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 뱀

기자명 법보신문

애욕 업장으로 윤회 거듭한 다산의 상징

 

▲상사뱀 이야기가 전해지는 청평사 공주탑.

 

 

다소 뚱뚱한 체형을 가진 개그우먼이 캐릭터 ‘출산드라’를 연기하며 다산의 상징이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와 “날씬한 것들은 가라”고 외치며 S라인 몸매에 열광하던 사회를 풍자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매끈한 몸을 자랑하고 여러 개 알을 낳는 뱀도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허나 갈라진 혀와 독, 차가운 몸 그리고 징그러운 모습이 신과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탓일까. 뱀은 애욕과 복수 화신이나 한 서린 동물로 비유되곤 한다.


‘용재총화’엔 스님이 죽어 뱀으로 환생한 설화가 있다. 진광사 스님이 시골여인을 아내로 삼고  밤이면 몰래 출입하다 죽었는데 아내를 잊지 못했다. 낮에는 독 속에 숨어 지내다 밤마다 아내와 동침했다. 결국 궤짝에 담겨 물에 떠다니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춘천 청평사 공주탑엔 청춘남녀의 진득한 사랑이 화를 부른 얘기가 서렸다. 중국 공주를 짝사랑하던 청년에게 공주가 마음을 열자 왕은 천한 그를 죽였다. 그는 “죽어도 못 보내”를 부르짖었다. 뱀으로 윤회한 그는 공주 몸을 칭칭 감고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공주는 어긋난 사랑이 애욕으로 번지자 점점 야위어 갔고, 마침내 도 높은 스님이 있다는 청평사를 찾기에 이르렀다.

 

뱀에게 “밥을 얻어오겠다”고 한 뒤 공주는 잠깐 자유를 얻었다. 때마침 가사불사 법회 중이었고 공주는 몸을 깨끗이 씻고 가사를 꿰맨 다음 법당에서 염불했다. 기다림에 지친 뱀은 몸을 배배 꼬다 기어코 공주를 찾아 나섰다. 구성폭포에 이르러 공주를 발견한 뱀은 환희에 젖어 갈라진 혀를 낼름거리며 몸을 날렸다. 아뿔싸. 폭포 아래 공주는 물에 비친 형상이었다. 물속에 뛰어든 뱀은 생을 달리했고 시신을 거둔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웠다.


짜증 한 번 냈다가 축생계로 떨어진 수행자도 있다. 금강산 유점사 산내 암자에 법호가 홍도(弘度)라는 스님은 승속을 떠나 생불로 불릴 정도로 덕이 수승했다고 한다. 하루는 스님이 밖에서 경행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먼지가 스님을 덮쳤다. 스님은 “뭔 놈의 바람이 이렇게 먼지를 일으키는가”라며 제대로 짜증을 냈다.

 

꿈 속 노인이 스님을 꾸짖었고 놀라 일어나려던 스님은 몸이 구렁이로 변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침 아침 공양을 준비하고 기다리던 대중이 스님을 찾았지만 스님 처소에선 똬리 튼 구렁이만 발견했다. 갈지자로 쓸쓸히 공양간으로 향한 구렁이는 꼬리에 물을 묻히고 다시 재를 묻혀 벽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일기진심 수사보(一起嗔心 受蛇報).” 한 번 성내면 뱀의 업보를 받는다는 절절한 가르침이었다.


‘뱀절’이라 불리는 백제시대 사찰 비암사는 차라리 한(恨) 그 자체다. 사중 스님이 며칠째 밤 깊도록 탑돌이를 하다 해가 솟으면 사라지는 청년의 뒤를 몰래 밟았다. 청년이 뒷산 숲속 굴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스님은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다. 청년은 오간 곳 없고 구렁이 한 마리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연인 즉 100일 동안 들키지 않고 탑을 돌면 구렁이 몸을 벗고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99일째 스님에게 들통 난 것이다. 스님은 영영 사람이 되지 못하는 구렁이를 평생 돌보며 살았고 실제 비암사 동쪽 산꼭대기엔 구렁이굴이 있다고 한다.


뱀의 비운은 지금도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출산드라’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오늘의 말씀. 그 분은, 지혜의 신이자 장애물 제거 신 가네샤에 몸을 감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몸에 좋은 보신약재란 이유로 펄펄 끓는 솥에 온몸을 던지셨으며, 때론 술로 우리 인간들에게 건강을 약속하시고 정력강장제로 다시 태어나셨던 것이었습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