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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남걀 왕조가 창건한 헤미스곰파

기자명 법보신문

왕실사원의 찬란함 간직한 ‘라다크의 보물창고’

 

▲라다크에서 가장 유명한 곰파인 헤미스곰파. 내부의 넓은 광장에서는 매년 6~7월 사이 쎄추라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그때가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과 라다키들이 몰려들어 곰파 안은 발딛을 틈이 없어진다.

 

 

라다크의 무수히 많은 곰파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을 고르라면 첫 손에 꼽히는 곳이 헤미스곰파다. ‘곰파 중의 곰파’라 불리는 헤미스는 라다크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곰파다. 덕분에 가장 유명하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며 부유한 곰파이기도 하다. 레에서 가까우면서도 이렇게 유명한 헤미스곰파 방문을 지금껏 미뤄 둔 것도 사실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곰파를 일찌감치 보고나면 그 뒤에 만나게 될 곰파들이 시시해 보이지 않을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담백하고 정겨운 이야기를 세세히 찾아낼 만큼 깊이 있는 안목을 자신할 수 없으니 이런 잔꾀를 사용한 셈이다.


레에서 남동쪽으로 50km여 떨어진 헤미스곰파로 향하는 길, 맛있는 음식을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는 것 같은 설렘과 동행한다. 추수 끝낸 보리밭 사이를 한 참 지나 길은 정면에 버티고 있는 산을 향해 돌진이라도 하듯 곧장 골짜기로 이어진다. 원래 ‘곰파’란 ‘고독한 은둔자’라는 뜻이다. 찾는 사람도 많지 않고, 찾아오기도 쉽지 않은 곳일수록 수행의 성취도 높아진다고 믿는 라다키들은 외딴 오지, 접근이 어려운 지형을 찾아 곰파를 세웠다. 하지만 헤미스곰파는 라다크의 다른 곰파들처럼 산 중턱이나 꼭대기가 아닌 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다만 워낙 깊숙한 계곡 속에 자리 잡고 있어 곰파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끝나는 곳 깎아지른 산 아래,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헤미스곰파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듯한 사격형의 육중한 벽면에 장식된 창문이 줄지어 있는 전형적인 티베트 스타일의 건축물인 헤미스곰파 외관은 마치 요새나 성같이 보인다.


헤미스곰파는 17세기 셍게남걀왕이 부탄에서 초청한 삼부타나 스님에 의해 세워졌다. 까규파의 한 지파인 드룩파의 중심 사원으로 이 종파를 지지했던 냠걀왕조의 지원 속에 곰파는 크게 번성했으며 그 이름을 따서 이 지역도 헤미스로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헤미스곰파가 유명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의 예수와 관련이 있는데 1950년 이집트 나그하마디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에 따르면 12~29세 사이 인도를 여행했던 예수가 헤미스곰파 인근지역에서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33세에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동굴에서 3일간의 치료를 받고 다시 이곳을 찾아 상당기간 머물렀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큰 규모의 곰파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곰파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헤미스곰파 인근이 유서 깊은 수행처였다는 뜻이다.


관광객 사로잡는 곰파의 여름축제


하지만 이보다 헤미스곰파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다. 티베트불교의 성자인 파드마삼바바의 탄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헤미스곰파의 축제는 라다크지역의 여러 곰파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쎄추라 불리는 이 축제에서는 사원의 스님들이 가면을 쓰고 ‘참’이라 불리는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선신이 악신을 무찌르는 내용을 춤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불교가 이 지역의 여러 토착신앙들을 조복시켰으며 사람들 마음속의 악을 무찔러 선이 승리했음을 상징한다.


특히 쎄추 때에는 평소 볼 수 없던 대형 탕카가 공개돼 이를 보기위해 많은 라다키들이 헤미스로 모여든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주장하는 이 탕카는 헤미스곰파의 건물 전면을 뒤덮을 만큼 거대하며 탕카 곳곳에 진주와 보석 등이 장식돼 있다고 한다. 쎄추는 라다크 여행의 최적기인 여름 6~7월(티베트력 5월) 사이에 열리기 때문에 겨울에 열리는 여느 곰파들의 축제와는 달리 여행객들이 대거 몰려 성황을 이루곤 한다. 쎄추는 원래 1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원숭이해에 열렸지만 축제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늘어 나며서 최근에는 매년 열리고 있다. 그래도 원숭이해에 열리는 축제가 가장 규모도 크고 성대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쎄추를 보기위해 축제 기간에 맞춰 라다크와 헤미스곰파를 방문한다. 하지만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으니 일행은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헤미스곰파에는 높이 12m의 파드마삼바바상이 봉안돼 있는 법당도 있다.

