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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담마딘나

기자명 법보신문

감로법문으로 대중포교 앞장선 비구니 설법제일

불법에 심취한 남편 원망하며 오히려 출가
부처님 가르침에 단박 깨달아 성자로 추앙

 

 

▲삽화=김재일 화백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은 여느 때와 달랐다. 항상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며 다정하게 아내를 대하던 남편이었건만 그 날은 마중 나온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말없이 오랜 시간 사색에 잠겨 있었다.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도 묵묵히 먹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남편은 더 이상 아내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부부생활은 물론이거니와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일까, 아니면 밖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고민하던 아내는 남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담담하게 말한다.
“이제 나는 세속적인 것에 전혀 흥미가 없으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구려. 이대로 집에 머물러도 좋고, 아니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친정으로 가버려도 좋소.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사연은 이러하였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에서 크게 성공한 부상이었던 위사카(Visa-kha)는 어느 날 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듣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성과(聖果)를 얻게 되었다. 세속적인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위사카는 여성에 대한 욕망도, 음식에 대한 욕망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예전에는 그리도 사랑스럽던 아내이건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맛난 음식 또한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위사카는 아내 담마딘나에게 이런 상황을 전하며 이제 자신과 맺은 부부의 연에 연연해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얼마나 어이없고 허무한 일인가. 그토록 다정했던 남편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해 네가 어떻게 살아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남편의 큰 그늘 속에서 살던 담마딘나에게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내뱉듯이 한마디 던진다.
“당신이 필요 없다고 버린 것을 내가 얼씨구나 하고 집어 삼킬 것 같습니까?”
그녀에게 있어 재산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할 때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애정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떠나 출가하기로 결심한다. 남편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아니면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은 불법을 그녀도 접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뜻을 전해들은 위사카는 크게 기뻐하며 그녀를 황금 가마에 태워 비구니승가로 보내주었다. 아내의 출가를 기뻐하는 남편의 등 뒤에서 아마 아내는 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쓸쓸하게 눈물짓고 있었으리라.


인도 전역 순례하며 불법 전파


이렇게 해서 담마딘나는 비구니승가로 들어가게 된다. 불법에 대한 강렬한 갈망도 아닌, 불가피한 상황도 아닌, 필시 남편에 대한 원망 섞인 애정의 단절을 위해 입단했을 그녀였지만, 인연이 성숙해 있었던 탓일까. 입단 후 그녀는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적 드문 곳에 머물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고 단계적으로 성과(聖果)를 획득해갔다. ‘테리가타’에는 그녀가 최초로 경지에 올랐을 때 읊었다고 하는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최고의 경지를 향하여 의욕을 불태우며, 마음으로 이를 느껴야 한다. 욕망에 결박당하지 않는 자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라 불린다.”


머지않아 수행을 완성시키고 아라한이 된 담마딘나는 남편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라자가하를 향해 길을 나섰다. 진리를 체득한 기쁨을 함께 하고 싶었고, 또한 그들에게도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마도 이는 남편에 대한 응어리를 풀었기에 가능해진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깨달음을 얻어 심신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욕망을 버렸다는 말과 함께 자신도 함께 버렸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담마딘나의 출현에 위사카는 당황했다. 승가에 있어야 할 그녀가 고향을 찾은 것은 혹시 수행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환속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위사카는 자신의 염려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에게 교의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담마딘나의 지혜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담마딘나는 조금의 막힘도 없이 대답해 갔고, 이런 그녀를 보며 위사카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그 길로 부처님을 찾아 간 위사카는 담마딘나와 나눈 문답에 대해 말씀드리며 판단을 청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위사카야, 담마딘나는 현자이다. 담마딘나는 큰 지혜를 갖춘 여인이다. 만일 네가 나에게 물었다 하더라도 나 역시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이런 최대의 찬사를 받은 그녀는 비구니 가운데 설법제일이라는 평을 받게 된다.
이후 담마딘나는 인도 각지를 돌며 날카롭고도 적절한 법문으로 사람들을 교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높은 명성을 얻었다. 한때 담마딘나는 코살라국의 사왓티 교외에 있는 한 비구니승원에서 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그 근처에는 파세나디왕의 병사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국왕으로부터 급료를 받으며 언제 갑자기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없을 때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도박 등으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이로 인해 급료를 거의 모두 탕진하여 집에 들여 놓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의 아내들은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지도 못한 채 초라한 몰골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 담마딘나는 그녀들의 비참한 모습을 가엾이 여기며 급료 가운데 반드시 반은 저축하라고 가르쳤고, 병사의 아내들은 담마딘나에게서 배운 대로 저축을 했다. 그 결과 이들은 처참한 상황에서 벗어나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담마딘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비구니들을 식사 공양에 초대하기로 한다.


