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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늙는다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7.25 14:56
  • 수정 2011.07.25 16:31
  • 댓글 0

근대 이전 시기에 적어도 동양에선 나이가 든다는 것을 성숙과 지혜와 연관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드는 것을 “나이가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을 지나 나이 70쯤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서 어긋남에 없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로 이어지는 공자의 유명한 문장은, 먹은 나이가 소화되어 삶의 지혜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 지혜가 늘어난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지혜가 늘기는커녕 반대로 나이만큼 편협해지고 독선적이 되며 남 얘기는 무시하고 자기 고집만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경우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단지 나만의 제한된 경험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무언가 새로운 것, 내가 알지 못했던 것, 혹은 나와 다른 종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수용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은 대개 나이가 든 신체에겐 불리할 것 같다. 나이만큼 마음과 신체의 유연성이 오그라들고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것은 신체가 ‘늙는’ 것에 따라 마음도 ‘늙는’ 것이다.


그러나 ‘늙는 것’은 단지 나이에 따라 진행되는 생물학적 자연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이와 함께 나와 다른 것들을 소화하는 능력이 확장되고, 그런 만큼 마음이나 신체의 여유가 늘어나 지혜롭게 성숙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늙는 것’과 ‘나이를 먹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입력장치는 정지되고 출력장치만 작동하는 상태다. 새로운 것의 입력은 중단되고 이미 입력된 것만 출력된다. 새로운 것이 입력되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입력된 자료를 가공하고 종합하는 사고장치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의 생각으로 고집스레 비난만 하게 된다. 신체가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나이가 40이 안된 사람도 이미 충분히 늙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나이가 70이 넘었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입력하고 ‘공부’하려는 분들은 아직 늙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극도의 ‘늙은’ 정부라는 것은, 단지 이명박이나 주변 관료들의 나이 때문이 아니다. 수개월의 촛불시위 때도 그랬지만, 4대강 1700여곳에서 물난리가 났어도 이들에겐 입력이 되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그렇게 큰 목소리로 외쳐도, 190일 이상 크레인에서 목숨을 걸고 위장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싸워도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장관 임용할 때면 나오는 위장전입이나 ‘사소한 불법행위’들에 대한 국민들의 짜증난 비난도 마찬가지다. ‘늙은이’의 지독한 독선과 고집만으로, 이미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만을 출력한다. 어떤 새로운 것도, 어떤 현실적 비판도 입력되지 않기에, 이들은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강함이 아니라 독선과 고집일 뿐이다. 반대로 ‘나이를 먹은 분’들의 지혜와 포용력에서 힘과 강함을 볼 때 ‘안목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점에서 이들은 ‘나이’를 무기로 막무가내의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어버이 연합’을 정확히 빼닮았다. 그 단체가 지금 종횡무진 활개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어느 쪽이든 나이가 드는 것에 혐오스런 이미지를 두껍게 덧칠하는 분들이란 점에서 똑같다. 이들을 보면 나이가 느는 것이 싫어진다. 어떤 것도 입력되지 않는 이 극단의 늙음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그것은 차라리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이다.

 

▲이진경 교수

편협한 독선의 끈에 칭칭 동여매인 채 요란하게 활개치며 나이를 자랑삼는 추한 생존. 아, 정말 곱게 늙고 싶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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