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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사 성전암 현응선원 선덕 일오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볼 때는 보기만 하고 들을 땐 듣기만 하라”

 

▲일오 스님

 

 

모두 합장하시고 제가 선창할 테니까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신 존귀하신 분이며 공양 받을만한 분이시며 완전한 깨달음을 스스로 이루신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우리는 의식 때마다 삼귀의(三歸依)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 감흥 없이 귀의불(歸依佛), 귀의법(歸依法) 귀의승(歸依僧) 해버리거나, 또 찬불가로 하다보니 재미는 있지만 참 뜻이 우러나는 그런 정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말로 삼귀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저에게는 다른 의지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오직 저의 의지처입니다. 저에게는 다른 의지처가 없습니다. 법만은 오직 저의 의지처입니다. 저에게는 다른 의지처가 없습니다. 승가는 오직 저의 의지처입니다. 비할 수 없이 훌륭한 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 지혜와 덕을 고루 갖추신 분, 아낌없이 주시는 분, 으뜸으로 인도하시는 분, 최상의 진리를 펴 보이시는 분, 열반에 다 도달하신 분. 부처님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보배, 이와 같은 진리의 예에 여러분은 행복할지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보배가 있지만 부처님께 견줄만한 보배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보배가 있지만 담마(가르침)에 견줄만한 보배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보배가 있지만 승가에 견줄만한 보배는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제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서 나도 부처님과 똑같이 되고 싶어서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하고 법문을 듣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은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하고 진실 되게 물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부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합장하며 읊은 이 ‘예배송’에는 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나타나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러한 부처님께서 과연 어떠한 진리를 깨달으셨고 중생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나’는 인연지어진 존재일 뿐


우리가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을 거치면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게 돼 버렸는데 이 어려운 말을 부처님께서는 본래 이렇게 쉬운 말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이 몸의 현상은 한 조각 거품이요 느낌은 하나의 물방울 같으며 인식은 한편의 아지랑이 같고 마음의 구성은 파초 나무 같고 알음알이는 요술의 환상과 같다. 이것이 여래의 가르침이다.” 또 “물질은 무상(無常)한 것이요 비 물질인 느낌도 무상한 것이요. 인식도 무상한 것이요 마음의 구성도 무상한 것이며 알음알이도 무상한 것이다.”


무상은 한순간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말씀을 합해보면 결국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無常) ‘나’라는 실체 역시 이 생에 인연 지어진 존재(無我)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무아연기(無我緣起)’라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삼법인(三法印)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먼저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이 무아연기를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독자적인 개체성을 가지고,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라고 집착하는 나는 허구적인 것이다. 인연에 의해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이다’라는 말씀을 거듭거듭 강조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없어지고 맙니다. 부처님께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근본적인 가르침이 이것입니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는 다른 것이 아니고 무상하므로 무아요, 무아이므로 무상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물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해서 마음의 근본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동일시해서 ‘나’로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오온’을 통해서 몸(色)과 마음(色受想行識)을 해체했으며, 마음이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실체가 있는지를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6근(六根),6경(六境),6식(六識)에 의해서입니다. 눈만 가지고는 보지 못합니다. 

 

볼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대상이 있기 때문에 조건 지어지는 것을 인연이라 합니다. 마음 역시 대상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며, 대상은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에 조건 지어진 마음도 생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들여다볼 때에는 마음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속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변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일어난 생각에 상응하는 생각이 따라 일어나니까 이를 똑같은 마음으로 착각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다음에 일어난 생각이 앞에 일어난 생각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도 아닙니다. 이미 일어난 생각이 인(因)이 되어 다음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연기법(緣起法)의 이치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무아연기의 도리를 잘 이해할 때 일상의 어떤 욕망에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 스님들께서는 즉시현금(卽是現今) 별무시절(別無時節)이라고 했습니다. 임제 스님이 특히 강조하신 말씀인데 “지금 이 순간 이것뿐이다”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뿐 다른 시절은 없다”가 정확한 뜻일 겁니다.


한꺼번에 모든 욕망이 다 사라져 도인처럼 깨닫는 것은 요원하겠지만 순간순간 일어나는 욕망에 끌려가는 그 힘이 자꾸 약해져서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허공과도 같아질 것입니다. 구름이 끼나 먼지가 일어나나 허공은 허공 그 자체이듯이 우리 본심(本心) 자리도 이와 같습니다. 이를 법성(法性), 부처라 합니다.

 

‘돈오입도요문’에서 대주 혜해 스님은 본심자리를 알려면 ‘선정(禪定)’이 필요하다 하셨습니다. 허공과도 같은 본심자리가 참 삶이건만 꿈의 세계를 나로 알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無明)을 뛰어넘으려면 부지런히 닦으라고 하신 겁니다. 망념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선(禪)’이라 하고 본성을 보는 것을 ‘정(定)’이라 합니다. 그리고 선과 정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무주심(無住心)’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무상심(無常心)’이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모든 수행은 바로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많아서 항상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이 자체는 물거품과 같은 것으로 실체가 없습니다. 만약 집착만 놓아버리면 흔적조차 없게 됩니다. 허공이 깨끗하고 여여한 것처럼 우리의 본성도 그렇습니다. 자성은 본래 깨끗하나 번뇌 때문에 더렵혀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바이아’라는 분이 있는데 제일 짧은 순간에 아라한을 성취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바이아라는 제자에게 이런 법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바이아여, 그대가 볼 때는 보기만 하고 들을 때는 듣기만 하고 느낄 때는 느끼기만 하고 지각할 때는 지각하기만 하고 인식할 때는 인식하기만 해라” 그리고 다음에 똑같은 말을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거기에는 그대가 없을 것이다. 그대가 없기 때문에 거기에 같이 하지 않는다. 거기에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이것이 괴로움의 종식이다” 이는 수행을 할 때 이와 같은 마음을 먹고 한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상심이 곧 부처님 마음


오늘 법문 수행한 높은 선업공덕으로 편안한 행복을 얻었기에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 절대로 삿되고 어리석은 길 따르지 않고 올바르고 지혜로운 길 걷겠으며 모든 나쁜 것들을 만나지 말고 행복을 얻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수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서원하노니 제가 해탈을 구하면 곧바로 깨달음에 이르러서 험한 사바세계의 모든 욕망과 집착이 끊어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악업을 끊고 바른 마음 깊은 생각 참다운 지혜와 청정한 노력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진리의 위없는 힘과 저의 노력과 실천 수행하는 힘으로 어떠한 마장도 저에게 가까이 오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부처님과 저의 덕 높으신 스승님, 그리고 성스러운 승가의 힘으로 저의 마지막 탄생일 때까지 어떠한 마장도 절대로 접근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이 법문은 8월 28일 봉은사가 마련한 선원장 초청 선지식 일요법회에서 있었던 일오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일오(一悟)스님
194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1965년 월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1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3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행했으며 월명암 사상선원장, 태안사 원각선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파계사 성전암 현응선원 선덕으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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