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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라다크 최북단 사원 디스킷곰파

기자명 법보신문

새벽빛에 드러난 피안의 사원 절벽 오르내린 신심의 결정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서 있는 디스킷곰파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이 곰파는 마을 사람들이 흙과 돌을 지고 수 없이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지은 사원이다.

 

 

간밤엔 누브라계곡의 북쪽 마을 디스킷에 여정을 풀었다. 디스킷은 누브라계곡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한 마지막 마을 훈데르의 바로 아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소박한 시골 마을이지만 누브라 지역 행정의 중심지이다. 인도 최북단 라다크를 통틀어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사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이름을 따서 그대로 디스킷곰파라 부른다. 오늘의 목적지다.


하지만 출발 예정 시간보다도 훨씬 이른, 새벽녘에 눈을 떴다. 소란스런 바깥 때문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게스트하우스 마당이 떠들썩하다. 무슨 일인지 창문을 빠끔 열고 내다보니 촬영용 카메라와 마이크 등 방송 장비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다시 잠들기는 애초에 틀렸다. 세수도 미뤄둔 채 테라스로 나가 잠시 구경꾼이 된다.
라다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전형적인 인도 풍 얼굴의 리포터와 스텝들이 분주히 촬영 준비 중이다. 소란한 그들을 잠시 구경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명이 밝아오는 푸른 어둠속에 하얀 구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 여명을 따라 맞은 편 산 중턱, 마을을 굽어보는 높은 곳에 위치한 하얀 곰파에 오늘의 첫 햇살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막 얼굴을 내미는 햇살을 받아 곰파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산이 높아 골짜기 아래 마을에는 아직 해가 들지 않았지만 산 중턱에 자리한 곰파는 옅은 어둠이 깔려 있는 속세와 전혀 다른 피안인 듯 밝은 빛 가운데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점점 더 선명히 드러낸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디스킷곰파다.

 

 

▲디스킷곰파로 오르는 길엔 마중 나온듯 초르덴이 도열해 있다.

 


불과 1,2분 만에 끝나버린 그 짧은 일출 동안 곰파가 빚어낸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1분을 영원처럼 각인시켜버린다. 라다크가 숨기고 있던 속살의 아름다움을 이제 하나 더 발견한 듯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보니 마당에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다. 날이 밝자 리포터의 설명이 분주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게스트하우스와 누브라계곡에 대해 소개하는 게 분명하다. 아침 식사도 할 겸 정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 일정을 정리한다. 식사를 마칠 때 즈음, 호텔직원이 다가와 대뜸 묻는다. “촬영 좀 하고 싶다는데 괜찮죠?”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껌뻑껌뻑하자 신난 듯 설명을 시작한다. 얘기인 즉, 아침부터 소란을 떤 촬영 팀은 인도에서도 남쪽인 케랄라의 한 지역 방송국에서 왔는데 일주일에 한 편씩 인도의 중요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것. 이번에 라다크 지역을 소개할 예정인데 우리 일행의 인터뷰를 넣고 싶다는 것이다. 왜 하필 우리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이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동양인은 우리 일행뿐이다. 지금 이 마을에 있는 동양인도 우리뿐이란다. 당연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흙·돌 지고 올라 조성한 사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됐으며 어떤 곳이 인상 깊었고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등등.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 역시 우리가 라다크에 대해 알고 싶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다크도 인도에 속하고 이곳의 사람들 역시 인도인이지만 라다크 바깥지역, 대다수의 인도인들에게 라다크는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멀고 먼 오지임이 분명하다. 성의껏 답변 해주고 예정보다 늦어진 일정을 만회하러 길을 서두른다.


디스킷곰파는 최북단 라다크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원이다.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곰파답게 깎아지른 듯 위태로운 절벽위에 서 있다. 곰파로 가는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고 곰파로 오르는 길에 내려다보는 마을과 누브라계곡의 풍경도 일품이다.


약 100여 명의 스님들이 있다는 디스킷곰파는 500년도 더 전에 지어진, 누브라계곡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이 지역의 옛 곰파 가운데 규모도 가장 크다.


