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떠나 마음으로 경을 들어야 진실로 듣는 것
감각을 떠나 마음으로 경을 들어야 진실로 듣는 것
  • 법보신문
  • 승인 2011.08.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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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르침에서 온갖 가르침을 펼치니 한 법에서 온갖 법이 모두 나오는 것
하늘의 소리도 지은 업에 따라 듣듯이 부처님 설하신 법도 업에 따라 듣는다

93. 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돈황 막고굴 329굴. 당나라 초기.

 


法唯心說者 云何敎立五時 聽分四衆. 諸佛無有色聲功德 唯有如如及如如智獨存. 凡有見聞 皆是衆生自心影像 則說唯心說 聽唯心聽. 離心之外 何處有法. 如思益經 云. 梵天言 何故說 不聽法者 乃爲聽經. 文殊言 眼耳鼻舌身意不漏 是聽法也. 所以者何 於內六入 不漏色聲香味觸法 乃爲聽經.


문: ‘법은 오직 마음일 뿐’이라고 설하는 사람이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법을 듣는 대중을 넷으로 분리합니까?
답: 모든 부처님은 색과 소리로 드러나는 공덕이 없이 오직 ‘여여(如如)’와 ‘여여지(如如智)’만 있을 뿐이다. 무릇 보고 들음은 다 중생의 마음에서 나타난 그림자이니, 곧 설하는 것도 오직 마음이 설할 뿐이고 듣는 것도 오직 마음이 들을 뿐이기에 마음을 떠나 어떤 곳에 법이 있겠느냐. 이는 ‘사익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범천: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지 않는 것’이 ‘경을 듣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문수: 눈·귀·코·혀·몸·의식에서 ‘시비분별하지 않는 것’이 ‘법을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귀·코·혀·몸·의식이 색깔·소리·냄새·맛·느낌·경계에 집착하지 않아야 ‘경을 듣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乃至 梵天問得忍菩薩 汝等 豈不聽是經耶. 答 如我等聽 以不聽爲聽. 古德云 如來演出 八辯洪音 聞者 託起自心所現. 如依狀貌 變起毫端 本質已無 影像如在. 群賢結集 自隨見聞 依所聞見 結集自語. 良以 離自心原 無有外境 離境亦無內心可得. 諸傳法者 非授與他 但爲勝緣 令自得法. 自解未起 無以悟他. 自解不從他來 他解寧非自起.


범천이 득인 보살에게 질문하였다.
범천: 그대들은 어찌 이 경을 듣지 않습니까?
득인: 우리들이 듣는 것은 ‘분별해서 듣지 않음’을 ‘들음’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옛 스님이 “여래께서 온갖 가르침을 거침없이 설파해도 듣는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듣는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모습에 의지하여 붓끝이 변한 것처럼 본질이 없어졌는데도 그림자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많은 현자들이 글을 쓴 것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따라 그것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말을 써놓은 것이니, 참으로 자기 마음의 근원을 떠나 따로 바깥 경계가 없고, 바깥 경계를 떠나 또한 얻을 수 있는 마음도 없다. 법을 전하는 모든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법을 주는 것이 아니니, 다만 수승한 인연이 되어 스스로 법을 얻도록 할 뿐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깨우칠 수 없다. 자기의 앎이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닌데, 다른 사람의 앎도 어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겠느냐.


是故 結集及傳授者 皆得影像 不得本質 無有自心得他境故. 是知 結集乃是自心所變之經 至傳授者 傳授自心所變之法. 得影非質 思而可知. 若能常善分別 自心所現 能知一切外性非性 此人知見 可與佛同 所說之法 與佛無異. 悟入自覺聖智樂故. 寶性論偈云


이 때문에 경을 결집하고 법을 전하는 것이 모두 그림자일 뿐 본질일 수 없으니, 자기의 마음에서 다른 경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알아야 한다. 경의 결집도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경이며 법을 전함도 자기 마음에서 나타난 법을 전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얻는 것은 본질이 아니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항상 자기 마음에 나타난 바를 잘 분별하고 온갖 바깥 성품이 참성품이 아닌 줄 알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지견은 부처님과 같고 설한 법은 부처님과 다를 게 없으니, 스스로 성스런 지혜의 즐거움에 깨달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보성론’ 게송에서 말하였다.


天妙法鼓聲 依自業而有 諸佛說法者 衆生自業聞.


하늘나라 신령스런 법고 소리를
자신들이 지은 업에 따라서 듣듯
시방세계 부처님들 설하신 법도
중생들이 지은 업에 따라 듣는다.


如妙聲遠離 功用處身心 令一切衆生 離怖得寂靜
佛聲亦如是 離功用身心 令一切衆生 得證寂滅道.


