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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가’ 유감

기자명 법보신문

요즘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이 심상치 않다. 각종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벌이는 경연 혹은 오디션 형식 프로그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유럽에선 K-Pop 공연을 더해달라며 시위를 벌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돔에는 15만 명이 K-Pop 공연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한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K-Pop 차트가 신설된 것은, 최근 한국 대중가요의 위세와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후한서’에 “동이(東夷)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우리 민족은 ‘흥’의 유전적 형질을 DNA에 지니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유수의 콩쿨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고 세계 일급의 연주가나 성악가로 활동하는 이가 많은 것도 이런 유전적 형질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제 한국 음악(인)은 서구 클래식과 대중음악계에서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이과계통의 박사과정생에게서 들은 얘기다. 어느 날 실험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료가 “한국 음악 좀 알려 달라”고 해 서태지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서태지 노래는 그가 청소년 시절에 들었던 가장 강렬하고 개성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이었으나, 실험실 동료들은 “그건 8음계, 서양음악이야”라며 고개를 저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청소년들이 환호하는 K-Pop도 바탕은 서구 음악이고, 세계적 연주가·성악가가 하는 음악도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한국 음악은 귀를 씻고 찾아 들으려 해도 쉽지 않다.


KBS 클래식 FM과 국립국악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국악은 ‘사랑가’라 한다. 이 노래는 ‘춘향가’ 중 몽룡과 춘향이 처음 만나 사랑을 확인하는 대목으로 소리꾼이나 듣는 이의 어깨가 절로 출썩거릴 정도로 가락이 흥겹다. 그러나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답한 수많은 사람들이 ‘춘향전’과 ‘사랑가’의 내용과 가사의 뜻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걸까?


‘춘향전’은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을 만큼 우리 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고전이다. 그 내용은 양반 아들 춘향과 기생의 딸 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으로 알려져 있지만, 판본과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이 작품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전임은 분명하지만, 그 내용은 청소년에게 읽히기 적절하지 않은 대목이 많다.


특히 몽룡과 춘향이 첫날밤을 보내는 대목(‘사랑가’)은 매우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음담이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도 민망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정본으로 인정받는 ‘열녀춘향수절가’는 중학생의 필독서 목록에 수십 년째 등재되어 있고, 판본과 소리하는 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긴 하지만 열 살도 안 된 어린 아이가 ‘사랑가’를 능청스럽게 부르면 어른들은 좋다고 박수를 친다.


중학생에게 ‘춘향전’을 읽으라는 이나, 청소년에게 ‘사랑가’ 창을 시키고 박수치는 이 모두 그 내용에 무지한 사람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사랑가’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널리 전파되려면 가사 내용과 뜻이 정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내용이 대중 앞에서 부르기 곤란하면 다른 대목으로 대체하고, 그 대목을 불러야 할 때에는 가사가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판소리는 원래 ‘밤의 문화’인 데다 판본이 많아 대중 공연에 적당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장영우 교수

우리 국민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가’ 가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판소리는 극적·서사적 요소나 해학성이 뛰어나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장르다. 판소리가 세계적 음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저속하다는 얘기가 들려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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