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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이 바로 신통…다른 각도서 설명하면 육신통

기자명 법보신문

성품이 본래 텅 빈 고요인 줄 알아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누진통
세상 자체가 부족함 없는 세상이니 이를 깨달아 들어가는 길이 원돈문

84. ‘있다’ ‘없다’ 분별 없어 신통

 

 

▲ 돈황 막고굴. 당나라 초기 220굴의 악대

 


台敎云 觀於一心 欻有一切心 觀一切心 倏無諸心 心無有無 通至實相 卽神通也. 義海 云. 謂此塵無體 不動塵處 恆遍十方刹海 無來去之相 是神足通. 不起于本座 遍遊於十方. 又 見塵法界無際 而有理事敎義 一切菩薩 皆同證入 皆同修習 此法更無別路 是他心通. 見塵法界解行現前之時 卽知過去 曾於佛所 親聞此法 以觀心不斷 是故 今日得了 是宿命通. 又 見塵性空寂無相可得 卽不二見. 若見相 卽爲二也. 由無相 卽無有二 名天眼通. 經云 不以二相見 名眞天眼. 又 了塵無生無性空寂 卽執心不起 是漏盡通. 經云 斷結空心我 是則無有生. 又 聞說塵法界差別之聲 卽知一切聲全是耳 不復更聞也. 然此聞無緣 無得於聲 悟一切法 是常聞一切佛法 爲天耳通.


천태교에서 “한마음에서 홀연 온갖 마음을 보고 온갖 마음에서 문득 어떤 마음도 없는 것을 보니, 마음에 ‘있다’ ‘없다’의 분별이 없어 실상에 통함이 곧 신통이다.”라고 하였다. ‘백문의해’에서 말하였다.


바탕이 없는 번뇌 그 자리에서 시방세계 온갖 국토에 늘 두루 하며 오가는 모습이 없는 것을 ‘신족통’이라 하니,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 나아가는 것이다. 끝이 없는 중생계에 ‘이(理)’와 ‘사(事)’의 가르침이 있어 모든 보살이 똑같이 깨달아 들어가 수행하기에 이 법에서 다시 다른 길이 없음을 보는 것이 ‘타심통’이다. 중생계의 알음알이 일들이 눈앞에 있을 때 곧 과거를 알아 일찍이 부처님 처소에서 몸소 이 법을 듣고 마음 관찰을 끊지 않음으로써 이 때문에 금일 깨달음 얻는 것을 보는 것이 ‘숙명통’이다. 또 번뇌의 성품이 공적이어 어떤 모습도 얻을 수 없음을 보는 것이 곧 ‘차별이 없는 견해’이다. 만약 어떤 모습을 본다면 곧 보는 주체인 ‘능(能)’과 보이는 대상경계인 ‘소(所)’의 두 가지 모습이 있게 되지만, 어떤 모습도 없음으로 말미암아 ‘능(能)’ ‘소(所)’의 두 가지 모습이 없는 이것을 일러 ‘천안통’이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두 가지 모습으로써 보지 않는 것 이를 일러 진짜 ‘천안통’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번뇌의 실체에 생멸이 없어 결정된 성품이 없는 텅 빈 고요인 줄 알기에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누진통’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번뇌를 끊은 텅 빈 마음의 ‘나’ 여기에는 생멸이 없다.”라고 하였다. 또 중생계에서 온갖 차별을 말하는 소리를 듣고 곧 온갖 소리가 전체 귀인 줄 아니 다시 더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깥소리와 인연이 없는 이 ‘들음’이 온갖 법을 깨닫는다. 이것이 늘 모든 부처님의 법을 듣는 것이기에 ‘천이통’이 된다.

 

강설) 한마음 그 자체가 신통인데 여섯 가지 각도에서 이 마음을 설명하면서 각각에 육신통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


85. ‘종경’ 이외 내세울 것은 없다


於一心正觀之中 最爲樞要 少用心力 成大菩提. 故華嚴私記云 此經中總 是法身作多種名字 如人天十善五戒爲身 聲聞四諦 緣覺十二因緣 菩薩六度 佛種智爲身 身是聚義 於法身中 隨行位功德聚處 名身. 若有情身相 皆是法身所起 若無情國土 盡從佛智所現. 終無纖毫 於宗鏡外 別有異體 而能建立.