신령스런 법고 소리 멀리 있어도
그 영향은 몸과 마음 안에 들어와
법고 소리 알아듣는 온갖 중생들
두려움을 멀리 떠난 행복한 마음.


부처님의 설법 소리 이와 같아서
영향 끼친 몸과 마음 떠나 있어도
가르침을 알아듣는 온갖 중생들
번뇌 없는 부처님 도 증득한다네.


又 偈云
譬如虛空中 雨八功德水 到鹹等住處 生種種異味
如來慈悲雲 雨八聖道水 到衆生心處 生種種解味.


비유하면 비어 있는 허공 가운데
팔공덕수 비가 되어 대지 적시며
짜다거나 싱거운 맛 인연 맺으면
가지가지 다른 맛이 생긴 것처럼


부처님의 한량없는 대자대비로
팔성도의 감로수를 비로 내리니
중생들의 마음속에 도달을 하면
이런저런 안다는 맛 생기게 하네.


釋曰. 如天鼓聲 應諸天所知之量 猶龍王雨 隨世間能感之緣. 證自法而不同 成異味而有別. 法亦如是 隨見差殊 於一乘而開出諸乘 從一法而分成多法


이를 풀이하여 보자. 하늘나라 법고 소리가 모든 하늘나라 중생들이 법을 아는 만큼만 들리듯, 용왕이 비를 내려 세간이 감당할 만큼의 인연을 따라가듯, 중생들이 자신의 법을 증득하는 것이 같이 않아 다른 맛이니 차별이 있다. 법도 이처럼 중생의 다른 견해에 수순하여 ‘한가르침’에서 ‘온갖 가르침’을 펼치니 ‘한법’에서 ‘온갖 법’이 나오는 것이다.


강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교리 내용이 풍부하니, 다른 종교에서는 보는 경전이 간단하지만 불교에는 방대한 팔만대장경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 이런 저런 방편을 말하고 있는 대장경이기에 얼핏 서로 보기에 모순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래서 이 내용을 정리하여 자기 종파의 입장을 드러내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이 천태종의 지자대사와 화엄종의 현수대사이다. 지자대사(智者大師)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시팔교(五時八敎)’로 분류하여 해석한다. ‘오시(五時)’란 부처님의 평생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눈 것이다. 첫째는 ‘화엄시’이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닫고 불교 최고의 진리 화엄경을 말씀하셨다고 하는 21일간의 설법기간을 말한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이니, 21일 간 화엄경을 설하고 난 뒤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시작으로 12년간 주로 소승교를 설한 때이다. 이때의 설법을 모은 것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이니 8년간 대소승의 법을 함께 설하여 영리한 근기나 둔한 근기 구별 없이 고르게 법의 이익을 주는 시기를 말한다. 유마경, 사익경, 능가경, 능엄삼매경, 금강명경, 승만경 등을 설한 연간을 말한다. 넷째 ‘반야시(般若時)’이니 방등시 뒤에 22년간 모든 반야경을 설법한 기간을 말한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이니,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법화경은 8년간 설법이며 열반경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최후 하루 낮 하룻밤 동안에 설법한 것이다. ‘오시(五時)’를 가르친 시기를 합산해 보면 50년이 되는데 지자대사는 부처님께서 29세에 성도하시고 79세에 열반하셨다고 보기 때문이다.


팔교(八敎)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의 방식을 달리한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교화 방법에 따라 돈교(頓敎)·점교(漸敎)·비밀교(秘密敎)·부정교(不定敎)로 나누고, 또 설법의 내용에 따라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를 말한다. 장교란 경장·율장·논장의 삼장에 의해서 세운 교법이니 즉 아함경·5부율·바사론·구사론 등의 교학인 소승자리교(小乘自利敎)를 말한다. 통교란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의 삼승에 통하여 그들이 함께 받는 가르침을 말한다.


별교(別敎)란 성문·연각은 이해할 수 없고 보살승의 수행자만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가르침을 말한다. 별교는 그 가르침이 원융무애하지 못하기에 원교와는 틀리다. 원교란 현상과 이치가 원융한 중도의 실상을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법을 듣는 대중을 넷으로 분리합니까?”하는 물음은 ‘오시팔교(五時八敎)’에서 ‘오시(五時)’와 설법의 내용에 따라 ‘장교(藏敎)·통교(通敎)·별교(別敎)·원교(圓敎)를 저마다 근기에 맞추어 알아듣고 있는 대중을 말한 것이다. ‘부처님의 법은 오직 마음일 뿐’인데, 하늘나라 신령스런 법고 소리를 자신들이 지은 업에 따라서 듣듯 시방세계 부처님들 설하신 법도 중생들이 저마다 지은 업에 따라 듣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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