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세월을 보살피는 디스킷곰파의 스님들

기자명 법보신문

이 푸른 하늘을 기억했다가 꽃다운 계곡서 다시 만나길

 

▲디스킷곰파에서 내려다 보는 누브라계곡의 풍경. 새로 조성된 거대한 미륵불좌상의 선명한 원색이 무채색의 계곡에서 꽃처럼 빛나고 있다.

 

 

아무리 고산에 적응이 됐다고는 하지만 디스킷곰파 내부를 계속 오르내리니 당할 재간이 없다. 숨소리가 마치 악을 쓰는 듯 들린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운지 지나가는 스님들이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천천히 숨을 쉬라”고 조언 해주는 스님도 있고, 힘들게 길어온 물을 마셔보라며 권하는 스님도 있다.


하지만 애를 쓴 보람이 있다. 곰파의 지붕에 올라 내려다보는 누브라계곡의 전망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려함, 그 자체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고작해야 타르초와 룽다만이 간간히 시야 속으로 뛰어들 뿐이다. 그것은 전망을 가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는 라다크의 또 다른 풍경이다.
이 광활한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놓고 있는 사람은 우리만이 아니다. 디스킷곰파의 스님들도 곳곳에서 누브라계곡의 아침을 감상하며 망중한에 빠져있다. 스님들은 매일 아침 이 풍경을 볼텐데, 그래도 감동은 언제나 새로운가보다. 곰파 옥상, 끄트머리에 서서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 스님이 우리 일행을 보더니 손짓을 한다. ‘이쪽에서 보면 더 멋있다’는 뜻인데, 그쪽 난간으로 가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 보아도 멋있다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보이자 너털웃음을 터트리신다.


특히 곰파에서 내려다보면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 위에 조성돼 있는 거대한 미륵불좌상이 눈길을 잡아끈다. 쇽강을 따라 펼쳐진 넓은 평야와 강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미륵부처님은 한 눈에 보아도 최근에 새로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푸른 하늘과 강줄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채색에 가깝게 보이는 주위 풍경과는 달리 붉은 좌대와 푸른 법의가 뿜어내는 선명한 원색이 너무 강렬해 눈이 부실지경이다. 한 동안 말을 잊게 만드는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다.

 

 

▲ 디스킷곰파는 디스킷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험준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곰파는 여러 개의 방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어 하나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다른 방의 입구가 나온다. 모퉁이 몇 개를 돌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지만 그 가운데 멋들어지게 장식된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니 제법 큰 법당이다. 내부 수리 중인지 안에서는 세 명의 스님들이 벽면에 예쁘게 단청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스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조심 다가가 본다. 그래도 인기척을 느낀 스님들이 고개를 돌려 일행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스님들의 환한 표정에 용기를 얻어 가까이 다가가 구경을 시작한다. 스님들은 불단 아랫부분에 용과 꽃, 각종 길상 문양들을 그려 넣고 있다. 얼핏 보기에 그 문양들은 우리의 전통 단청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밑그림도 없이 바로 색을 칠하는 솜씨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단청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절의 노스님들로부터 그리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전문가는 아니라며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한다. 불단 장엄은 2, 3일이면 다 끝낼 수 있다는데 그 후에는 법당 내부 단청작업을 할 계획이란다. 며칠씩 쭈그리고 앉아 색을 칠하는 작업이 보통 힘들지 않을 텐데 스님들 표정엔 힘든 기색이 없다.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며 작업을 방해하는 불청객에게도 스님들은 미소를 보태어 대답해 준다. 단청의 고운 빛보다 스님들의 환한 얼굴이 법당을 더 아름답게 장엄해 준다.


