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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챤나

기자명 법보신문

싯다르타 출가 지켜보며 삭발염의 발원한 마부

아만심으로 장로마저 무시…승단불화의 원인
부처님 끝없는 자비에 잘못 깨닫고 용맹정진

 

 

▲삽화=김재일 화백

 


부처님의 10대 제자, 그 가운데서도 2대 제자로 꼽히며 부처님과 동료 수행자들로부터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던 것은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였다.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 챤나는 달랐다. 챤나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종종 비방했고 본인들을 앞에 두고 당돌한 충고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는 부처님이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을 때 함께 했던 사이요. 부처님과는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란 말이요. 아시겠소? 그런데도 당신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부처님의 최고의 제자인양 행세하는데, 앞으로는 주의하시오.”


그랬다. 챤나는 싯다르타태자가 카필라성을 넘을 때 함께했던 마부였다.


출가를 결심하고 때를 기다리던 싯다르타태자는 어느 날 새벽 “지금이야말로 세속을 떠나 위대한 출가를 감행할 때”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서는 “거기 누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마침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던 챤나는 대답한다.


“챤나입니다.”
“이제 나는 세속의 삶을 떠나 위대한 출가를 감행하고자 한다. 내게 말 한 마리를 준비해 다오.”


태자의 명을 받은 챤나는 마구를 가지고 마구간으로 갔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구간에서는 기름등이 향기롭게 타오르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태자의 애마 칸타카를 발견한 챤나는 마구를 채운다. 전승에 의하면 사냥이나 유원지에 갈 때의 느낌과는 달리 더없이 튼튼하게 채워지는 마구의 느낌에 칸타카는 태자의 출가를 직감했고 기쁨을 억누를 길 없어 소리 높여 울었다고 한다. 그 목소리는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웅장했지만, 태자의 출가를 방해할 것을 우려한 신들이 그 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하여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리풋타·목갈라나에게도 비난


챤나가 칸타카를 데리고 오자 싯다르타는 칸타카에 올라타 성을 나선다. 챤나는 칸타카의 고삐를 쥔 채 조용히 따라갔다. 얼마나 갔을까. 눈앞에 강이 나타났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챤나에게 물었다.


“이 강의 이름은 무엇이냐?”
“왕자님, 아노마라고 합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나의 출가 역시 지고(至高)한 것(아노마)이 될 것이다”며 칸타카의 등에서 내려 은빛으로 빛나는 모래언덕에 서서 말한다.
“챤나야, 너는 내 장신구와 칸타카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출가하려 한다.”


챤나가 “왕자님, 저도 출가하고 싶습니다”라며 함께 할 뜻을 보였지만, 싯다르타는 거절하며 “챤나야, 부모님께 내가 무사함을 전해다오”라고 부탁했다. 챤나도 더는 어쩔 수 없어 예를 표한 후 발걸음을 돌렸다. 전승에 의하면 칸타카는 싯다르타와 챤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아, 이제 더 이상 주인님을 만날 수 없단 말인가”라고 슬퍼했고, 싯다르타가 챤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출가자의 모습으로 저 멀리 사라지자 슬픔을 참지 못한 채 울부짖다 가슴이 찢겨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33천(天)의 주처에 칸타카라는 이름의 천자(天子)로 재생했다고 한다.


챤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이었다. 왕자님이 떠나버렸다는 슬픔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왕자님의 애마이자 자신이 아끼던 칸타카까지 떠나버린 것이다. 챤나는 쏟아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며 왕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그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특히 태자비인 야소다라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챤나에게 대신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어떻게 왕자님을 남겨두고 너만 올 수 있단 말이냐.”


