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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본주의 모순과 대안으로서 불교-3

기자명 법보신문

‘중도’는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
경제행위 위해선 연기 이해도 필수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선 것은 다음 호로 미루고, 이번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을 모색하자. 이는 재산을 증식하면서 삼업(三業)을 짓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소외는 사물과 인간을 교환가치로 대체하는 데서 비롯한다. 마땅히 팔정도를 지켜 정념(正念)을 이룰 일이다. 정념에 도달하여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면 교환가치에 얽매여 일어나는 탐·진·치도 사라진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에 있다. 홀로 수행할 때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시장체제에 얽혀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교환가치에 이끌리고, 이는 이기심과 탐욕을 낳고, 결국 소외를 야기한다. 이 경우 내 앞에 교환가치가 침투하지 못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만날 때 이해관계를 떠난 도반으로 만나고, 재산증식을 하면서 타인에 대한 영향을 따져보고,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모든 관계를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불자임에도 사람을 득실을 따져 만나고 이기심과 탐욕을 앞세워 재물을 부리는 이는 마음의 중병을 앓는 이다. 이런 면에서 수행과 경영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며, 사찰 재정의 운용은 재가불자들에게 맡기고, 모든 재정을 사부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이 좋다.


불자가 재물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중도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나쁘지만, 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멀리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중아함경(中阿含經)’, ‘치혜지경(癡慧地經)’에 “재물은 지혜와 선업(善業)의 증거이고 결과이며 지혜가 있어서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선해야만 재물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내가 지금 돈을 잘 버는 것은 많은 선업을 쌓은 과보이며, 지혜롭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돈과 사람을 부린 결과이다. 반대로 재물에 집착하면 고통을 낳고 악업을 쌓게 된다. 지금 선업의 증거로 돈을 잘 벌더라도 그를 좋은 곳에 쓰지 않으면 악업을 짓게 되어 후생이 편하지 않다. 돈을 버는 일과 쓰는 일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일정량은 보시해야 한다. 보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단, 스님들도 중도를 취하여 너무 많은 액수의 보시는 거절해야 한다.


경제행위에서 필요한 것은 연기에 대한 깨달음이다. 내 호흡만으로도 내 얼굴 앞 대기의 미생물이 살고 죽으며, 그리 달라진 대기가 내 몸에 영향을 미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이 서로 조건이 되고 작용한다. 그를 잊고 자기만 살려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금융위기를 맞았고, 급기야 99%의 저항이 일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나와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는 타자를 위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의 차원에서는 “기업은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 인권, 노동, 지역사회 등을 고려한 사회적 성과를 얻어야 존립근거를 갖는다.”에 입각한 ‘영리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이 요청된다.


시장주의자들은 규제와 간섭을 없애고 자유롭게 놔두어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자기조절을 하여 자원배분을 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을 실체로 본 데서 비롯된 망상이다. 시장은 다른 시장, 국가, 기업, 은행, 생산자와 소비자와 연기관계다. 무수한 연관관계 속에서 한 쪽의 야만과 탐욕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견제가 사라지면 서로 야만과 탐욕을 부추기게 된다.

 

▲이도흠 교수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야만과 탐욕을 견제하던 장치, 정의의 원칙을 모두 규제로 몰아 해체하였다. 이의 귀결은 금융위기와 대공황의 유령이다. 반면에 연기론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서로가 서로의 역동적인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정의의 원칙 을 지키면서 경제행위를 한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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