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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등회 문화재적 가치

기자명 법보신문
  • 집중취재
  • 입력 2011.08.08 15:28
  • 수정 2011.08.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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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 왜 문화재 지정돼야 하나
“1000년간 민중이 향유한 유일의 전통문화유산”


중요무형문화재 지정기준은
전통·예술·학술성 포함여부

 

통일신라 이후 전승된 연등회
춤·음악 등 내포된 종합예술


연등회가 1000년 이상 지속돼 온 전통문화로서 충분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문화재위원들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원형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복합돼 있는 연등회를 원형을 중시하는 유형문화재와 동등한 기준으로 심사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지난 7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는 “연등회에 사용되는 ‘등제작’과 관련해 뚜렷한 역사적 계보를 확인할 수 없고, 현재 진행되는 제등행렬이 일제시대의 것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지정을 보류했다.


그러나 교계와 학계에서는 “연등회는 천년의 세월을 이어 온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문화적 자산 중에 하나”라며 “형태나 모양이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갖는 역사성과 전통성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문화재청의 보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1962년 제정된 무형문화재 지정 기준에 따르면 무형문화재는 △민족생활의 변천과 발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발생연대가 비교적 오래되고 그 시대의 특색을 지닌 것 △형식과 기법이 전통적일 것 △예술상 가치가 특출한 것 △학술연구 상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 등으로 정하고 있다. 즉 무형문화재의 가치 기준은 전통성과 예술성, 학술성 등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신라시대부터 시작돼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민중중심의 축제로 진행돼 온 연등회는 그 자체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게 학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비록 시대에 따라 연등회가 조금씩 다른 형태를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문화의 보편적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용덕 한양대 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여부에 있어 원형이 얼마나 보존돼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형 보존이라는 개념이 과거의 것을 한 치의 틀림없이 그대로 재현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문화는 화석(化石)이 아닌 생물이며, 생체일 때 성장할 수 있고 그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에 연등회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해도 이를 두고 원형의 훼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고려시대 ‘관경변상도’. 나무에 다양한 장식과 등을 달아놓은 화수(火樹)가 잘 표현돼 있어 고려시대 등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연등회는 또 ‘삼국사기’를 비롯해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사료를 비롯해 개인 문집과 ‘동국세시기’ 등 숱한 문헌을 통해 관련 내용이 소개돼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연등회의 분석을 통해 각 시대마다 불교문화와 토속 문화의 융합과 변천에 대한 흐름을 분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서연호 한국예술종합대 객원교수는 “연등회는 단순히 오래된 불교행사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타의 종교행사와 달리 민족적인 보편성을 담은 대중축제였다”며 “1000여년의 시간동안 계층과 시대를 초월해 우리 민족이 함께 향유해 온 문화유산은 연등회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성에 있어서도 연등회는 여느 문화유산보다 뛰어났다는 점이 수많은 문헌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문종이 정월에 연등대회를 닷새에 걸쳐 열었는데 흥왕사로 연등행차를 할 때 대궐의 뜰에서 절의 문까지 채붕(綵棚, 나무로 단을 만들고 오색 비단 장막을 늘어뜨린 장식 무대)을 설치하고 좌우에 등을 밝힌 산 모형(燈山)과 나무에 다양한 장식과 등을 매달은 화수(火樹)를 꾸며 불빛이 낮과 같았다. 또 행렬에는 수많은 호위군사와 함께 인가교방악관과 취각, 취라 등 음악행렬, 각종 재주꾼들이 좌우로 함께 해 웅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현대 제등행렬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연등회 제등행렬은 음악과 연극 등이 복합된 종합예술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전경욱 고려대 교수는 “고려사 등 많은 문헌에 의하면 고려시대 연등회에서는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비롯해 국내외 문화공연이 함께 어우러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며 “여기에 불교적 의례와 토속적 민속문화가 복합되면서 연등회는 이후 민중의 축제로 자리매김 해왔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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