그 후 몇 해가 흘렀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어 카필라성을 다시 찾았고 이때 챤나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다.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그런데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때 함께 했다는 기억은 그에게 자부심을 넘어 교만심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입단 후 그의 교만은 나날이 심해졌고, 사리풋타나 목갈라나와 같은 훌륭한 수행자들까지 깔보며 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챤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종족인 사캬족도 아닌 사리풋타나 목갈라나가 부처님의 신뢰를 받으며 주변으로부터 마치 후계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수행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챤나를 불러다 조용히 타이르셨다. 교만한 챤나였지만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렬했기에 그는 공손하게 부처님의 충고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 뿐…. 또 다시 챤나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비방하고 다녔고 직접 충고를 늘어놓기도 했다. 부처님은 또 다시 불러다 주의를 주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충고와 챤나의 악행이 반복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챤나의 언행은 개선되지 않았다. 부처님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부처님 역시 자신의 출가를 도왔던 챤나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챤나가 열심히 수행하여 하루 빨리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처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단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날마다 일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챤나의 언동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심지어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스러워졌다. 다른 수행자들이 아무리 잘못된 행동이라 말하며 충고해도 챤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기는커녕, 다른 수행자들을 경멸하고 질문을 받아도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거나 침묵을 지키며 대꾸하지 않는 등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수행자들을 곤란하게 했다. 챤나 비구는 율을 어겨 갈마를 통해 힐문 당하는 자리에서도 “누구에게 죄가 있는가? 무엇이 죄인가? 어디에 죄가 있는가? 어찌하여 죄인가? 당신들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라며 반론을 거듭했다. 궤변을 늘어놓는 행동을 문제 삼자 이번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어뇌타계(異語惱他戒)’가 제정되기도 한다. 이어(異語)란 질문이나 충고에 대하여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으로, 방금 전에 한 말을 다시 뒤집어 다른 말을 늘어놓거나 궤변을 설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챤나의 행동은 바일제죄의 대상으로 정해져 금지되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은 채 이전처럼 행동하며 다른 스님들을 난감하게 했다. 사실상 바일제죄란 본인의 참회만 있다면 언제라도 출죄(出罪)할 수 있는 것으로 강력한 제재력은 없다. 챤나는 정말 승단의 골칫덩어리였던 것이다.


일체 대응않는 ‘범단법’ 첫 대상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쇠한 부처님의 입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아난다는 고민하다 이렇게 묻는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챤나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스스로 그렇게 존경하는 부처님의 충고에도 나쁜 행실을 고치지 못하는 챤나이다. 부처님이 입멸하신다면 그의 악행이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한 일. 아난다는 앞날이 걱정된 것이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아난다야, 내가 입멸한 뒤에도 만약 챤나가 계속 계율을 어기는 등 나쁜 행동을 한다면, 장로들은 찬다에게 범단법(梵壇法, brahmadaṇḍa)을 실행해라.”


범단법이란 평소 다른 비구들을 무시하고 거친 말과 행동을 일삼거나 율을 어겨 징계갈마를 받으면서도 그 갈마에서 이루어지는 정식 힐문에 대해서조차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여 다른 스님들을 괴롭힐 경우 부과되는 갈마이다. 바로 이 챤나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난다가 범단법의 내용을 묻자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챤나 비구가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나 비구들은 그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훈계해서도 안 된다. 교계해서도 안 된다.”


부처님이 챤나를 위해 내린 극약 처방은 ‘대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챤나가 무슨 말을 떠들어대든 대꾸도 하지 말고 잘못을 일깨워주기 위해 가르침을 주고자 애쓸 것도 없다는 의미이다. 승단의 규율도 지키지 않고 지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챤나. 동료수행자들은 더 이상 그를 승단의 구성원으로 대우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일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결코 그를 쫓아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왜일까?


“부처님, 챤나는 거칠고 난폭한 성질을 지녔습니다”라며 주저하는 아난다에게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의 힘을 빌려 함께 챤나의 죄를 물으라고 하신다. 부처님의 입멸 후, 아난다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챤나 비구를 찾아가 범단법을 실행했다. 그러자 챤나는 당황하며 “아난다 존자여, 이는 저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수행자들이 제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고, 훈계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니….” 너무나도 큰 절망감에 챤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챤나는 그 동안 자신의 행동을 깊이 참회했고,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의도가 빛을 발한 것이다.


잠든 처자식의 얼굴을 뒤로 한 채 출가의 길을 나서야만 했던 싯다르타의 단호하지만 고독했을 그 여정을 함께 했던 챤나. 그는 분명 부처님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자랑 박사
그 기억으로 인해 챤나의 마음속에 한때 교만심이 독버섯처럼 자랐지만, 부처님의 부재와 마지막 남긴 극약 처방은 그에게 혜안을 열어주었다. 부처님과의 만남, 아니 챤나의 경우는 오히려 부처님과의 헤어짐이 더 절실하고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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