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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도시락을 배달하며 배운 마음-상

기자명 법보신문

진심으로 행하면 주변 사람도 동화

 

▲ 사이쿄인 부근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절들이 많이 있다. 히로나카 스님은 “이곳은 일본 국내에서도 절들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자식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먼저 부모 스스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른들의 삶이 바로 자식들의 거울이 되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에 대한 답을 준다고 나는 믿는다. 일본에는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정말 옳은 말이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살면 될까? 이 세상에서 제일 근본적인 삶의 진리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다. 다른 말로 하면 ‘타자(他者)를 위해 나의 소임(所任)을 어떻게 다할까?’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한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못 찾아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자식 문제로 곤경에 빠진 부모를 구하는 것이 석가모니가 나에게 주신 소임이라 여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석가모니의 손발이 되어서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나의 소임에 대해 오만해지지도 않고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억울한 소문에 그만둘까 고심


오늘은 타인을 위해 사는 의미를 생각하고자 한다.
어느 날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절에서 법화(法話)를 하러 갔는데, 거기서 눈이 먼 노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감격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스님,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놀러오시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해서 찾아갔다. 그 부부에겐 자식이 없었고, 부부가 같이 그 동네에서 제공하는 개호(介護)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동네 절을 찾아다니면서 법화를 듣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겨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노부부의 집을 찾아갔더니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가 왼쪽과 오른쪽 집게손가락만 가지고 일본 가곡을 잘 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인사를 하며 집에 들어가니 할아버지는 “여기 앉으시오. 내가 스님 어깨 주물러 드릴께”라고 했다. 내가 어깨는 안 아프다고 하자, 그럼 차 대접할 테니 부엌에서 주전자 좀 갖다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서 보니 가스난로 위에 주전자가 있었고, 물이 아직 식지 않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로 컵라면이 50개가량 마구 쏟아져 내렸다.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불렀더니 부부는 매일 아침마다 컵라면을 먹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식이 있으면 노부부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챙겨줄 텐데 라고 나는 딱한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7남매 중 막내이었는데, 형들은 모두가 술이나 도박에 미쳐 부모 재산 다 날리고 이미 세상을 뜬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노부부에겐 의지할 식구 하나 없고, 눈이 안 보여서 고생도 많았고 남한테 당한 일도 많았다고 했다. 집에서 안마 일을 했을 때는 시계가 안보이니 손님이 시간을 일부러 잘 못 가르쳐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안마를 하게 했다든가, 회를 먹고 싶어서 식당에 갔는데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간장이라고 하면서 소스를 건네 주었다든가, 그 동안 당한 일이 수도 없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는 눈이 멀어서 도박에 미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져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머리가 아파 죽겠어. 정말 죽을 것 같아!” 내가 부랴부랴 할아버지 집을 찾아가니 할아버지는 40도를 넘는 열 때문에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업고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폐렴 걸리기 직전이며 링거주사를 맞고 겨우 열이 내렸다. 할머니는 집에서 혼자 걱정하면서 문 안팎을 몇 번씩이나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개호 서비스 업자한테 도시락이 배달되어 있었다. 밥은 식었지만 반찬이 여러 가지 들어있어서 나는 “할아버지, 맛이 있겠어요”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오늘 그런 건 먹기 싫다”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드릴까요?”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스님이 만들어주면 기꺼이 먹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급히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장어양념구이가 있었다. 나는 장어를 잘게 썰어 따뜻한 밥과 잘 섞어 도시락을 만들어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장어는 정말이지 11년 만에 먹는구나”라고 하며 기분 좋게 다 드셨다.


그런데 지난 번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 컵라면이 내 마음에 걸렸다. “할아버지, 편찮으신데 내일 아침도 내가 배달해 드릴께요. 무엇을 먹고 싶은지 말씀하세요.” “난 죽기 전에 한번 우메보시(일본식 매실 장아찌)가 들은 흰 쌀죽을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어”

 

 

▲히로나카 스님.

 


3개월 계속하자 모두가 반겨


이것이 바로 노부부에 대한 공양이라는 내 소임의 시작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매실 장아찌가 들은 흰 쌀죽을 끓여서 과일과 야쿠르트와 함께 배달했다. 그런데 아침마다 내가 드나들기 시작하니까 이번에는 동네사람들의 눈이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 스님이 오늘도 또 왔네. 할아버지 재산이라도 노리고 있는 걸까?” 일부러 내 귀에 들어가도록 그런 말을 하는 동네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말까지 들으면서 공양을 드려야 되는 것일까?”하고 불평을 하고 싶어졌지만, “그래,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하면 된다”라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런데 일주일가량 흰죽을 드신 할아버지가 “정말 흰 쌀죽은 맛이 있는데, 가끔은 계란죽도 먹고 싶어”라고 말하자, 나는 아차 했다. 그렇다. 매일매일 같은 메뉴이면 누구든지 싫증이 난다. 생선을 조릴 때도 간장으로만 조리지 말고 된장 조림도 맛이 있지 않는가? 나는 다음날부터 아침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노부부한테 드리는 공양 메뉴를 생각했고, 어느새 그것이 나의 하루의 즐거움이 되었다. 바로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준 즐거움이었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 집 앞에 동네사람들이 줄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의아해하면서 차에서 내리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고맙습니다. 실은 동네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데 스님이 이렇게 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자 모두가 나를 향해 합장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새로운 사실을 다시 배운 심정이었다. 내가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그 즐거움이 주변사람에게도 전달이 된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나의 마음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었던 것이다.

 

▲히로나카 스님

같은 일과를 계속 반복하면서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진실이 주변사람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우리 절에서 아이들을 받아들여 같이 생활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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