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한국불교
상상 속의 한국불교
  • 법보신문
  • 승인 2011.07.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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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얼마 전 참가했던 세계여성불자대회에서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날 식탁에서 나눈 대화는 동양인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었다. 동양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고 같은 식탁에서 공양하던 어떤 미국인이 말을 꺼냈다. 죽을병이 걸린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설사 가족들이 그 사실을 다른 경로로 알게 되었더라도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알더라도 발설하지 않는 것이 동양인의 관습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계 미국인인 에이미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의 어머니가 갖고 있는 동양적 관습과 사고방식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아이들과도 갈등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70년대나 80년대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 같았다. “과연 요즘 한국 사람들도 그런가?” 내심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동료 중 한 사람도 그랬어요. 20여 년 전 자기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이 폐암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데요. 그런데 말이죠, 요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국도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가끔 텔레비전 드라마에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온 가족이 함께 걱정하고 슬퍼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건 한국에서 ‘죽음’이란 단어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라는 의미죠. 그런데 말이죠,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보면 더 구식이에요. 한국에서는 노인들조차 그 변화를 받아들여 변화해가고 있는데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절에 오는 신도들 중 70년대 이민 온 사람들은 70년대 한국에서 하던 불교를 고집하고, 80년대 이민 온 사람들은 80년대 방식을, 2000년대에 온 사람들은 또 2000년대 방식을 주장한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군요.”


다들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내 말에 동의했다. 자기 주변의 동양인들을 보면 그들의 고향은 상상의 고향일 뿐, 현실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미국인도 지적했다시피 서양에 사는 한인들에게 고향은 그들이 떠나온 시점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실제 고향에 돌아가도 정작 그곳은 그들이 기억하는 그곳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미국화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덧붙여 한국 스님들은 삭발할 때 예전에는 한날 면도칼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세날 면도칼을 사용하는데 반해, 한국에서 수계를 받은 미국인 스님은 계속 한날 면도칼을 고집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국가도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해외한인들에게 한국은 거주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이다. 그것은 이민 1세 뿐 아니라 이민 2세에게 정체성의 혼동과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불교도 그런 것이 아닐까? 명상을 가르칠 때 그토록 ‘here and now’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가 ‘찾는’ 한국불교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그 어디엔가 존재하는 상상의 불교가 아닐까?

 

▲명법 스님

과거로 기억되는 한국불교를 한국이든 미국이든 ‘지금 여기’로 옮겨놓고 거기서 문제의 근원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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