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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은둔의 궁전 스톡팔레스

기자명 법보신문

왕이 사라진 궁은 할머니 다락 같은 추억의 창고였다

 

▲ 1825년 건립된 스톡팔레스는 10여년 후 왕국을 잃고 셰이팔레스를 떠난 라다크왕조의 마지막 궁전이 되었다. 80여개의 방을 갖고 있는 이 궁전은 비교적 잘 보존, 관리되고 있지만 웅장한 규모에 비해 쓸쓸한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셰이팔레스가 라다크왕조 전성기의 산물이라면 지금 찾아가는 스톡팔레스는 저물어가는 왕조의 마지막 피난처다. 1825년 세워진 이 여름궁전은 10여년 후 나라를 잃고 셰이팔레스에서 쫓겨난 왕실가족들의 은신처이자 마지막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러니 왕실의 궁전으로 영화를 누린 시기보다는 한때 왕족이었던 이들이 살고 있는 ‘여염집’으로 더 오래 사용된 셈이다.


외침에 흔들리는 왕국의 황혼기를 예감했는지 궁을 지은 체왕 톤둡 남걀왕은 몇 겹의 산자락이 둘러싸고있는 후미진 산비탈 아래, 망명자의 은신처와 같은 곳을 궁전 터로 잡았다. 왕국의 중심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통치자의 의지를 드러내기보다는 복잡한 속세에서 한발 물러나 전쟁의 격랑이 지나기를 기다리기에나 어울릴 자리다. 그나마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어 짐짓 위용을 부리는 듯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팔레스’라는 화려한 어감보다는 ‘고독한 은둔자’라는 뜻의 ‘곰파’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린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철탑, 5층 건물인 스톡팔레스의 높이와 맞먹는 높이의 위협적인 철탑이 옥상에 떡 하니 세워져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아마도 위성방송이나 통신용 전파 송수신을 위한 안테나인 듯하다. 꼭 필요해 설치한 것이겠지만 스톡팔레스를 짓누르고 있는 철탑이 눈엣 가시처럼 보인다.


망명자에게나 어울릴 외딴 계곡


그래도 왕이 지은 집이니 그 규모는 남다르다. 스톡팔레스에는 무려 80개가 넘는 방이 있다. 내부에는 왕실 법당도 있다. 하지만 관광객에게 개방되는 것은 4, 5개 뿐이다. 그래서인지 스톡팔레스는 라다크를 찾은 외지인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닌 듯 하다. 일행이 도착하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여직원 한 명이 앞장서서 안내하며 굳게 잠겨있던 내실의 자물쇠를 하나씩 열어 준다. 관광객이 올 때만 문을 열어 주는 듯 하다. 방문하는 이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궁전의 내부는 전시실 형태로 꾸며져 있다. 왕족들이 사용하던 각종 장신구와 의상, 왕관과 무기 그리고 왕실의 일상에서 사용하던 그릇, 가구 등 다양한 생활 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각각의 물건은 왕족의 생활에 어울릴법한 고급스러움을 갖추고 있지만 허용과 권위보다는 정교함이 더 돋보인다. 궁전의 내부도 웅장하고 화려하기보다는 실용성이 우선인 듯 적당한 크기의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가장자리에는 작은 토기의 화분들이 나란히 놓여 있어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눈길을 끄는 것은 벽에 걸린 흑백의 사진들이다. 근대 라다크왕조의 왕과 왕비들의 사진, 혹은 왕실 가족사진들이다. 전통 라다크식 모자를 쓰고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돼 있는 외투를 입고 있는 여인은 아마도 왕비나 왕의 어머니인 듯 싶다. 손자를 안고 있는 왕실 여인의 얼굴에는 근엄함 보다 평범한 할머니의 미소가 머물고 있다. 예쁜 딸아이를 안고 있는 왕은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이고 왕비는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틀어 올렸을 뿐 여느 집의 부모들과 다를 바 없이 편안하고 소박하다.


방문객을 안내하며 문을 열어주는 직원은 전시실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카메라에 손만 갖다 대어도 금세 쫓아와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손짓을 한다. 덕분에 전시돼 있는 유물과 사진들을 느긋하고 꼼꼼하게 살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왕실유물과 전시실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는 고사하고 전시 유물에 관한 설명서 하나 변변히 붙어있는 것이 없는데 오직 눈으로만 보고 기억하라니 답답하고 야속한 생각이 든다.


