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00년 기독교가 1700년 불교를 압도한 연유 [중]
3. 200년 기독교가 1700년 불교를 압도한 연유 [중]
  • 법보신문
  • 승인 2011.08.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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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과 결탁…근대 교육기관 설립
교회차원 관혼상제로 신도간 유대 강화


자본주의와 근대성과 더불어 이 땅에서 기독교를 꽃 피운 3대 동력은 미국이다. 미군정 이후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 국가로 종속되고, 한국은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다. 두 가지가 가속도를 내면서 미국의 개신교 또한 한국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정은 남한을 분할통치하면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이념 및 세력을 배제하고 자본주의, 반공주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미군정은 정치세력으로는 친일세력과 야합하고 종교로는 기독교를 끌어들여 유착관계를 맺었다. 미국은 음양으로 기독교와 기독교 지도자를 후원하였으며, 기독교 지도자는 우익 반공, 친미를 지향하는 담론 및 사회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이에 화답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근대 교육 시스템과 기독교가 결합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중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근대 교육 기관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처음엔 선교사들이 시작하였으나 점차 토종 기독교도들이 이들을 대체하였다. 7대 명문 사학 가운데 연세, 서강, 한양, 이화, 숙명여대 등 5개 대학이 이에 해당될 정도다. 이들 대학에선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립대학이 교수채용 시 교회 집사나 장로 이상의 자격증을 요구하고 학생들에게 채플 시간을 강요한다.


유교적 엘리트가 아직 중세의 무지몽매함에 머물러 있을 때, 이들 대학의 학생은 신학문을 접하여 유교 엘리트를 물리치고 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출세를 하려면 이들과 인맥을 형성해야 했고, 교회의 신도가 되는 일은 가장 손쉽게 이들과 끈끈한 연대를 맺는 길이었다. 특히 ‘고소영정권’이라 할 정도로 노골적인 편향을 보이고 있는 현 정권에 와서 기독교세력의 권력 장악과 카르텔은 심화하고 있다.


이런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기독교의 교리가 한국인의 생활세계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은 것이다. 불교와 유교가 활력을 잃고 주춤하는 사이 그 종교적 진공상태에 기독교의 쉽고 명쾌한 생활 윤리와 가치가 파고들었다.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박애 정신은 한국인의 심성을 울렸고, “예수 믿고 천당, 마귀 믿고 지옥”의 외침은 영성은 풍부하지만 기복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한국인에게 구원의 빛을 선사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가족 전승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신개종 집단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증가하였다.


교회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문화와 결합하여 연고적 집단을 형성하였다. 어떤 사람이 한번 교회에 발을 디디면, 교회는 “마누라 바꾸기보다 교회 바꾸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로 연고주의와 다양한 조직의 틀로 그를 묶어버린다. 신도들을 구역별로 나누어 조직화하고 이들을 교회 안에서 통합한다. 교회 단위로 목회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며, 신도끼리 서로 연대를 형성한다. 특정 교회의 신도끼리 애경사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고 공동으로 물품도 구입하고 나눈다.

 

▲이도흠 교수

관혼상제도 교회 단위로 행해진다. 예를 들어 한 신도가 상을 당하면 신도들이 와서 상례를 돕고 목사는 장례를 집전한다. 교회의 신도들은 교회 밖에서도 서로 등산, 골프, 독서 등의 모임을 유지한다.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마을을 대체하는 강력한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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