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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태국 불교…탁상 행정에 복구는 까마득

  • 해외
  • 입력 2011.10.20 09:47
  • 수정 2011.10.26 14:15
  • 댓글 0

수코타이 등 78개 불교유적 150여개 주요 사찰 수해
유네스코세계유산 아윳타야도 2주째 물에 잠긴채 방치

 

▲아윳타야 유적 중 최대 사찰인 왓 프라시 산펫의 한 파고다가 홍수로 밀려든 물에 잠겨 있다.

사진 제공=피 찰라룩

 

 

온통 물난리다. 어떤 이는 16년 만에 겪는 큰물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30년 만이라고도 한다. 태국 76개 주 가운데 58개 주가 물에 잠겼다. 10월 18일 현재, 사망자만도 307명에 이르고 2백만 명 넘는 이들이 집을 잃었다. 경제 손실은 6조원 대에 이르러 올 해 경제성장율 1~1.7%를 까먹을 것이라고 한다.

 

홍수와 정치, 물난리판에 혼란스런 태국 정치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기껏 다섯 달 남짓한 정치 경력을 지닌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는 국가재난사태를 끌어갈 지도력을 보이지 못한 채 눈물을 보였다. 홍수를 관리해야 할 책임자인 내무장관 용윳 위차이딧(Yongyuth Wichaidit)은 지난 8월 큰물이 갈 때 사태를 다잡지 못해 일찌감치 뒤로 밀려났고, 대신 법무장관 쁘라차 쁘롬녹(Pracha Promnok)과 과학기술장관 쁘롯쁘라솝 수랏와디(Prodprasop Suraswadi)가 ‘투톱’으로 나섰지만 전문성 부족에다 힘겨루기까지 겹쳐 분란만 키워놓았다. 게다가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자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니 홍수 정보도 홍수 관리도 홍수 대책도 모조리 따로 논다. 한 마디로 이빨도 맞지 않고 신발도 맞지 않는 꼴이다. 과학기술장관이 “방콕은 안전하다.”고 밝히면 법무장관이 “방콕은 위험하다.”고 뒤집는 식이었다. 그 결과 지난 17일 정부가 “방콕, 홍수 위험 없다.”고 밝힌 뒤 두어 시간 만에 최대 공단지역인 나와 나꼰(Nava Nakorn)을 비롯한 방콕 북부가 물에 잠겼다.

 

시민들은 아우성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홍수 정보 탓에 대피와 귀가를 되풀이하는가 하면 생필품 사제기로 동네 가게들은 바닥났다. 정부 방송들은 하루 종일 구호품 보급 현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피해지역 주민들은 저마다 먹을거리도 입을 옷도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래저래 사람들은 이번 물이 머잖아 불을 불러올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 가운데 불교 유적과 사찰들도 물난리를 겪고 있다. 문화부 종교국은 치앙마이(Chiangmai), 수코타이(Sukhothai), 아윳타야(Ayutthaya)를 비롯한 전국 78개 불교 유적지와 150여개 주요 사찰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특히 유네스코(UNESCO)가 세계유산에 올린 아윳타야는 치명타를 입었다. 왓 차이와타나람(Wat Chaiwatthanaram), 왓 프라 람(Wat Phra Ram), 왓 프라 시 산펫(Wat Phra Sri Sanphet) 사찰을 비롯해 아윳타야의 거의 모든 유적이 2주째 물에 잠긴 상태다.

 

근데, 정부도 시민사회도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다. 아윳타야 유적이 해마다 물에 잠기기를 되풀이했던 탓이다. 정부는 해마다 물에 잠기는 아윳타야를 놓고 해마다 떠들썩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다음 해에 또 어김없이 아윳타야는 물에 잠겼다. 해마다 2m 웃도는 큰물이 가는 아윳타야 유적 보호 대책이란 게 기껏 눈가림용 모래주머니로 드러나곤 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똑 같은 일을 되풀이해 왔다. 문화부 예술국 홍보관 시띠뽄 붑파(Sittiporn Bubpha)는 “관련 부서들끼리 손발이 맞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예산이 없어 근본 대책을 세울 수 없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온갖 포풀리즘 정책으로 돈이 천지에 날아다닌다는 태국 정부에서 저마다 예산 타령만 하고 있다. 지상 최대 불교국임을 자임해 온 타이고 보면 해마다 물에 잠기는 불교유적과 사찰을 자연재해로만 흘려 넘길 수 없는 까닭들이다.

 

유네스코도 마찬가지다. 1991년 아윳타야를 세계유산에 올려놓고는 근본적인 대책이나 지원 없이 해마다 큰물이 올 때쯤이면 호들갑만 떨었다. 올 해도 그렇다. 이미 물에 잠긴 아윳타야 유적을 놓고 이제 와서 조사단을 파견한다느니 난리를 피우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봐 왔던 문화유산 침수를 놓고 뭘 또 조사하고 말고 할 일이 있다는 건지!

 

 

▲아윳타야 지역은 이번 홍수로 인해 2주가 넘도록 물에 잠겨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위가 2m에 달하고 있다.

사진 제공=피 찰라룩 

 

 

큰물은 좀체 가실 기운이 없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2~3주쯤 비가 더 내릴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만조가 겹치는 28~30일 위기설이 퍼지고도 있다. 아윳타야를 비롯한 유적들이 어떻게 올 해를 넘긴다고 해도 문제는 내년이고 또 그 다음 해다.

“근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7백년 묵은 문화유산 아윳타야는 우리 세대에서 운명을 다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고.”

 

저명한 역사학자 찬윗 까셋시리(Charnvit Kasetsiri)가 수십 년 동안 입이 닳도록 했던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태국 사람들이 즐겨 쓰는 속담에 “창 따이 탕 뚜아 아우 바이 부아 삣 마이 믿."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풀면 죽은 코끼리를 연꽃잎으로 살릴 수 없다는 건데, 이건 큰 실수나 문제가 드러나면 숨기려 하지 말고 나서서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란 뜻이다. 아윳타야 유적 보호를 위해 지금 타이 정부와 시민사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불교계도 태국 불교유적과 사찰 복구에 마음을 모아볼 때다.

 

태국 방콕=정문태 특파원·국제분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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