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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이 아쉬운 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10.24 14:45
  • 수정 2011.10.24 14:53
  • 댓글 0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무리 더러워도 더러운 줄 알기 어렵고, 아무리 나쁜 짓이어도 나쁜 짓인 줄 알기 어렵다. 심지어 남들이 ‘나쁜 일’이라고 비난하거나, 법적으로 금지된 것에서조차 나쁜 짓임을 느끼기 어렵다. 가령 위장전입을 하는 것이나 남의 돈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뜯어내는 것, 남의 명의를 빌어 금융거래를 하거나 이름을 조작하여 자식에게 증여나 상속을 하는 것이 일상사만큼이나 빈번한 사람들은 그런 일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최근에 이명박이 수십억의 경호실 예산을 들여 아들 명의로 내곡동에 집을 사주었다가 들통 난 사건을 보면서 그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 공기 속에서 살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십억의 국가예산으로 아들에게 집을 사 준 것이나, 거기 동원된 방법, 투기적 성격 등 모든 것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더구나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서까지 이럴 거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그것이 드러났을 때 이명박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한 마디로 “뭐가 문제인데?”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미국에서 그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자, 한국은 “시끄러운 나라라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뻔뻔스러움이 단순한 후안무치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이명박은 자신들이 역사 이래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정부”라고 말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박장대소하게 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가 그런 말을 입에 올릴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반대로 자신이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곡동 집 사건의 경우에도, 그게 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뻔뻔스레 반박하거나 변명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하고 분노하는 엄청난 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단지 후안무치나 뻔뻔스러운 심성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뻔뻔함 이전의 무감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 그것은 그것이 그들이 늘 하던 일이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가 문제인데? 늘 하던 일인데 말야. 다들 그렇게들 하고 살잖아?’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장관 등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부터 매번 보고 듣던 말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 ‘자그마한’ 불법이나 ‘사소한’ 비리에도 놀라 소리를 지르는 “시끄러운” 사람들과, 엔간한 것에선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짓이 일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거야 어디나 있을 수 있는 것일 게다. 불행은 ‘사소한’ 불법과 비리가 일상인 사람들이 통치하고 지배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정도차이는 있지만, 이 또한 어디나 그럴 것이다. 다만 두려운 것은 5년 내내 이런 꼴을 보다 우리들마저도 새로운 일상이 된 이런 사실들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위선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진경 교수

일상이 된 것은, 아무리 불법적이고 나쁜 일이어도 이렇듯 자각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은 하이데거 말대로 ‘섬뜩함(unheimlichkeit)’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의 일상 전체가 자기를 등지게 만드는 어떤 사건이 있지 않고선 어렵다. 백일 이상을 거리에서 떠들고 항의하는 ‘시끄러운’ 소음으로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섬뜩함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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