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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성과 남성, 그리고 불교의 여성관

기자명 법보신문

비구니 인정한 붓다는 여성차별 깬 선구자

 

▲ 수월관음도, 일본 단잔진자 소장. 투명한 사라와 염주가 바람에 휘날리듯 우아하게 묘사돼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수월관음도는 대개 여성 이미지를 띤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진짜 그런지는 미지수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수놈이 더 화려하고 우아하다. 사자나 공작과 같은 동물들을 생각해 보라. 수놈이 암놈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다. 동물들은 암놈이 수놈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쪽보다 선택받아야 하는 쪽이 더 아름답게 진화한 것이다.


남성 권력, 여성에 ‘아름다움’ 요구


인간도 동물에 포함한다는 전제하에 진화론을 대입시키면, 여성이 남성보다 아름다울 이유는 없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보다 더 많이 치장하고 꾸미는 것이지, 육체적 본질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인간만이 동물의 보편적인 흐름을 거스르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사회조직을 만들면서 남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여성을 선택하는 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꾸미는 문화가 파생하는 것이다.


문명이 오랜 지역일수록 여성차별이 심하게 나타난다. 남성위주의 사회가 일찍부터 보다 견고해진 탓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은 신의 의도된 창조물이 아니다. 아담이라는 계획된 창조물의 재료 중 일부를 재조합해서 만든, 깍두기와 같은 존재다. 깍두기는 배추김치를 담고 그 남은 재료를 가지고, 무를 깍둑깍둑 썰어 대충 얼버무려 만들었다. 그래서 깍두기라는 말에는 ‘덤’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여성을 ‘덤’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적인 가치만을 가진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전통에서는 여성이 시집가면 남성의 성(姓)을 따른다. 또 여성은 사제권을 가질 수 없다. 즉, 수녀 수억명이 있어도 신부가 없으면 미사를 집전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이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차별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유교는 여성을 수단적인 가치로만 파악한다. 그래서 ‘논어’에는 “여성과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는 여성폄하적인 발언이 편집과정에서 여과되지 않고 기록됐다. 유교의 여성관을 잘 드러내준다. 우리에게 ‘주역’구절로 가장 널리 회자되는 부분은 어이없게도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라는 ‘계사전’의 “천존지비(天尊地卑)”다. 이는 훗날 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쳐 건명(乾名)과 곤명(坤名)이라는 축원문 기제방식을 파생하기에 이른다. 시급히 시정해야할 폐습이다.


유교적 가치를 절대시하던 조선에서 여성은 남성에 의지하지 않고는 존재할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재혼을 하지만, 남편이 죽은 여성은 수절해야 한다. 또한 여성의 위치는 ‘누구의 부인’과 ‘누구의 어머니’로만 규정된다. 여성에게는 독립된 이름이나 위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소위 내조라는 미명하에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묵묵한 희생을 강요받아왔다.


인도문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고대사회에서 남성이 없는 집 재산은 국가가 몰수했다. 여성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부속물인 것이다. 때문에 부인은 남편이 죽어서 화장하는 장작더미에 뛰어들어 타죽는 것(sati)이 미덕이다. 문화적 세뇌에 의해 일부는 자발적으로 뛰어들기도 했지만, 일부는 집안의 압력에 짓눌려 들어가게 된다.


21세기엔 상호존중 불교 덕목 필요


언뜻 굉장히 미개해 보일 수 있지만, 조선시대 열녀들도 비슷한 상황 속에서 희생된 이들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정혼남(定婚男)이 죽었다는 이유로 목을 맬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러나 조선에는 이런 여성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은 인도와 같이 문화적 세뇌와 집안의 영광을 위해 내몰린 죽음의 결과다. 또 죽어야할 대상이 친혈족이 아닌 며느리였기 때문에, 자발적인 죽음을 거부할 경우에는 시댁에서 목을 매주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기독교의 여성차별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만들고, 중세 마녀사냥을 통해 수백만 여성들을 화형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와 같은 양상이 인도와 중국문화권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어쩌면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문명에 의한 여성차별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보다 더욱더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들은 종교의 당위성과 문화적인 정당성으로 포장돼 슬픔의 여지조차 주지 못한다. 인류가 저지른 사건 중 가장 큰 야만이다.


붓다는 여성차별의 야만에 도전한 최초 선각자이자 진정한 개명자였다. 붓다가 여성의 출가를 인정한 사실은 오늘날까지 천주교에서 여성사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인지 잘 말해준다. 붓다는‘육방예경’에서 남편과 부인이 지켜야할 상호관계를 설명한다. 이는 붓다가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는 그 유명한‘아내에게 때때로 금은의 장신구를 사주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런 붓다의 여성관은 중국의 부계 중심문화와는 다른,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더 지중하게 여기는 불교의 효문화로 완성된다. ‘관무량수경’이나 ‘부모은중경’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는 여성도 능력에 따라 정당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 그로 인해 능력 있는 여성들은 많은 경제력을 확보하게 되고, 이는 남성의 선택만이 아닌 여성의 선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여성의 중성화와 연하남 그리고 꽃미남의 유행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더 크게 본다면, 이것은 진화적인 관점의 복귀인 것이기도 하다.

 

▲자현 스님

차별의 시대는 끝났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제시된 남녀의 상호존중과 역할분리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되는 최상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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