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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도시락을 배달하며 배운 마음-하

기자명 법보신문

즐거운 마음으로 남 행복 빌면 기쁨 두 배

노부부 공양 8년 4개월 동안
남 위해 소임 다하는 뜻 배워

 

 

▲사이쿄인 뒷동산에 모셔진 무덤. 일본에선 무덤 자리를 신도들에게 파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으나 이곳 무덤은 모두 ‘무료’다. 아무 연고 없이 돌아가신 분의 유골은 앞마당에 있는 위령탑에 모신다.

 


기쁜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우리 절 아이들에게서 그 마음을 배웠다.
눈 먼 노부부에게 아침, 저녁마다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나는 가끔 우리 절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다녔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단 맛을 좋아하실 텐데, 과자나 떡 같은 간식도 같이 챙겨드리면 어떨까요?” “그래, 점심시간에 식사대신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도 같이 배달해드리자”라고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했다.


가끔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가면 “요새 딸기가 맛이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도 드시고 싶을 거예요”, “오래간만에 케이크는 어떨까요?”, “팥떡도 좋아 하시겠지요”라고 아이들이 나에세 제안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간식을 챙겨드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런 식으로 8년이 지난 2008년 12월27일, 할아버지가 “내일부터 며칠동안은 도시락이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이번 연말연초엔 보살필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개호(介護)시설에 가서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복지시스템이 그 만큼 좋아진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하여 1월4일에 새해 떡국을 끓여서 배달하겠다고 약속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새해 1월4일 아침, 나는 약속대로 집에서 끓인 떡국을 들고 할아버지 집을 찾았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으로 전화를 해봐도 아무도 안 받는다. 이상하다. 내가 날짜를 잘 못 기억했나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또다시 떡국을 들고 찾아갔다. 그런데 역시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개호시설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전화를 받자 나에게 연락을 못 드려서 미안하다며, 며칠 전에 그 시설에서 식중독이 발생했는데, 지금 원인을 조사 중이니 개호시설에 있는 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가 없고, 아마 1월27일 저녁이면 집으로 보내드릴 거라고 했다.

 

 

▲ 습기가 많은 일본에선 아침마다 이불을 햇빛에 말리는 게 아이들의 일과다. 폭주족 우두머리였던 켄지는 이곳에서 고등학교 졸업증을 얻기 위한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이삿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작은 보시행부터 실천 할 때
부처님 세상에 더 가까워져


1월27일 저녁, 오래간만에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도 할머니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내일 아침 떡국 갖다 주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떡이 목에 걸리면 큰일이 나니까 떡은 조금씩 잘라서 넣어주시오”라고 아주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이었다. 그것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이튿날 아침 6시 반쯤, 내가 부엌에서 떡국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 지역의 민생위원(民生委員)이라고 했다. “스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검시(檢視)중입니다.”


나는 부랴부랴 달려갔다. 어제 밤에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노부부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밤중에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추운 공기를 쐬어 뇌경색(腦梗塞)을 일으켜 쓰러졌던 것이다. 검시 결과는 동사(凍死)였다. 할머니는 눈만 먼 게 아니라 귀도 멀어서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의 8년 3개월 21일 동안의 공양 소임은 이런 식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출관할 때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일본 가곡 ‘황성의 달(荒城之月)’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수가 없다고 해서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우리 절로 모시고 왔다. 그 해 여름,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을 했고, 결국 그 해 11월에 돌아가셨다. 바로 돌아가시기 전 날, 마침 할머니 생신날이라 나는 케이크를 들고 병원에 문안하러 갔었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나는 이 노부부에게서 ‘타자(他者)를 위해서 소임(所任)을 다 한다’라는 뜻을 정말 잘 배웠다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불심이란 대자비(大慈悲)이오시다’라는 구절이 있다. 남을 위해서 일하며 기쁜 마음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좀더 자세하게 해설 해보면  이렇다.


1. 항상 기쁜 마음을 갖는다.
2.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생을 보낸다.
3. 나보다 먼저 남의 행복을 빈다.
바로 이 세 가지는 내가 눈 먼 노부부에게 배운 깨달음이었다. 싫다고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빌기 전에 꼭 남의 행복을 먼저 빌자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저 하늘 머나먼 곳에 있는 범천(梵天)에서 아주 귀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명을 얻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타자를 위해 하는 일’이다.


‘무재칠시(武財七施)’라고 하여 돈을 드리지 않고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布施)의 방법이 있다.

1. ‘안시(眼施)’는 눈으로 하는 보시다. 자애로운 눈으로 상대방과 대하자는 뜻이다.
2. ‘화안시(和顔施)’는 환한 미소, 웃는 얼굴로 있자는 뜻이다.
3. ‘언사시(言辭施)’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말로 대화하자는 뜻이다.
4. ‘신시(身施)’는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뜻이다.
5. ‘심시(心施)’는 ‘불심의 보시’라고도 한다. 온화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자는 뜻이다.
6. ‘상좌시(床座施)’는 예를 들어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이 많은 분이나 몸이 불편한 분이 있으면 자리를 양보하라는 뜻인데, 나아가서는 자신의 직위를 아낌없이 남에게 양보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7. ‘방사시(房舍施)’는 사람이 찾아오면 잠자리를 내놓자 라는 뜻이다. 즉 찾아온 손님을 따뜻한 차로 대접하고 내 집에서 자고 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히로나카 스님

생각해보면 이 정도 보시는 누구든 한두 가지씩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실천하면, 우리는 자비로운 부처님 세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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