아침 9시 문을 여는 곰파의 첫 방문객이다. 입구에서 노스님 한 분이 반가운 얼굴로 일행을 맞아준다. “줄레, 줄레.” 문을 열어주며 일행을 맞이하는 스님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스님의 환대에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곰파 안 여기저기서 하루를 시작하는 스님들이 오간다. 다들 물통을 하나씩 들고 있다. 물을 떠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곰파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법당을 제외하고 그 아래로는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방이 몇 개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전부 스님들이 사용하는 요사다.
디스킷곰파는 1420년 세랍 장포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돌과 흙을 등에 지고 올라와 이 곰파를 지었다. 차는 당연히 없고 길도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는 마을에서부터 물을 가져오기가 힘들어 절 옆의 까마득한 계곡 아래서 물을 길어 올렸단다. 지금은 계곡에서부터 곰파까지 파이프를 연결해 모터로 물을 끌어올린다. 그런 지금도 물을 지고 오르내리던 나무계단이 계곡을 따라 그대로 놓여있다. 오랜 세월에 낡을 대로 낡아버린 나무계단은 허물어질 듯 위험천만하지만 언제 다시 필요할지 몰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절벽의 험준한 바위에 위태롭게 놓여있는 좁은 외길의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왔을 마을 사람들과 스님들의 신심, 그리고 용기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곰파에 방문객이라고는 우리뿐이다. 그런 일행이 반가운지 한 스님이 방으로 초대하신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내려올 때 꼭 들러서 차를 한잔 마시고 가라신다. 스님 방으로의 초대라니! 아침부터 예감이 좋더니 횡재한 기분이다. 스님께 꼭 들르겠다고 약속을 하고 서둘러 법당으로 향한다. 디스킷곰파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법당으로 오르는 발길이 오늘만은 버겁지 않다.


곰파는 미로같이 복잡한 구조다. 어디가 어디인지 가이드의 안내가 없고서는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오랜 세월 필요에 따라 요사를 짓고 법당을 만들면서 사원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마치 “선물용 초콜릿 상자 속에 포장돼 있는 초콜릿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색다른 모양과 맛의 초콜릿이 튀어나와 우리를 놀라게 한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법당의 문 하나하나를 열고 들어설 때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고색창연하면서도 아름다운 내부와 불보살상, 벽화와 탕카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디스킷곰파의 중심법당인 듀캉에는 수많은 탕카들이 줄을 지어 걸려있다. 탕카는 디스킷곰파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주는 증인들이다. 벽면을 따라 죽 둘러가며 모셔져 있는 불보살상들이 방문객을 향해 일시에 시선을 돌리는 듯 해 저절로 자세가 낮아진다.


판첸라마 석방 염원이 이곳에도


듀캉 옆에는 작은 법당 곤캉이 있다. 이곳에는 수호존이라 불리는 존상들이 봉안돼 있는데 얼굴과 몸을 모두 긴 비단 천으로 가려 놓았다.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손에 칼과 각종 무기를 든 수호존들의 자세는 역동적이면서도 공격적으로 보인다. 한 수호존은 말라비틀어진 사람의 팔을 잘라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인데 오랜 옛적 이 지역을 침입했던 몽골의 침략자들을 응징한 모습이란다.

 

 

▲디스킷곰파의 작은 법당인 곤캉의  수호존들. 얼굴과 몸이 가려져 있다.

 


이렇게 존상들의 얼굴을 가려 놓은 것은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참배객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얼굴에서 영험한 기운이 나오는데 그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아마 둘 다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가리개는 매년 티베트력 12월에 열리는 도스모츠 축제 때에만 벗긴다.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악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열리는 도스모츠 축제 때 얼굴 가리개를 벗겨 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것이다. 또 참석자들은 수호존의 무서운 얼굴을 보며 지난 한해 행한 나쁜 행동을 참회하는 것이 아닐까.

 

 

▲중심법당 듀캉 내부.

 


하지만 춤이 곁들여진다고 하니 축제의 분위기는 즐거울 것이 분명하다. 나쁜 것을 몰아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새것을 맞이하는 것이 축제의 목적이니 말이다.


법당을 참배하고 나오는데 법당 옆 유리문 위에 ‘Free Panchen Lama(판첸라마에게 자유를)’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스티커에는 붉은 새장 안에 갇혀 있는 하얀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감금된 어린 새는 지금껏 중국 정부에 의해 은폐된 채 생사여부와 행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판첸라마, 달라이라마가 인가해 티베트인들이 ‘진짜 판첸라마’라고 믿고 있는 ‘겐둔 최에키 니마’의 처지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유리문 뒤편은 기름등 공양을 올리는 공간이다. 누가 공양 올렸는지 크고 작은 기름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곳 라다크에서도 판첸라마의 석방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소망의 등불이 타고 있는 것인가. 저 등불 가운데 어느 하나엔 그 마음이 깃들어 있는 듯해 가슴 저미게 반갑다.

 

 

▲디스킷곰파 곳곳엔 판첸라마의 석방을 염원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올드듀캉 벽에는 판첸라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미처 참배하지 못하고 나왔다. 아쉽지만 다시 곰파 위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숨이 차고 힘들다. 아까 일행을 초대한 스님에게 가서 차를 한잔 부탁드려야겠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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