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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의 홍련암

기자명 법보신문

홍련암.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홍련암 바닥에 난 구멍으로 푸른 바다의 하얀 파도와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홍련암에 머물며 수행을 하면 곧 해탈에 이를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다. 그래서였다. 홍련암은 첫 만남 이후 언제나 내 마음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첫 장편소설을 쓸 때도 홍련암을 담았고 30대 때도, 40대 때도 가만히 찾아갔다.


2005년 낙산사가 화염에 휩싸일 때 시시각각 전해오는 급보 속에서도 제발 홍련암만은 무사하기를 얼마나 기원했던가.


그 홍련암을 최근 다시 찾았다. 어느새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홍련암에 머물며 수행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예감했던 그날의 자신감은 이미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세파에 시나브로 머리가 찌든 탓이다. 새벽에 다시 홍련암을 찾아 눈을 감고 오래 머물었지만 20대의 그 절실함과 절박함이 다가오지 않았다. 절망이다.


그럼에도 50대 중년으로 만난 홍련암은 20대, 30대, 40대에 보았을 때와는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무릇 고전이란 되풀이 해 읽어도 연령별로 다른 감동을 주지 않던가. 해탈하리라는 20대의 푸른 패기는 사라졌지만 홍련암이 관세음보살의 성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관세음보살. 문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피는 보살이다. 흔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듯이 관세음보살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구제하는 구세보살이요, 중생을 크게 연민하는 대비성자로 불려왔다.


그 연장선이다. 관세음보살의 성지답게 홍련암의 낙산사가 복지 사업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해 학교수업을 마친 뒤 돌봄이 요구되는 어린이들에게 학습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잘 꾸며진 도서관에는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책이 가득했다. 기초학습 지도는 물론 독서와 악기도 가르치며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다. 비단 청소년 문화사업이나 저소득층 복지만이 아니다. 노인전문 요양기관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기실 복지야말로 고통 받는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으며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의 고갱이가 아니던가. 관세음보살이 천개의 눈, 천개의 손을 지닌 이유이기도 하다.


비단 홍련암만이 아닐 터다. 지역 곳곳에서 복지사업에 나서는 절의 모습은 자비의 실천이다. 그렇다면 종단 차원에서 복지는 어떻게 접근해야 옳을까. 최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복지정책의 국가적 실현을 돕는 데 있을 터다.


낙산사가 의욕적으로 전개해가고 있듯이 지역 차원에서 복지사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국가적 차원에서 복지를 실현하는 일 또한 관세음의 정신이다.


홍련암 바닥의 정사각형 창으로 관음굴 넘나드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관세음보살이야말로 한국적 복지정책을 구현하는 데 상징적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무엇보다 세속의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모두 들어야 한다. 아울러 그 고통에 잠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옳다. 관세음보살의 위대한 원력을 어떻게 21세기의 지평에서 구현해나갈 것인가. 바로 그곳에 불교의 미래가 벅벅이 걸려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단정일까.


20대부터 30대와 40대를 거쳐 내 가슴 깊숙이 자리해온 홍련암은 이제 내게 관세음의 정신, 복지의 상징으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60대의 내게, 70대의 내게 홍련암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손석춘 이사장

홍련암의 새로운 모습을 가슴에 담았으되 수행하면 곧 해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젊은 날의 자신감은 사무치게 그립다. 상실된 그 감각을 다시 찾을 길은 없는 걸까.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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