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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의 수행자

기자명 법보신문

티베트에서 수행하다 병 때문에 귀국
중병임에도 따뜻함과 배려 잊지 않아

지난 6월말 우리 병원에 입원한 비구니 스님은 전형적인 수행자였다. 엄청난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았으며, 병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스스로를 완성해나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세수로 50대 후반인 스님은 20대에 출가해 줄곧 화두 하나를 붙들고 살아온 선승이었다. 그러던 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자 죽기 전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성지를 다녀오고 싶었다고 한다. 때마침 인연 있는 사찰의 주지 스님 도움으로 2007년 무렵 순례의 길에 올랐다. 스님은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지들을 일일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들른 곳이 인도 다람살라였다. 그곳에서 티베트불교 수행을 처음 접한 스님은 이왕 온 김에 좀 더 머무르며 수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님은 빠듯한 여비를 아껴가면서 그곳에서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나 스님의 의지와 달리 몸은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았다. 심한 고통이 수시로 찾아오고 실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스님은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지난 7월 중순 지방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한 뒤 우리병원으로 실려 왔다. 스님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상태가 대단히 위중함에도 얼굴 표정은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는 점이다. 스님을 진찰한 의사는 간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다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수술날짜는 7월20일로 잡혔다. 나는 수술이 잘되기를 부처님께 아침저녁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수술 전날 밤, 스님이 아픈 몸을 이끌고 날 찾아왔다. 그러고는 부탁이 있다며 천천히 복대를 풀었다. 그곳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30장이 있었다. 스님은 허약한 몸으로 외국생활을 하다보니 언제 죽을지 몰라 장례비 용도로 갖고 다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내일 못 일어나면 장례비로 쓰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에 시작된 수술은 오후를 한참 넘기고서야 끝났다. 손상된 간은 상당부분 잘라냈고 그곳에 박혀있는 한 움큼의 돌들도 제거했다고 했다. 내가 갔을 때 스님의 얼굴은 상당히 부어있었다. 다음날 일반실로 옮겨간 스님은 거동조차 어려울 텐데 새벽마다 법당에 내려와 1시간 이상 걷기수행을 했다. 병실을 찾을 때에도 스님은 늘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한번은 내게 “병원도 수행하기에는 참 좋은 공간”이라며 싱긋이 웃었다.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스님의 반듯한 일상을 지켜보며 은근히 경외심을 갖는 듯했다. 스님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지난 8월초 퇴원할 수 있었다. 난 스님이 가난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기금으로라도 병원비를 도와드리려 했다. 그러나 스님은 장례비로 쓰려 했던 돈과 아는 스님들이 오셔서 준 약간의 돈을 모두 합하면 병원비가 될 수 있을 거라며 기금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라고 했다.


나는 스님 몸이 회복될 때까지 강화도의 내 토굴에 머무시도록 했다. 그곳에서 스님은 지금도 몸을 추스르며 정진하고 계신다. 수행은 자비와 지혜의 형태로 드러난다. 스님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있는 내내 따뜻함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


육체의 병으로 인해 마음까지 병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나무 푸른 것은 겨울에야 안다’는 옛말처럼 평소 스스로를 단련하지 않고서는 힘겨운 상황에 의연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수행이 꼭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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