 


헤미스곰파 입구는 역시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지만 인도 전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 그리고 성지순례 중인 듯 보이는 스님들도 적지 않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곰파로 들어선다. 곰파 내부는 커다란 광장을 가운데 두고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1층은 모두 긴 회랑으로 연결돼 있고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들은 하나같이 정교한 나무 조각으로 장식돼 있거나 널찍한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화려하고 장엄하기가 어느 왕가의 궁성 못지않다. 헤미스곰파의 내부 역시 화려하다. 36개의 커다란 나무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중심 법당 듀캉, 헤미스곰파 역대 고승들의 모습을 조성해 봉안한 라캉, 그리고 높이 12m의 거대한 파드마삼바바상이 조성돼 있는 법당 등 들어서는 곳곳 눈을 땔 수 없는 보물창고 같다. 무엇보다도 법당 내부를 장엄하고 있는 아름다운 벽화들과 즐비하게 걸려있는 크고 작은 탕카들은 전성기 티베트불교, 라다크불교의 위용과 장엄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중심법당 듀캉에는 많은 스님들이 동시에 법회를 볼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하루 종일 둘러본다 해도 이 커다란 곰파를 다 살펴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헤미스곰파의 박물관을 놓칠 수는 없다. 왕조의 후원을 받았던 사원답게 헤미스곰파에는 왕실에서 조성하고 보시한 각종 공예품과 탕카들을 다수 소장돼 있다. 이런 보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헤미스곰파의 박물관은 지난 2007년 문을 열었는데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또 박물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입구에는 카메라를 비롯해 각종 소지품을 보관해 놓는 사물함까지 있다. 모든 짐을 입구에 맡겨놓고 간만에 가뿐한 몸으로 박물관에 들어선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첨단 장비나 시설을 갖춘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만큼 빛바랜 탕카, 각종 법회에서 사용되었을 각종 의식용 불구, 왕실에서 보시한 순금 장신구 등이 즐비하다. ‘라다크에서 가장 부유한 곰파’라는 설명 속에는 헤미스곰파에 전해지고 있는 이런 보물들도 포함돼 있는 듯 하다.


일행 보다 앞서 헤미스곰파에 들어선 사미니 스님 5명과 박물관 안에서 다시 마주쳤다. 스님들은 박물관 안에 전시돼 있는 불상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모든 불상과 탕카를 향해 차례차례 예불을 올리고 있다. 불상과 탕카만도 100여점은 족히 넘을 텐데, 예불을 모두 끝내려면 무척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스님들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 지극한 신심과 정성어린 모습을 한 참 지켜보다 그들을 향해 합장하고 박물관을 나선다.


박물관에서도 예불하는 스님들


▲성지순례 중인 사미니 촘마들. 스님들은 곰파 안의 모든 부처님에게 예불을 올렸다.
외국인들에게 헤미스곰파는 라다크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임이 분명하다. 반면 헤미스곰파의 축제를 보기위해 이곳을 찾았던 외지인들 중에는 이런저런 불평을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외국인들은 마치 쇼 관람을 하듯 멋대로 의식을 방해하기도 하고 스님들은 그런 관광객들에게 은근히 보시를 강요한다는 불만도 있다. 지나치게 관광지화돼서 곰파 고유의 수행 분위기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런 지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는 여름 한 철이 지나면 곰파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히말라야산맥에 산재해 있는 드룩파계열 곰파 200여 곳과  1000여 명 스님들의 본산이자 라다키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곰파로 말이다. 앞으로 헤미스곰파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박물관의 부처님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 라다키들의 그 신심이 살아있는 한 헤미스곰파가 관광지로 전락해버리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감히 장담해 본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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