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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교와 자본주의의 동거 [하]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와 자본주의 동거는 충분히 가능
불교노동은 자아실현·중생구제 행위

이처럼 일정한 윤리규범에 부합하는 한 재산의 획득과 증식은 정당한 것이며, 나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성자에게 공양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럼, 근본적으로 불교는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박경준 교수와 종명 스님의 연구를 빌리면, ‘잡아함경’에서는 “종종(種種)의 공교업처(工巧業處)로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라.”라고 말한다. ‘숫다니파타’에서는 “밭갈이는 이리 이루어지고 감로의 과보를 가져옵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라고 말하였고, ‘유마경’의 ‘방편품’에서는 “법을 굳게 지키어 어른들과 어린이를 가르치며, 모든 생업의 경영이 순조로워 세속적인 이익을 얻지만 그것에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했으며, 또 ‘법화경’의 ‘법사공덕품’에서도 “그가 설하는 모든 법이 그 뜻을 따르되 모두 실상과 같아 서로 위배되지 않으며, 혹은 세상을 다스리는 말씀이나 생업을 돕는 방법을 설할지라도 모두 정법에 따르게 되리라.”라고 했다. ‘우바새계경’은 복전(福田)을 부모와 스승에 봉양하는 보은전,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는 공덕전, 가난한 자에게 시여하는 빈궁전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전에서 말하는 불교의 노동관은 자본주의 체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이란 (돌덩이의 땅을 쟁기로 갈아 기름진 밭으로 변화시키는 것에서 보듯) 인간 주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 앞의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를 자신의 의도대로 개조하고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루는 행위이자, (만원어치 밀가루와 계란과 이스트를 사서 빵 기계를 이용하여 천원짜리 빵 열세 개를 만드는 것에서 보듯) 생산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이자, (이 빵으로 굶주리는 자를 배부르게 하는 데에서 보듯) 타자를 자유롭게 하는 실천행위다.


불교의 노동관도 생활유지, 가치 창조, 자아의 실현, 사회정의 구현 행위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만, 세계 개조 부문만 빠져 있는데 이는 ‘보살본행경’에서 “재가자로서 정진하면 의식이 풍족하고 생업도 잘되어 멀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출가자로서 정진하면 온갖 수행이 성취된다.”라고 한 것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정진을 노동에 포함시키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를 종합하면, 불교에서 노동이란 생업을 영위하는 행위이자 무명과 미혹의 세계를 깨달음의 세계로 개조하여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 자아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 삼보에 시여하는 행위다. 이로써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불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을 하고 이를 통해 재화를 증식하는 길이 열렸다.


다음의 문제는 이는 이상형으로서 노동관이고,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양상과 타자를 착취하는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불교 안에서 해결하느냐는 점이다. 전자의 해결책은 유전문(流轉門)의 노동과 환멸문(還滅門)의 노동을 구분하는 것이다. 곧, 자본주의 체제는 무명과 욕망에 바탕을 둔 유전문의 노동을 강요하지만, 불자는 올바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팔정도(八正道)에 바탕을 둔 환멸문의 노동을 지향하는 것이다. 후자의 해결책은 연기론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을 늘리려는 욕망의 존재이고, 바로 이런 점을 잘 활용한 것이 자본주의 체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이지만, 또 연기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이 실은 이복형제임을 알면 싸움을 멈출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처럼 나와 다른 타자가 이복형제나 모자관계처럼 서로 연기되어 있음을 깨달으면 우리는 욕망을 스스로 버릴 수 있다.

 

▲이도흠 교수

결론적으로, 연기법을 깨달아 ‘욕망의 자발적 절제’를 통한 노동과 재산 증식이 불교와 자본주의가 동거할 수 있는 길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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