서너 개의 전시실을 둘러보고 마지막에 들어선 곳은 궁전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왕실 전용 법당이다. 이곳에서는 오직 왕과 왕비만이 참배와 기도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법당의 규모는 예상외로 작고 소박하다. 그래도 천장을 이층 높이로 올리고 사방에 창문을 내어 답답한 느낌은 없다. 법당 내부엔 탕카가 줄지어 걸려있는데 앞서 사원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교해 보아도 더 크고 화려함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보릿가루를 반죽해 만든 탑 모양의 공양물과 버터로 만든 꽃도 더 크고 정교하다. 법당에서 홀로 경을 읽고 있던 스님도 오랜만에 방문객을 맞았는지 잠시 독경을 멈추고 일행과 눈인사를 나눈다. 비교적 젊은 스님인데 이곳 법당에는 스님이 딱 두 명 뿐이란다.


전시실 내부에서는 일체 찍을 수 없다던 사진도 이곳에서는 찍을 수 있다. 이곳에 걸려있는 탕카와 벽화, 불단에 올라있는 각종 공양기와 불구들은 조금 전 전시실에서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왕과 왕비의 전용 법당이라는 설명에 기대를 했는데 여느 곰파의 법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실망스럽기보다는 라다크왕조의 단면, 오늘의 모습이 투영돼 있는 듯해 발걸음이 조금 무겁다.


공개하지 않는 다른 방들의 굳게 닫혀있는 출입문과 창문도 깔끔하다. 창문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만들어진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깔끔한 커튼의 화려한 색만으로도 제법 잘 꾸며진 방임을 짐작케 한다. 비록 사람이 상주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 잘 관리되고 있음이다.

 

 

▲ 라다크왕조의 마지막 궁전인 스톡팔레스 내부는 여염집처럼 소박하다.

 


스톡팔레스에는 방문객을 위한 테라스까페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망이 좋은 궁전 외벽 쪽 난간에 간단한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 음료수 정도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음료수를 주문하지 않아도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궁전 맞은편에 길게 펼쳐져 있는 라다크의 거친 산맥과 궁전 아래 펼쳐진 보리밭의 싱그러운 조화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여름시즌에만 가능하겠지만. 산맥과 산자락들이 둘러싸고 있어 탁 트인 전망은 아니지만 추수를 끝낸 보리밭과 조금씩 누렇게 변해가는 낙엽들의 조화가 시작되는 겨울 시즌 초입의 풍경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좀 스산한 감도 없지 않다. 궁전 주변으로 마을이나 가정집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이 쓸쓸한 풍경을 부추기는데 한몫 거들고 있다. 나라 잃은 왕이 살고 있는 ‘옛 궁전’ 옆에 다스림 받을 백성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겨울이면 이 풍경이 더욱 삭막해질 텐데, 겨울이 긴 라다크에서 아무도 없는 계곡을 바라보아야했을 스톡팔레스 주인의 심정이 참으로 외로웠겠다. 하지만 어쩌랴. 권력 잃은 왕은 이래 저래 외로운 법이다.


드러나길 원치 않는 왕실의 물건들

 

 

 

왕족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영화와 힘의 단면을 보여주는 옛 유물들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톡팔레스의 그것들은 그저 찾아오는 이들에게 슬며시 보여는 전시물이 되었을 뿐, 당당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은둔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톡팔레스라는 안내판을 붙이고 몇 루피의 입장료를 받고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는 것은 왕조의 이름을 기억시키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왕족이 살았다는 설명과 그들이 사용했다는 유물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스톡팔레스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기분은 여느 가정집의 다락방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가 시집 올 때 입고 오셨다는 옷과 어머니의 어머니가 사용하셨다는 그릇과,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등등이 쓰거나 만드셨다는 무엇무엇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그것들을 그래도 정성껏 정리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다락방 한쪽 구석 말이다. 장엄한 역사의 감동 보다는 그냥 ‘그땐 그랬지’하는 정도의 추억이 묻어나는 딱 그런 공간이다.


어느 시골 종가집의 옛 살림살이 같은 스톡팔레스를 나서며 자연스럽게 다음 일정이 정해진다. 진짜 가정집을 가보는 것이다. 스톡팔레스로 오기 전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홈스테이’ 안내판을 보았다. 라다크 전통 가옥을 보전하고 있는 집인데 라다키들의 전통생활 방식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다고 한다. 무채색의 흑백 사진 같은 옛 왕조의 그림자만 살펴보는 것보다 땀 냄새, 사람 냄새 배어있는 라다키들의 생활 모습, 그리고 그들이 보존하고 있는 조상들의 역사를 만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다. 스톡팔레스를 뒤로하고 서둘러 마을로 향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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