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가정폭력-하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열고 주변에 도움 청해야 폭력 해결

가정폭력 희생자 손잡아 주고
말 들어줄 때 닫힌 맘도 열려


피해자 스스로 현실 맞설 때
마음 후원자 얻고 해법 찾아

 

 

▲ 히로나카 스님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려운 일에서 도망치지 말고 현실과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DV(domestic violence) 라고 불리는 ‘가정내 폭력(家庭內暴力)’ 희생자의 마음 상처는 어떻게 구제 받을 수 있을까? 지난 번 소개한 료타의 경우, 새로운 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료타의 마음을 구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료타를 우리 동네학교로 전학시키기 위해 교장과 담임선생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교감선생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료타가 교실로 가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료타는 오늘 자기 반에 가기 싫구나. 그럼, 교감선생님과 같이 운동장에 나가서 걸어볼까?”


료타는 그 말에 바로 응했다. 나는 창문을 통해서 교감선생과 료타가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감선생은 료타의 발걸음 넓이에 맞추어 천천히 운동장을 걸었다. 둘은 마치 숨을 내쉬고 들이 쉬는 속도까지 맞추는 듯했다.
“료타는 무슨 걱정이 있는 거야?” “엄마 소송이 잘 해결될까 걱정이예요. 그리고 혹시 아빠가 갑자기 여기 올까봐 무서워요.” “여기는 괜찮다. 걱정하지마” “정말이예요?” “그래, 정말이지.”


교감선생과 료타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동장을 두 바퀴 정도 걸었을 때 료타는 말했다. “교감선생님, 저 교실에 가겠어요.”


어른이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서 아이의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추어 지켜보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이고 육아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료타의 마음에 다가간 교감선생이 있었기에 료타는 그날부터 빠짐없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가끔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데,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반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40명 학생이 있는 그 반에서 3명이 불등교(不登校)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교장선생에게 오늘 수업은 교실에서 10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볼 테니 허락해달라고 말했다.


그날 37명의 학생을 데리고 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 예고 없이 불등교 학생 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요즘 학교마다 심리상담 선생이 있어서 아이의 불등교 등 문제가 생길 때 엄마들이 와서 상담을 받기도 하는데, 거의 대부분 카운슬러 선생이 하는 말이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가게 하지 말고 좀 지켜봅시다”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보통 그 말을 그대로 듣는데, 아버지가 학교 가라고 큰소리라도 치면 당장 부부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은 처음 며칠만 학교를 안 가면 안정을 되찾는다. 그래서 카운슬러 선생의 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학교를 며칠 안 갔다면 문제는 그 때부터다. 학교는 모든 아이가 꼭 가야 되는 곳이다. 현재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한다면 꼭 현실을 이겨내고 가야 되는 곳이다. 만약 지금은 학교를 안 가도 된다 치자. 그럼 사회에 나가서 직장이나 결혼 생활은 어떤가? 싫다고 해서 도중하차는 못할 것이다. 학교를 나오면 더욱 큰 장애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학교만 안가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입학한 아이들하고는 똑같이 졸업을 하는 것이 아이들 인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기 마련인데, 학생 시절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냈던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후의 인생에 아주 큰 재산이 되는 게 틀림없다.


내가 같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찾았던 불등교 아이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 아이는 너무나 놀라서 2층으로 도망가 버리고, 한 아이는 자기 방 장롱 속에 숨어버렸다. 그리고 또 한 아이는 친구들 모습을 보니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아침, 37명 아이들이 모두가 6시 반에 학교로 집합하여 3명의 불등교 학생들 집을 다니면서 학교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날부터 3명은 매일 학교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이것이 바로 학교 친구 학우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 주변에도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만약 자기 반에 그런 아이가 있으면 누군가가 “왜 그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어?” 라고 말을 걸면 문제가 해결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친구란 서로 마음이 맞는 존재이기도 하고, 서로 마음으로 다가서는 존재이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의 DV 피해자인 료타의 학교 친구들이 료타가 요새 기운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서 무언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좀 더 빨리 료타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직장 동료가 료타 엄마의 모습에 신경을 더 썼으면, 료타 아버지의 행동에 무언가를 느끼고 말을 걸었더라면 상황이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요새 왜 그래?” 그 한 마디를 걸고 “실은 요새 좀 힘든 일이 있어” 라고 대답하는 인간관계야 말로 ‘삼보(三步)의 거리’다. 상대방에게 다가서는 마음이 바로 곤경에 빠진 이웃을 구하는 열쇠가 된다.


내 스스로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웃과 사귄다면 내 아이의 문제나 내 가정 문제, 혹은 아이의 왕따 문제 등에서 내 가족을 지킬 수가 있고, 내가 다른 아이나 가족들을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힘들 때마다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마치 범천(梵天)에서 부처님이 길고 긴 명주실을 늘어뜨리고 그 실 끝에 달린 바늘구멍에다가 실을 꿸 정도로 아주 기적적인 확률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아주 소중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내 목숨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즐겁게 살고, 어려운 일에서 도망치지 말고 현실과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내가 항상 아이들에게 “도망치면 쫓기게 된다”라고 가르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히로나카 스님

료타도 료타 엄마도, 그리고 불등교 아이들도 마음의 후원자를 얻고 현실과 맞서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어려운 현실에 한 발 더 내딛고 맞서면 꼭 길은 열린다.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내 문제를 풀어나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 서로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를 하고,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겨 살았으면 한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