모신 탑과 관련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선종사찰이 아닌 교학사찰인 이곳 지자탑원에서도 지자 대사의 육신을 모신 육신탑이 존재하는 덕분에 전해지는 옛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인수원년인 601년 대사의 기신재에 재를 지내기 위해 감실을 열었더니 대사의 안색이 생시와 같았는데, 4년 후인 대업 원년에 다시 열었을 때는 텅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근래 문화혁명 시기에 이곳이 파괴되면서 육신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후에 땅속 1m 깊이에서 상자가 나와 그 속에 모셔진 육신을 다시 탑에 모실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천태 지의 대사가 머물며 천태교학을 진흥시킨 천태산은 국청사, 지자탑원으로 불리는 진각강사 외에도 대사가 입산 후 처음 지어 수행했던 수선사를 비롯해 고명사, 화정사, 만년사 등의 크고 작은 사찰이 있는 천태종 성지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 천태종은 총본산 구인사를 이곳의 국청사에, 구인사 위쪽에 자리해 적멸보궁으로 부르는 상월 스님 묘를 지자탑원에 비견하며 선종과 달리 보궁을 지어 조사의 뜻을 기리는 것이 옛 중국 천태종으로부터 이어지는 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일본 천태종 역시 이곳을 특별히 여겨 1989년 5월에 ‘반야심경탑’을 세워놓았다.

 

 

▲ 국청사 나한당 나한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세상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천태 지의 대사가 걸어온 옛 길을 따라 나선 천태산 순례길은 성지를 찾는 불자들의 마음에 신심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대사가 처음 입산해 짓고 수행했던 수선사터 조차 보지 못해, 혹여 그 옛날 천태산에 입산하던 때의 숨결을 아득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을까 했던 기대는 그저 희망사항에 그치고 말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천태 지의 대사의 육신탑이 세워져 있는 천태산은 그가 수행했던 사찰을 중심으로 교학중흥과 수행가풍 확립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고, 대사가 영원한 적멸처로 삼은 천태산엔 무언의 설법이 이어지고 있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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