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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처형

기자명 법보신문

뇌졸중 제부 위해 매일 법당서 기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기적의 시작

62병동 2호실 환자가 우리 병원에 온지 한 달이 됐다. 창녕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그 분은 친선축구경기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금껏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일이 있을까. 건장했던 40대 남성이 한순간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젊은 아내와 두 아이들이 느꼈을 충격은 또 얼마나 컸을까.


지난 6월 중순 쓰러진 그 환자는 곧바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실려 왔다. 그러나 20일이 넘어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보호자 요청으로 법당이 있는 불교병원을 찾게 됐다고 한다. 내가 그 보살님을 처음 뵌 것은 환자가 우리 병원에 옮기는 날 법당에서였다. 보살님은 한참동안 절과 기도를 하더니 내가 있는 지도법사실로 찾아왔다. 자신은 그 환자의 처형이고 불교신자라고 했다. 젊은 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한때 결혼생활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돈에만 관심이 있던 남편과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후로는 사업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조만간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동생부부와 함께 조용한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부가 하루아침에 의식불명이 돼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보살님은 환자의 쾌유를 위해 기도해줄 것과 종교가 없는 동생이 부처님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자신도 제부가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담당의사가 보호자들에게 “현재는 얼마나 있어야 깨어날지 알 수 없으며, 깨어나도 정상인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살님은 날마다 법당을 찾아 절과 기도를 정성껏 드렸고 아침 법문 때면 슬며시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나도 매일 병실에 들려 환자를 위해, 그들 자매가 꿋꿋하게 견뎌낼 수 있기를 기도드렸다. 또 보살님 동생에게 경전과 기도문을 주며 아침저녁 환자의 손을 잡고 정성껏 읽을 것을 당부했다. 그것이 부처님 가피를 얻는 길이자 스스로의 마음에 희망의 등을 밝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환자 못지않게 힘든 사람이 보호자다. 그러나 보살님은 늘 평온해 보였다. 젊은 여성이 타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험난했을까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 분의 눈빛을 저리도 깊게 했는지 모른다. 이래저래 경황이 없을 동생에게서 그다지 흔들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언니 영향이 무엇보다 클 듯싶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면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다. 적게는 몇 달에서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영영 일어서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적은 얼마든지 있다. 당진에 사시는 한 스님은 70일 만에 깨어나 지금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 멀쩡하게 생활하시고 있으며, 7년간 병석에 누워 꼼작도 못하던 한 젊은 환자가 지금은 법당에서 108배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기적이 절로 올 것 같지는 않다.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기적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매일 그 병실을 방문할 때면 작은 독경소리가 들리고 간혹 옅은 향내음도 나곤 한다. 보살님과 동생, 지금 그 자매는 하루하루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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