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초의 스님의 제다법
29. 초의 스님의 제다법
  • 법보신문
  • 승인 2011.11.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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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따면 약성이 안 차고 늦게 따면 신묘함이 없다

어느 시기에 차 따는지가
명차 만드는 첫 번째 관문
초의는 곡우 때 딴 차보다
입하 이후를 적기로 간주

 

 

▲ 초의차는 차를 따는 시기에서 덖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중국과는 다른 한국적 특징이 도드라진다. 사진은 필자인 박동춘 소장이 초의차를 재현하고 있는 모습.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제공

 


제다(製茶)란 차를 만드는 전 과정을 말한다. 차 만들기의 첫 공정은 잎을 선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이에 앞서 어느 시기에 차를 따야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채다(採茶) 시기의 적합성은 명차(名茶)를 만들 수 있는 첫째 관문이다. 초의 스님은 ‘동다송’에서 채다 시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차를 따는 시기는 (알맞은) 때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차를) 너무 일찍 따면 (차의) 약성이 차지 않고, 늦게 따면 차의 신묘한 기운이 사라진다. 내가 경험해보니 우리나라 차는 곡우를 전후해서 따면 너무 이르다. 입하가 지난 후에 따는 것이 가장 좋다. 차를 따는 법은 밤새도록 구름이 없고 이슬이 흠뻑 내린 날, (차를) 따는 것이 가장 좋고, 한 낮에 따는 것은 그 다음이며, 흐리거나 비가 내릴 때에는 차를 따지 않는 것이 좋다.
(採茶之候 及時爲貴 太早則茶不全 遲則神散 驗之東茶 穀雨前後太早 當以立夏候爲及時也 其採法 徹夜無雲露採者爲上 日中採者次之 陰雨下不宜採)

 

채다 시기의 결정은 차의 진미(眞味)를 드러낼 수 있는 차 잎을 얻는데 있다. 예로부터 곡우(양력 4월20일)는 절기상 가장 좋은 찻잎을 얻을 시점으로 여긴 것. 이는 장원의 ‘다록(茶錄)’을 인용한 것이지만 곡우를 전후하여 딴 차는 명차의 대명사로도 칭송되었다. 하지만 차가 나는 지역의 기후조건이나 차밭의 위치에 따라 찻잎이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초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후기 채다 시기를 입하(양력 5월6일) 이후가 적합하다는 그의 견해를 드러냈다. 특히 그가 차 따는 날의 일기를 강조한 것이 눈에 띤다.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기운을 흠씬 받은 튼실한 찻잎, 즉 새벽이슬을 흠뻑 머금은 찻잎을 으뜸으로 친 것은 찻잎의 산화를 막으려는 지혜를 드러낸 것이다. 한낮에 딴 찻잎은 세심한 관리가 요구되는데, 조금이라도 방관하면 찻잎이 산화된다. 차의 신선한 맛과 맑은 향과 빛깔을 중시했던 당시로서는 붉게 산화된 찻잎은 차의 색과 맛을 둔탁하게 만드는 요인이라 여겼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 딴 찻잎으로 만든 차는 색향이 탁해질 뿐 만 아니라 맛 또한 무겁고 둔탁하다. 따라서 비오는 날의 채다는 올바른 채다법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김명희의 ‘다시(茶詩)’에는 채다의 오묘한 이치를 깊이 이해했던 초의의 찻잎 다루기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초의스님 갑자기 우전차를 보내와(草衣忽寄雨前茶)/ 죽피에 싼 (매 발톱처럼 어린잎으로 만든) 차를 풀어 보았지(包鷹爪手自開)/ (차를 마신 후) 답답한 번뇌 씻어주는 공효, 이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消壅滌煩功莫尙)/ 차를 마신 공효가 어떻게 이리 빠른가(如霆如割何雄哉)/ 노스님 찻잎 가리기, 마치 부처 고르듯(老僧選茶如選佛)/ 일창일기, 엄격한 법도를 지키네(一槍一旗嚴持律)/ 더구나 오묘한 차 덖기, 원통을 얻었으니(尤工炒焙得圓通)/ 향기로운 맛을 따라 바라밀에 드네(從香味入波羅蜜)


산천도인 김명희(山泉道人 金命喜, 1788~1857)는 김정희의 아우로 초의와 교유했던 인물이다. 그가 말한 우전차는 가장 좋은 차를 의미할 뿐 곡우에 딴 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채다 시기를 입하를 지난 후가 가장 적합하다는 초의의 견해가 있으므로 곡우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에게 보낸 초의차는 산차(散茶: 잎차)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대흥사와 만덕사,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만들어진 차의 종류는 다산 정약용의 ‘다산계절목(茶信契節目)’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곡우에 여리디 여린 차를 따서, 덖음 차 한 근을 만들고(穀雨之日 取嫩茶 焙作一斤)/ 입하 전에 늦게 딴 차로는 병차 두 근을 만들어(立夏之前 取晩茶作餠茶二斤)/ 이 잎차 1근과 병차 두 근을 시와 함께 부친다(右葉茶一斤餠茶二斤與詩同付)


