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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의 빈부차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8.16 13:49
  • 수정 2011.08.16 14:12
  • 댓글 0

올 여름은 우리나라가 바야흐로 아열대 기후권에 들어섰음을 대다수 국민들이 확신하게 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7월 중순부터 내린 거센 빗줄기는 ‘장마’와 ‘호우(豪雨)’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여지없이 배신했다. 말 그대로 ‘동이로 붓듯’ 쏟아진 비는 산을 무너뜨리고 도심을 수몰(水沒)시키면서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인구 천만이 넘는 세계적 거대도시 서울의 중심이 한 나절의 비로 초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강남대로가 물에 잠기고 우면산 일대는 산사태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대도시 서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그 중심과 주변에 수려한 산이 여럿 있다는 점이다. 가깝게 남산과 인왕산을 비롯하여 북한산·청계산·수락산·도봉산·관악산·우면산은 우리가 언제라도 쉽게 오를 수 있는 휴식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서초·강남 지역에 위치한 우면산은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의 기습적 폭우로 산이 만신창이로 찢겨지고, 그 일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이번 산사태로 우면산 부근에서만 20여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재산 피해는 계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대했다.


지난 8월5일, 선고(先考) 제일(祭日)을 맞아 우면산 밑의 형님 댁으로 갔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장병 여러분의 수해복구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주민들 몇몇이 모여 있을 뿐 피해 상황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웬걸, 형이 사는 동(棟)에 들어서자 퀘퀘한 냄새와 함께 3층까지 산사태를 입은 흔적이 역력하고 엘리베이터도 지상 2층부터 운행되는 등 어제까지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금세 체감할 수 있었다.


산사태가 발생하자 인명 구조와 피해 복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우면산 일대에는 군인과 경찰, 소방관과 공무원,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이 몰려들어 일주일 만에 더미를 이룬 흙과 쓰레기를 치우고 집과 사람을 구했다. 지난 2007년 태안 지역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그리고 그보다 십년 전 외환위기 사태에 처했을 때 확인했듯이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과 힘을 결집하는 놀라운 저력의 유전적 형질을 가진 존재임을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 속에서도 신분과 빈부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뒷이야기에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보도에 따르면, 우면산 피해복구에 동원된 군인·경찰·소방대원 가운데 소방대원들은 찬 김밥과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무허가 판자촌으로 알려진 구룡마을에는 공무원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래미안 아트빌의 사망자 중에는 이사 올 집의 도배를 하러 왔다가 횡액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산사태의 흔적을 거의 지우고 일상적 삶으로 복귀한 이제부터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이 논의되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환란 속에서도 신분과 빈부의 차이가 엄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영국 런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 폭동은 경찰의 과잉대응이 원인이라 하며, 예전 LA폭동 또한 백인경찰의 흑인차별에서 비롯되었다. 이 두 사례는 백인 경찰과 유색인 사이의 인종차별적 성격을 띤 것이어서 우리와 상황 자체가 다르다고 여길지 모르나 안이한 판단은 늘 큰 참화를 부른다. 신분과 빈부를 가리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었다.

 

▲장영우 교수

재난을 당한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정부기관에서조차 홀대하면 그들은 완전히 절망하고 말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관계부처 공무원들에게 런던과 LA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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