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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악마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10.17 14:53
  • 수정 2011.10.17 14:56
  • 댓글 0

미국.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다. 이른바 ‘친미사대주의 세력’이란 비판이 나돌 만큼 미국에 대해선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에게 미국은 삶의 나침반이다.


그런데 보라. 바로 그 미국에서 그것도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점거 시위는 오늘의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이 땅의 언론들은 경찰 당국에 강경 대응을 살천스레 주문하면서 언제나 미국 경찰을 보기로 들었다. 미국선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불법 행위를 저지를 때 총을 쏜다고 부르댔다. 그 거친 논객들은 지금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점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더구나 월스트리트의 시위대가 내건 구호들은 파격이다. 무람없이 “자본주의는 악마다”라고 외친다. 왜 그런 소리가 나왔는지는 미국 금융가를 조금만 짚어보아도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08년 9월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파산 또는 그 직전의 금융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7천억 달러의 세금을 투입했다. 한국 돈 840조 원(2011년 10월 현재 1달러 1200원 기준)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다. 2011년 대한민국 전체 예산의 2배가 넘는다. 그 돈이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세금을 받아 살아난 금융 회사들은 곧이어 황당한 잔치를 벌인다. ‘연합뉴스’가 보도했듯이 2009년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는 직원 1명당 각각 59만 달러(한화 7억 원)와 46만 달러의 보너스를 뿌렸다. CEO들의 연봉은 더 어벌없다. JP모건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2010년 기본급과 스톡옵션을 포함해 2천80만 달러를 받았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00억 원이 넘는다. 뉴욕멜론은행의 CEO 로버트 켈리 또한 2011년 8월 물러나면서 1천720만 달러를 챙겼다.


어떤가. 왜 “자본주의는 악마”라는 구호가 나왔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미국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조차 “솔직히 말해 시위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러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제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옳다. ‘자본주의’란 문자 그대로 자본이 중심인 사회라는 말인데 그것을 불편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자본주의라는 말은 가장 보수적인 세력에서도 무람없이 나오고 있다. 가령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이자 국회의원인 정몽준은 2천억 원 사재를 출연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공인 자본가가 인기가 없어 자본주의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그의 사재 출연은 대선을 의식한 행보임에 틀림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공인 자본가”라는 그의 인식이다.


물론, 곧장 ‘악마’를 쫓아내자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자본주의를 폐절한 그 다음 사회의 구체적 운영 방식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시위는 부질없는 일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지적했듯이 수십 명 수준으로 농담처럼 시작된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각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다.

 

▲손석춘 언론인

가령 한국 사회에서 이미 쟁점으로 부각된 보편적 복지국가도 그 길에 있다. 그 어떤 종교보다 탐욕을 경계해온 불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제 또렷하게 선을 그을 때가 아닐까.

 

손석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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