이 절목은 다산이 해배되어 강진을 떠나면서 제자들과 맺은 다신계의 내용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눈차(嫩茶)로 잎차를 만들고, 늦게 딴 차는 병차를 만들어 보내라는 약조를 맺은 것이다. 다산은 차의 애호가로, 일찍부터 차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차에 심취된 것은 아암 혜장의 배려로, 고성암에 머물면서 차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척박했던 강진 유배시절, 체기가 심했던 그는 차를 다려 병을 다스렸고, 적소의 답답한 울화를 차로 달랬다. 한편 그가 말한 눈차는 일창일기(一槍一旗)로, 죽순처럼 생긴 어린 차 싹을 말한다. 막 피어난 여린 차 싹으론 엽차를 만들고, 입하 이전에 딴 늦은 차는 쪄서 병차(餠茶; 떡차)를 만들라는 것. 엽차는 산차를 말하는데, 이런 차는 어떻게 만들까. 초의 스님의 ‘동다송’에서는 산차의 제다 공정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덖음차 백미는 뜨거운 온도
섭씨 300~350도 유지해야

차 잘 덖어야 효능 극대화
깊고 세게 비벼야 ‘초의차’


새로 딴 차에서 묵은 잎을 가려내고(新採揀去老葉)/ 솥이 뜨거워지면 차를 덖는다(熱鍋焙之)/ 솥이 몹시 뜨거워지면 차를 넣고 급히 덖는데(候鍋極熱 始下茶急炒)/ 불을 늦춰서는 안 된다(火不可緩)/ 차가 다 덖어지면 꺼내서 대자리에 놓고(待熟方退 撤入中)/ 가볍게 둥글리며 여러 번을 깊게 비벼(輕團枷數遍)/ 다시 솥에 넣고 점점 불을 줄여가며 건조시킨다(復下鍋中 漸漸減火)/ 차를 덖고 말리는 데에는 법도가 있고(焙乾爲度)/ 그 가운데 오묘함이 있어 말로 드러내기는 어렵다(中有玄微難以言顯)

 

솥은 차를 덖는 무쇠 솥을 말한다. 매우 뜨거워진 무쇠 솥의 온도는 대략 섭씨 300~350도이다. 뜨거운 온도에서 급히 차를 덖어내는 것은 덖음차의 백미이다. 초의 스님 차 만드는 경지는 다삼매(茶三昧)라 칭송되었는데, 이는 차를 덖을 때의 몰입된 상태, 즉 일미선경(一味禪境)을 말한다. 한편 초벌 덖음은 솥이 매우 뜨겁기 때문에 대나무로 만든 솔을 이용하여 차를 덖어낸다. 이때 불의 온도는 섭씨 300~350도 내외를 유지 시켜야 한다. 차가 익어지는 상태에 따라 불의 온도는 조절한다. 이때 화부와 차를 덖는 이의 호흡이 일치 되어야 성공적인 첫 덖음을 완성할 수 있다. 사실 초벌 덖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차의 품질이 결정된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

그렇다면 차는 왜 덖는 것인가. 이는 찻잎이 지닌 생기, 즉 독성을 제거하여 사람이 마셔도 좋은 차를 만드는데 있고, 더 내밀한 의미는 차의 효능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따라서 너무 오래 덖으면 차 맛의 탈력이 떨어지고, 맑고 시원함을 잃게 되는데, 초벌 덖음에서 불을 늦추지 말라는 것은 이를 염려해 한 말이다. 초의차를 만드는 공정은 중국차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의 제다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뜨거운 온도에서 빨리 덖어내는 것이라든지, 깊고 세게 비벼낸 것은 중국의 제다 공정과 다른 점이라 여겨진다. 이는 초의차가 한국의 풍토에 알맞은 제다법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해의 ‘초의차(草衣茶)’는 초의 제다법의 차별성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맑은 첫 곡우, 아직 피지 않은 노란 찻잎을(따서)(穀雨初晴日 黃芽葉未開)/ 깨끗한 솥에 넣고 정밀하게 덖어서, 밀실에서 잘 말리네(空精炒出 密室好乾來)/ 측백나무 그릇 둥글게 묶어 대나무 껍질로 포장했고(栢斗方圓印 竹皮苞裁)/ 단단히 외기 막아 꼭꼭 쌌으니 찻잔에 가득 차향이 감도네(嚴藏防外氣 一椀滿香回)


초의차가 매 발톱처럼 생긴 어린 차였음은 김명희의 ‘다시’에서도 언급되었거니와 범해의 ‘초의차’에서도 아직 피기도 전의 어린 차 싹, 다시 말해 일창(一槍)의 응조(鷹爪)였음이 분명하다. 정성을 다해 만든 초의차는 분명 덖음 차이고, 산차(散茶; 잎차)이었다. 특히 그의 제다 공정 중에 밀실에서 말린다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중국 제다법과 차별화된 공정으로, 온돌방에서 다시 재건(再乾)했음을 드러낸 셈이다.

 

▲박동춘 소장
이를 통해 초의차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가 점차 독창성을 이룩해 가는 것처럼 온돌 문화권이었던 한국의 생활환경을 응용한 특성을 드러냈다. 바로 이것이 초의 제다법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의의 제다법은 한국성을 함의한 차로, 그의 제다에 대한 고뇌와 노력은 후대로 전해져 한국 차의 근간이 되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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