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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초의와 추사의 편지들

기자명 법보신문

차 품평에서 선불교에 대한 담론까지 다양

추사가 보낸 편지만 60통
신분과 시대 초월한 교류
신뢰와 애틋한 정회 담겨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완당전집’ 35신(위)과 36신(옆). 본지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추사의 친필 서간문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다인(茶人)으로 칭송되는 인물은 초의 스님과 추사 김정희이다. ‘완당전집(阮堂全集)’과 ‘벽해타운(碧海朶雲)’, ‘주상운타(注箱雲朶)’, ‘나가묵연(那迦墨緣)’, ‘영해타운(瀛海朶雲)’, 필자가 수집한 추사의 또 다른 편지 첩(帖)에는 초의를 향한 그의 깊은 신뢰와 애틋한 정회가 드러난다. 이 편지를 통해 그들의 정감어린 교유는 차와 불교를 통해 더욱 돈독해졌음이 확인된다.


그럼 지금까지 밝혀진 추사의 편지는 얼마나 될까. 현재까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완당전집’에 수록된 38통의 편지와 중앙박물관 소장본의 ‘나가묵연(那迦墨緣)’의 17통 편지이다. 하지만 ‘나가묵연(那迦墨緣)’에 수록된 편지 중 11통은 문집에 이미 수록된 것이고, 6통만이 문집 속에도 들어 있지 않는 새로운 자료라 알려졌는데, 아모레퍼시픽 박물관 소장본 ‘영해타운(瀛海朶雲)’이 세상에 알려짐에 따라 ‘나가묵연’의 미공개 자료로 알려진 6통의 편지도 이미 ‘영해타운’에 4통이나 수록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영해타운’은 추사의 편지 초고(草稿)로, 여기에 수록된 10통의 편지는 문집이나 ‘나가묵연’에 이미 수록된 편지였다.


최근 강남 소재 모 옥션에 ‘벽해타운(碧海朶雲)’과 ‘주상운타(注箱雲朶)’가 출품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는데 이는 실물 진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자료 중에 ‘벽해타운’은 이미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진 자료이지만 실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것. 더구나 ‘벽해타운’에 들어 있는 20통의 편지 중에는 알려지지 않은 편지는 6통이지만 초의가 일일이 편지를 받은 해의 간지를 표기했다는 점이 자료적인 가치를 더했다.
지금까지 ‘완당문집’에 수록된 추사의 편지는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 드물어 이들의 교유시기에 따른 정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한계점을 드러났던 터인지라 이 자료가 지닌 사료적인 가치는 대단한 것이다. 또한 ‘주상운타’에 수록된 9통의 편지에는 문집에 빠진 것이 3통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간찰첩의 사료적 가치는 초의의 후발(後跋)로 인해 입증되었다. 이로 인해 그가 추사의 편지를 첩으로 묶은 시기가 1862년 윤8월임이 확인되었고, 아울러 그가 추사의 편지를 첩으로 묶은 연유와 1830년 상경한 후 그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함께 밝혀졌다. 따라서 편지란 참으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임을 알게 한 계기였다.


한 통의 편지 속에는 보낸 이의 숨김없는 마음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보낸 이가 처한 상황이나 받는 사람의 삶도 여과 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간찰 속에는 실로 보낸 이의 내면세계와 인품, 문재(文才)까지도 가늠할 수 있고, 받는 사람들의 속내도 진솔하게 파악된다. 다시 말해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60여통의 간찰 속에는 유학자(儒學者)와 승려, 권세가와 천민(賤民)이라는 신분과 시대 상황을 초월한 통쾌한 자유인들의 인간애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편지가 지닌 독특한 세계이다.

 

추사, 샘물 감식안 출중
간화선 심취 사실 확인
해학적 차 요청도 눈길


‘완당문집’ 중 ‘여초의(與草衣)’ 36신(信)은 1853(癸丑)년 3월27일에 과지초당에서 보낸 편지이다. 이것은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쓴 것으로, 그의 달관된 삶의 여유가 잘 드러난다. 그 내용은 이와 같다.


어떤 승려가 와서 (초의의)편지도 받았고, 또 차 꾸러미도 받았습니다. 이곳의 샘물 맛은 관악산의 한 줄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두륜산 샘물과는 어느 것이 나은지 모르겠습니다만 (관악산)샘물의 품성이 열에 서넛쯤에는 들어 갈만합니다. 서둘러 보낸 차를 다렸습니다. 샘물도 좋고, 차품도 좋아 일단의 기쁜 인연이라 여겨집니다. 이것은 차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편지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니 차가 편지보다 좋다는 것인가. 또 근자에는 일로향실에 쭉 머문다고 하니 (다른)좋은 인연이 있는가요. 어찌 이런 저런 갈등을 깨 버리고 지팡이 하나로 (의지해) 멀리 와서 이 차의 (기쁜) 인연을 함께 하지 않으십니까. 게다가 요즈음에는 자못 참선의 선열에 대해 맛난 묘미를 느끼지만 이 묘체를 함께 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초의)스님과 더불어 눈썹을 치켜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 소망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강 졸서(拙書)가 있기에 부치니 거두어 주십시오. 좋은 차(雨前)는 몇 관이나 따셨습니까. 어느 때나 (차를)연이어 부쳐 주셔서 이 차에 대한 탐심을 진정 시켜주시렵니까. 날마다 바라고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僧來得草緘 又得茶包 此中泉味 是冠岳一脈之流出者 未知於頭輪甲乙何如 亦有功德之三四 試來茶 泉佳茶佳 是一段喜緣 是茶之使而非書之使 茶甚於書耶 且審近日連住一爐香 有甚勝緣 何不破除葛藤 一遠飛 共此茶緣也 且於近日 頗於禪悅 有蔗境之妙 無與共此妙諦 甚思師之一與眉 未知以遂此願耶 略有拙書寄副收入也 雨前葉揀取幾也 何時續寄鎭此茶也 日以企懸 不宣 癸丑 三月 二七日 老阮)


