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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마음을 살펴라”

기자명 법보신문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 스님

 

▲묘허 스님

 

 

오늘은 생사(生死), 즉 태어남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또 이렇게 한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교를 믿고 일생동안 불교 신행 생활을 한 불자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90% 이상입니다.

 

불교는 어떤 종교일까요?


나를 바로 알고 바로 살자는 것이 불교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인생은 전생에 내가 스스로 일으켰던 생각의 그림자이고 그 생각을 마음속으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겨 실천한 업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일으킨 생각은 이번 생의 씨앗이 됩니다. 내가 생각하고 실천한 옛 업연이 오늘의 내 인생입니다. 오늘날 내 인생의 창조주가 바로 ‘나’인 것입니다.


생명 있는 중생들을 유정(有情)이라고 합니다. 유정중생, 정으로 만들어져 정이 있기 때문에 유정입니다. 그런데 이 육체를 낳아준 아버지, 어머니가 운명과 인생까지 낳아줄 수는 없습니다.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 농사’라고 하지요. 그건 어째서 그런가요? 자식의 육체는 내가 낳았어도 인생은 자기가 지어놓은 업에 따라 부귀영화와 희노애락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온 것처럼, 자식의 인생 창조주도 바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생사의 근본은 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마음이 생사의 근본이요, 윤회의 원인입니다. 또 시비의 시작입니다. 어째서 그러할까요? 선(善)도, 악(惡)도, 지혜도, 법도 누가 만들어 놓거나 설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선악의 원인은 우리들이 일으키는 한 생각입니다. 착한 생각은 선의 원인이요, 악한 한 생각은 죄의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어 놓은 업을 어떻게 돌려받을까요? 선업, 즉 좋은 일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지닙니다. 나쁜 결과를 불러 올 수는 없습니다. 또 악업, 악보 등 나쁜 일은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힘과 능력은 있지만은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일이 한량이 없겠지만 뭉쳐놓고 요약해보면 세 가지 뿐입니다. 선업, 악업, 무기업이 그것입니다. 선업은 선보(善報), 악업은 악보(惡報)를 받는데 무기업은 선악간의 과보가 뚜렷하지 않고 힘없는 업이기에 이것을 무기업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지은 업은 삼 단계를 거쳐 가면서 받습니다. 금생에 지어 금생에 업을 받기도 하고, 전생이나 그 앞 생에 지어놓은 업의 과보가 내생에 나타나 내생 운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금생에 지은 업이 저 후생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생에 태어난 우리는 과보를 받으면서 또 업을 짓습니다. 업을 지었기 때문에 과보를 받기 위해 내생이 필요하고 또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다음 생에 가서 금생에 지은 업을 받으면서 또 짓기 때문에 내생이 필요하고 그런 과정을 시작 없는 그 옛날 옛적부터 계속해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불연을 맺었습니다. 불법을 만났으니 오늘 내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임을, 그 이치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구제하고 제도해야지 나 아닌 어느 누구도 나 대신 내 인생을 구제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할 수 있을까요? 법문을 들어 배우고, 배운 것을 믿고 믿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실천하는 것이 생사의 근본이 되고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윤회 고(苦)를 벗어나려면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이 마음을 닦아 나의 본래 자성을 직관해 증득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물질적인 육체만을 알지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참 나, 나의 주인공은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못 보느냐, 한 생각 일어나면 번뇌고 한 생각 일어나면 망상인데 이것이 내 생각인 줄 알고 번뇌의 앞잡이가 되어 생활하다 보니 못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면목, 이 마음자리는 눈으로는 안 보입니다. 왜냐, 우리가 내 눈이라고 믿고 있는 눈도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유형색신에 속해 있는 물질적인 육안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은 허공과 같아 모양이 없고,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을 바로 보려면 마음의 눈을 떠 마음으로서 마음을 직관해야 합니다.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합니다. 스님들께서 공부하다가 도를 깨달은 것을 견성했다고 합니다. 견성을 하고 나니 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그런 연후에 나를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까 바로 깨달아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 5분이라도 나의 마음 변화를,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명상을 하면서 말이지요.
불교는 남의 신(神)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바르게 관(觀)하고 내 성품을 관하는 것입니다. 나의 성품 자리를 항상 지켜봅시다.
 

정리=조영훈 광주·전남지사장


이 법문은 7월15일 무등산 증심사에서 열린 ‘무등에서 길을 묻다’ 명사초청법회의 법사인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 스님의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8월7일 초청법사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입니다. 062)226-0108

 


묘허 스님
1957년 상주 남장사에서 한산당 화엄 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1963년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성암 강백화상 밑에서 대교이력 및 전등록을 이수하고 이후 제방에서 정진했다. 1975년 은해사 말사 법주사 주지, 1979년 대전 신탄진 신흥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단양 방곡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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