병사들이 초대의 뜻을 전하기 위해 담마딘나를 찾아가자 그녀는 그들에게 필요한 설법을 해 주었고, 설법에 감동한 병사들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평생 살생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식사 초대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담마딘나는 “부처님께서 지금 이 근처 기원정사에 계십니다. 먼저 부처님을 초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라고 권유했다.


수카 등 수많은 제자 길러내


이렇게 해서 병사들은 여름 내내 부처님을 비롯한 승가에 의식주, 그리고 약을 공양했다. 그 동안 많은 설법을 접하며 살생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다시금 확인한 이들은 수행자와 마찬가지로 물속의 미생물을 죽이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물을 걸러 마실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코살라국의 변경에 반란이 일어나자 국왕은 병사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신들이 이를 말렸다.


“왕이시여, 저 병사들을 보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연유인가?”
“병사들은 물조차 걸러 마실 정도로 살생을 꺼리고 있습니다. 작은 벌레조차도 죽이지 못하는데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왕이 병사들에게 사실 여부를 묻자, 병사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작은 벌레들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만, 왕의 법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변경에 도착하여 적을 만난 병사들은 모두 앉아 자심삼매(慈心三昧)에 들어갔다. 즉, 자애의 마음으로 상대를 완전히 감싸 안아 버린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적들은 완전히 전의(戰意)를 상실해 버렸고, 결국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채 코살라국의 병사들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파세나디왕은 크게 기뻐하며 포상을 두 배로 해주고 급료도 올려주었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놓인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설법을 통해 담마딘나는 많은 사람들을 교화해갔는데,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나 할까. 그녀의 제자들도 설법에 능통했다. 그 가운데서도 유명한 것이 숙카(Sukka-)이다. 숙카 역시 담마딘나처럼 라자가하의 양가에서 태어나 부유하고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처음 부처님이 라자가하에 오셨을 때 재가신자가 되었는데, 그 후 담마딘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출가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수행을 시작한 후 머지않아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의 설법은 신들도 칭송할 정도였다. ‘테리가타’에는 라자가하의 한 나무에 사는 신이 읊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이 게송이 전해진다.


“라자가하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꿀 먹은 벙어리들처럼 잠자코만 있을 뿐, 부처님의 법을 설하고 있는 숙카 비구니에게 왜 가지 않는가. 지혜를 지닌 사람은 감히 거역할 수도 없고, 질리지도 않으며, 저 맛 좋은 가르침을 들이마시나니. 마치 길 가는 나그네가 빗물을 마시듯….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한 남자의 그늘을 세상 전부라 여기며 살았던 귀부인 담마딘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남편은 그 그늘을 거두어갔지만, 현명한 담마딘나는 떠나버린 그늘에 매달려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미 세속적인 욕망의 덧없음을 알고 이를 버린 남편에게 있어 자신의 애정과 집착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지 그녀는 알았던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일은 남편에 대한 애착을 끊는 것.

 

▲이자랑 박사

그렇게 선택한 출가의 길을 통해 그녀는 넓고 넓은 세상에 법의 그늘을 만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설법을 통해 삶의 위안을 받았고, 그녀의 그늘을 나누어 받은 사람들은 또 다시 다른 이에게 자신들의 그늘을 나누어 주었다. 담마딘나로 인해 세상은 그렇게 시원해져갔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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