추사가 북청에서 해배된 것은 1852년 8월13일이다. 추사는 북청에서 해배된 후 7개월 만에 초의의 편지와 차를 받았다. 그는 차에 대한 감사의 정을 이 편지에 드러낸 것. 당시 추사는 과천에 살면서 차를 마시거나 참선을 하면서 소일하였다. 특히 그가 관악산 줄기에서 나오는 샘물로 초의차를 마신 후 이 샘물이 초의차와 잘 어울린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는 추사 또한 샘물에 대한 감식안이 출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그가 감별한 관악산 물이 좋은 물 3~4번째에는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즐거움을 초의와 함께 누리고 싶다는 것이다.

 

 

 

 


한편 이 편지에도 차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 편지를 보낸 시기가 음력 3월27일 경이므로 양력으론 대략 4월 말쯤이다. 초의는 입하(立夏)를 전후해 차를 따는 것이 좋다는 그의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추사가 ‘우전 차 잎을 몇 관이나 땄느냐’는 물음은 일창(一槍)이나 일창일기(一槍一旗)의 어린잎으로 고급차를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급차는 초의와 막역한 지인에게 소량으로 공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추사가 차의 단위를 관()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원래 이 글자는 ‘완당전집’의 ‘여초의’ 36신(信)에는 결락되었다. 필자의 수집 자료인 추사의 진묵 복사본을 통해 이 결락된 글자가 관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지게 된 것인데, 관()은 원래 관()과 통용된다. 관(?)의 뜻은 수레바퀴통을 휘갑한 쇠이니 둥근 모양임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초의차는 떡차뿐 만 아니라 잎차의 포장도 보이차처럼 둥글게 포장한 것은 아닐까. 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것은 아니다. 1830년 경 초의는 완호의 비명을 부탁하기 위해 신위에게 보림백아(寶林白芽)를 보냈다. 백아(白芽)는 흰 털이 드러난 차를 말하는 것이니 분명 일창이나 일창일기의 어린 차 싹으로 만든 차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시 고급차는 잎차로 만들고, 입하 후에 딴 거친 차로는 떡차를 만들던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추사가 말하는 우전차는 좋은 차, 혹은 고급차로 백아로 만든 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한편 그의 차에 대한 탐심은 초의차가 연이어 도착될 수 있을 때라야 그 욕심이 사라질 것이라는 대목에선 그의 걸명(乞茗)의 변이 얼마나 해학적이고, 진심인지가 여실히 드러나고, 그들의 차를 통한 우정은 선 수행의 경지가 원만했던 추사의 격이 더욱 높아지면서 우정의 결실이 더욱 빛나고 알차진 듯하다. 또한 추사의 선교(禪敎)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제주도 유배 시절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도 확인된다. ‘완당전집’35신의 편지 내용은 이렇다.


주림·종경 신편의 어록을 한번 와서 서로 증명해 보지 않겠습니까. 대혜의 공안을 타파하여 여온을 없애는 것도 크게 유쾌한 처사일 것입니다. 햇차는 몇 편이나 따서 만들었습니까. 남겨 두었다가 내게 주시겠습니까.(珠林宗鏡新編語錄 不欲一來相證耶 大慧一案打破無餘蘊 是大快處耳 新茗摘來幾片 留取將與我來耶)


이 편지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1841년에 초의에게 보낸 것이다. ‘법원주림(法苑珠林)’과 ‘종경록(宗鏡錄)’을 탐독한 추사가 초의에게 서로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을 토론해 보자는 법거량(法去量)인 셈. 추사가 읽은 ‘종경록’은 영명 연수(904~975)가 저술한 방대한 양의 불서로, 교종과 선종의 융화회통을 위해 교선일치를 주장한 영명연수의 선사상이 망라된 책이다. 그리고 ‘법원주림’ 또한 688년 도세가 편찬한 백과사전류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은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영향을 준 불서로 알려진다.

 

▲박동춘 소장

추사는 제주시절 이 불서를 유영(遊泳)한 것. 제주 유배 시절 추사의 선미는 이렇게 다듬어졌고, 곤란한 시절 그를 견디게 한 것은 초의차였다. 추사가 차를 통해 얻은 여유는 늘 차의 변치 않는 절대 가치이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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