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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의사들

기자명 법보신문

가정불화 등으로 고통 받는 의사들 많아
내면의 평화로 인술 실천하는 보살 되길

병원에서 생활하다보면 그 전에는 잘 몰랐던 것들을 종종 알게 된다. 의사들의 내면에 깃든 아픔도 그 중의 하나다. 의사라는 직업이 비록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처럼 힘들고 외로운 길이 또 있을까 싶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의과대학에 입학해 6년을 공부에만 매달려야 한다. 또 개인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혹독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의사로 설 수 있다. 그 세월은 설령 신념이 있더라도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힘든 일은 그 뒤부터인 것 같다. 늘 고통이나 죽음과 맞닥뜨린 사람들과 대하는 직업. 의사에게 아픈 사람이 병이 나아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큰 보람이 없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환자를 대할 때, 혹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치료했더라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 의사들이 겪어야 하는 심적 고통과 책임감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다혈질의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다짜고짜 심한 욕설을 듣고 멱살까지 잡히는 일들도 종종 보게 된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도법사로 있다 보면 상담을 자주하게 된다. 그 중에는 의사 선생님들도 꽤 있다. 그 분들은 내게 치료나 수술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기도 한다. 때로는 병원 내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말하거나, 그냥 눈물만 뚝뚝 떨구다가 돌아가는 분들도 있다. 그들도 의사이기 전에 크고 작은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새삼 알게 된다.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의사들도 적지 않다. 홀로 노모를 모시거나 아내와 헤어져 자식을 키우는 분들도 많다. 환자들에게 참 자상한 의사로 소문나 있지만 정작 가정불화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하면 그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치료하는 그들도 때로는 ‘사람’을 잘 모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늘 위급한 사람들을 만나며 하루 종일 그들과 부대끼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의사들에게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소한 것이 될 수 있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다른 의료진 눈치까지 살피면서 지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병원을 찾은 사람만 환자가 아니다. 가족도 환자고 보호자도 환자고 의사도 환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환자라는 점이다. 탐냄, 성냄, 어리석음으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고통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 꼭 산중 선방에서 화두를 붙잡고 있는 것만을 일컫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내가 나의 마음을 관하고,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고 그것을 자비롭게 해결하려는 일이 무엇보다 큰 공덕이고 수행이다. 사소한 병이라고 방치했다가 큰 병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듯이, 사소한 가정일이라고 하여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다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부처님을 ‘대의왕(大醫王)’이라하듯 의사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술(仁術)을 실천하는 보살의 길이다. 그분들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그분들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치유돼 고통 없는 정토세상이 될 수 있기를 깊이 발원해 본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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