법당 밖으로 나오니 우리 일행 외에도 참배객들이 한두 명씩 곰파 안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곰파 입구에서 출입문을 열어주던 스님과 다시 마주쳤다. 이 스님의 소임은 방문객들에게 곰파 입장권을 판매하는 일이다. 라다크의 오래된 곰파들은 대부분 입장료를 받는다. 우리로 치자면 문화재관람료인 셈인데 입장료는 보통 20루피(한화 약500원)부터 100루피까지 다양하다. 곰파에 들어설 때 20루피를 지불하고 받아든 입장권에는 ‘지급하신 입장료는 곰파의 보수와 유지에 사용됩니다’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언제부터 라다크의 곰파들이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라다크를 찾는 외지인들, 관광객들의 수가 많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입장료를 받는 스님은 방문객들과의 대화가 더 즐거운 표정이다. 일행에게 “듀캉에 가 보았냐”며 사원 구석구석, 방문객들이 꼭 들러야할 곳들을 설명해준다. 그 모습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드니 제법 그럴듯하게 포즈도 잡는다. 오늘은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다. 덕분에 한가한 스님과 이렇게 잠시 동안 수다를 떨며 숨을 고른다. 스님은 “날씨가 아주 좋은 날 곰파를 참배했으니 여행하는 기간 내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며 덕담을 해준다. “벌써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고 대답하자 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곰파 입구를 돌아 계단을 몇 개 올라가니 수돗가가 있다. 곰파의 스님들은 이곳에서 각자 쓸 물을 길어간다. 한 스님이 통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물을 떠간다는 스님에게 “매번 물을 길어다 쓰기가 번거롭겠다”고 물으니 손을 내저으며 “예전엔 아래 계곡에서 물을 길어왔는데 지금은 수도가 있어서 훨씬 편해졌다”며 만족스런 표정이다. 이렇게 길어온 물은 주로 차를 끓이는데 사용하는데 “물맛이 좋아 차맛도 일품”이라며 “차를 한 잔 마시겠냐”고 묻는다. 스님의 마음은 고맙지만 이미 차를 마시러 가겠다고 약속한 스님이 떠올라 정중히 사양한다. 스님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초면의 외국인에게 베푼 스님의 친절을 받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물통을 들어드리겠다”고 하니 스님이 박장대소다.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무거운 물통을 들 수 있겠냐”며 “약속한 스님이 기다릴 텐데 어서 그곳으로 가보라”며 먼저 자리를 뜬다.

 

 

 


곰파에선 모든 일을 스님들이 직접 한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빨래를 너는 일도, 곰파 구석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빗자루질도 다 스님들 몫이다. 그러고 보니 재가종무원은 보이질 않는다. 곰파는 오롯이 스님들의 수행처이며 기도처이자 생활공간이다. 그 속에서 스님들은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조용하지만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다. 60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곰파는 이렇게 부지런한 스님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이어져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마니차, 미처 손보지 못해 빛이 바랜 벽화, 틈이 맞지 않아 조금 벌어져있는 창문들도 모두 정겨워 보인다. 저들도 스님들이 살펴주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고 혹독한 기후가 반복되는 라다크에서 곰파를 지키는 스님들의 손길이 없다면 곰파는 순식간에 갈라지고 허물어질 것이다. 곰파를 오가는 스님들의 부지런한 발자국 위로 600년 역사를 보살피는 신심과 정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티베트가 외롭지 않도록 한국불자들 관심 가져주길”

 

▲롭상 노르부 스님

일흔 살 롭상 노르부 스님의 당부


“어서 들어와요. 차 한잔 마시기엔 부족한 것이 없어요.”


일행을 방으로 초대한 롭상 노르부 스님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방사가 많은 디스킷곰파에서 롭상 노르부 스님의 방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동안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데 스님이 먼저 일행을 발견했다.


“이곳엔 스님들이 많아서 방사도 아주 많아요. 나도 열다섯 살에 디스킷곰파에서 출가해 줄곧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지만 가끔씩 길을 잃는걸요.”