올바른 관찰의 한마음에서 가장 중요시 할 것은 마음을 수고로이 쓰지 않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사기’에서 “‘화엄경’의 모든 것은 법신이 온갖 개념을 만든 것이니, 이는 인천이 ‘십선(十善)’ ‘오계(五戒)’로 몸을 삼고, 성문은 ‘사제’, 연각은 ‘십이인연’, 보살은 ‘육바라밀’,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로 몸을 삼는 것과 같다. 몸은 온갖 것이 모여 있다는 뜻이니, 법신을 바탕으로 수행의 위치를 드러내며 온갖 공덕이 모여 있는 곳 이를 일러 몸이라 한다. 마음을 가진 유정물의 몸이라면 모두 법신이 나타난 것이요 국토와 같이 생명이 없는 무정물이라면 모두 부처님의 지혜로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끝내 가느다란 터럭 하나도 ‘종경 한마음’ 이외 달리 다른 실체가 있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다.


86. ‘一’과‘多’ 서로 아우르며


華嚴經 云. 爾時文殊師利菩薩 問德首菩薩言 佛子 如來所悟 唯是一法. 云何乃說 無量諸法 現無量刹 化無量衆 演無量音 示無量身 知無量心 現無量神通 普能震動無量世界 示現無量殊勝莊嚴 顯示無邊種種境界 而法性中 此差別相 皆不可得.


‘화엄경’에서 문수보살이 덕수 보살에게 물었다.
덕수 보살이여, 여래의 깨달음은 오직 한 법인데, 온갖 법을 설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토를 나타내며, 온갖 중생을 교화하고 온갖 소리로 법문하며, 온갖 몸을 보여주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을 알며, 온갖 신통으로 널리 온갖 세계를 흔들고 무량한 수승 장엄을 시현하며 끝이 없는 온갖 경계를 드러내 보이면서도, 어떻게 법성 가운데 이 다른 모습들을 다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時 德首菩薩 以頌答曰
佛子所問義 甚深難可了 智者能知此 常樂佛功德. 譬如地性一 衆生各別住 地無一異念 諸佛法如是. 亦如火性一 能燒一切物 火焰無分別 諸佛法如是. 亦如大海一 波濤千萬異 水無種種殊 諸佛法如是. 亦如風性一 能吹一切物 風無一異念 諸佛法如是. 亦如大雲雷 普雨一切地 雨滴無差別 諸佛法如是. 亦如地界一 能生種種芽 非地有殊異 諸佛法如是. 亦如無雲曀 普照於十方 光明無異性 諸佛法如是. 亦如空中月 世間靡不見 非月往其處 諸佛法如是. 譬如大梵王 應現滿三千 其身無別異 諸佛法如是. .


그 때 덕수 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보살이여 그대께서 질문한 뜻이  

깊고 깊은 이치라서 어렵긴 하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내용 알고 

부처님의 많은 공덕 항상 즐긴다.

비유하면 땅의 성품 하나이기에 

중생들은 각각 따로 머물더라도

땅의 성품 같고 다른 생각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불의 성품 하나이기에 

불을 붙여 모든 사물 태우더라도

타오르는 거센 불길 분별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바닷물이 하나이기에 

파도 모습 천차만별 다르더라도

거센 파도 바닷물과 다름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바람 성품 하나이기에 

모든 사물 온갖 곳에 바람 불어도

부는 바람 같고 다른 생각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천둥소리 먹구름들이 

두루두루 온 대지를 비로 적시며

빗방울이 차별 없이 떨어지듯이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땅의 표면 하나이기에 

가지가지 새싹들을 틔워 내어도

땅 모습에 다른 것이 전혀 아니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저 하늘에 구름이 없어 

밝은 태양 시방세계 빛을 비추며

그 광명에 다른 성품 특별히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허공 속의 밝은 보름달 

온갖 국토 세상사람 쳐다보아도

둥근 달이 어느 장소 간 곳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비유하면 대범왕이 몸을 나토서 

삼천 세계 빠짐없이 나타났어도

그 몸에는 특별나게 다름이 없듯 

부처님의 온갖 법도 이와 같도다.

 

故知 此宗鏡一心之旨 名具足道 是圓頓門. 就緣起則無邊 約眞性則無二 一多交徹 存泯同時.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이 ‘종경 한마음’의 뜻을 일러 ‘구족도(具足道)’라 하니 ‘원돈문(圓頓門)’이다. 인연을 따른다면 끝없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참성품’에서 보면 다를 것이 없으니, ‘일(一)’과 ‘다(多)’로 서로 아우르며 ‘있음’과 ‘없음’이 다함께 동시이다.

 

▲ 원순 스님

강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참으로 놀랍고 놀랍도다.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다 갖추고 있는데도 분별망상 때문에 이를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올바른 안목으로 보면 이 세상 자체가 안팎으로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세상이니, 이를 오롯이 단숨에 깨달아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이 ‘원돈문(圓頓門)’이요, ‘종경 한마음’에 이러한 도리를 다 갖추고 있는 것을 ‘구족도(具足道)’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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