길을 못 찾고 헤매느라 진땀을 흘린 일행을 위로하느라 스님이 건넨 농담에 모두들 한 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올해로 세납이 일흔 살인 롭상 노르부 스님은 일행을 방에 앉힌 후 방사 입구에 있는 작은 주방에서 손수 차를 끓인다. 시자도 없어 보인다. 서너평 남짓한 스님의 방에 가구라고는 경전을 넣어둔 작은 책장과 앉은뱅이 테이블 두 세 개, 그리고 침상과 의자 하나가 전부다. 벽에는 불보살상을 그린 탕카가 빙 둘러가며 걸려있고 햇볕이 잘 드는 창가의 책장 위, 가장 높은 곳엔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정성스럽게 모셔져 있다.


잠시 후 스님은 짜이와 비스킷, 그리고 갓 구운 라다크식 보리빵을 내온다. 자리에 앉아 노스님으로부터 차 대접을 받기가 익숙하지 않아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하지만 스님은 그냥 앉아있으라고 손짓을 하시며 자꾸 먹을 것을 꺼내 오신다. 버터와 우유를 약간 넣어 뜨겁게 끓인 차에 달콤한 비스킷을 곁들이니 맛이 일품이다.


스님은 맛있게 차를 먹는 일행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일행의 이름과 그 뜻을 물어본다. 스님의 이름인 롭상은 ‘좋은 태도’를 뜻한다고 한다. 티베트 4대 종파 가운데 대표적 종파인 겔룩파의 개조 총카파의 본래 이름 역시 롭상이다. 스님은 자신의 이름이 총카파의 본래 이름과 같다며 그 뜻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세납 일흔인 롭상 노르부 스님은 디스킷곰파의 한주다. “나이가 많아 이제는 별다른 소임이 없다”니 우리로 치면 한주인 셈이다. 롭상 노르부 스님의 일과는 기도의 연속이다. 새벽4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에 동참하는데 새벽예불은 보통 3, 4시간씩 계속된다. 예불을 마치고 난 후에는 각자 맡은 소임을 하는데 스님은 처소로 돌아와 오전 중에 청소나 빨래 등 간단한 일을 손수 처리한다. 오후 후엔 독경과 기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10시 즈음엔 잠자리에 든다. 1년에 두 세 번, 달라이라마가 여는 대중 법회에 참석하는데 라다크 지역에서 법회가 열릴 때면 어지간히 먼 거리라도 꼭 찾아가 가르침을 듣는다. 매년 삼월엔 직접 다람살라로 가서 달라이라마 법회에 참석한다.


“한국은 불교 국가죠? 한국 스님들은 어떻게 수행하나요?”
롭상 노르부 스님의 질문에 순간 얼른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한국을 불교국가로 알고 있는 스님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 “한때 불교가 국교인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종교가 섞여 있고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교세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하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듯 연신 손바닥으로 무릎을 친다. 하지만 “스님들은 참선, 독경, 염불 등 다양한 수행을 하고 있고 신도들도 수행을 열심히 한다”고 하니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한국에 돌아가서 라다크와 이곳의 불교를 잘 소개해주세요. 라다크와 한국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자연 환경이나 사람들의 얼굴, 말도 모두 다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라는 점을 꼭 알려주세요. 라다크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에 점령당하고 있는 티베트의 불교가 쇠약해진다면 라다크 불교는 무척 외로워질 것입니다. 전 세계의 불자들이 모두 형제가 되어 서로 돕길 바래요.”


스님의 당부에 가슴이 찡하다. 이곳 누브라계곡은 중앙아시아의 길목, 티베트의 초입이기도 하다. 평생을 이곳에서 수행한 스님은 매년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지만 정작 라다크불교의 뿌리인 티베트는 단 한 번도 순례하지 못했다. 갈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듯 스님의 당부엔 티베트불교의 앞날을 걱정하는 노승의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스님의 당부를 잘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자 스님은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 미소를 보며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자 스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난 이미 나이가 많지만 여러분이 이곳을 사랑하는 만큼 언제든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언제 다시 이곳에 와 롭상 노르부 스님이 주신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을까. 약속할 수 없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