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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조성택 교수, 김광식 박사 반박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1.11.25 10:36
  • 수정 2012.12.11 10:17
  • 댓글 0

“김 교수의 민족불교론 문제점은 협소한 시야”

근대 한국불교인들 모습 담아내기엔 역부족
김 교수의 역사인식이 오히려 오리엔탈리즘

 

▲조성택 교수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가 본지<11월23일자>를 통해 “조성택 교수의 민족불교론 비판이 조계종의 정체성을 흔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김광식 교수의 비판을 반박하는 기고문을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김광식 교수는 자신의 ‘민족불교론’을 비판적 검토한 내 논문에 대한 반박의 글을 최근 ‘법보신문’에 기고하였다. 이 글은 김광식 교수의 ‘반박’에 답하는 일종의 재반박문이다. 이미 논문을 통해 ‘민족불교론’에 입각한 김 교수의 근대한국불교사 인식의 문제점과 한계를 충분히 지적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상세하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김 교수가 내 논문을 오독하거나 나의 입론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논지를 재론하려고 한다. 이하 단락의 각 번호는 김 교수의 반박문의 내용에 따른 순서이다.


1. 김 교수는 자신의 ‘민족불교론’이 “불교대중화론(생존 및 불교근대화)과 불교사회화론(전통수호, 민족독립)을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민족불교론’으로 근대불교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요컨대 불교대중화론(생존 및 불교근대화)+불교사회화론(전통수호, 민족독립)=민족불교론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말하는 ‘민족불교’는 불교근대화와 전통수호의 ‘합집합’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집합’을 의미하는 것인가? ‘합집합’이라면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불교근대화는 흔히 알려진 대로 ‘민족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혼성이나 이회광 같이 조선총독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인물들도 조선불교의 근대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교집합’이라면 ‘근대화’와 ‘전통수호’를 동시에 추구했던 그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야 할 것이며, 또 승려의 결혼을 근대적 불교개혁의 한 실천으로 주장한 만해가 어떻게 김 교수의 주장처럼 ‘민족불교’의 대표적 인물일 수 있는가?


김 교수의 ‘민족불교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협소한 시야 때문에 ‘근대’와 ‘전통’사이에서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불교의 방향을 모색하였던 근대한국불교인들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근대한국불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내러티브로서 ‘딜레마’ 개념을 제시하였던 것은 항일-친일 그리고 항일적 민족주의의 구도로는 잘 포착되지 않았던 근대한국불교의 다양한 모색과 고민들을 이해하고, 여기에 일정한 역사적 좌표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딜레마’ 개념은 근대한국불교의 한 측면인 항일 민족주의적 불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딜레마’ 관점으로 근대불교를 바라볼 때 근대기 한국불교의 한 축이었던 민족주의적 불교의 존재가 더욱 더 오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불교근대화(김 교수의 용어로는 ‘불교대중화론’)와 민족불교(김 교수의 용어로는 ‘불교사회화론’)는 김 교수가 주장하듯 쉽게 하나로 결합되기 어렵다. 그 둘의 관계는 일종의 딜레마적 관계였다. 그 딜레마의 원천은 식민자인 일본의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일본의 불교가 오랫동안 침체로 쇠약해진 한국불교에 비해 ‘근대화’되고 ‘선진적인’ 불교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선진적 근대불교의 한 모델로 인식되었던 일본불교를 따르자니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다보면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내가 딜레마적 관계로 제시한 ‘근대화’와 ‘정체성’에 대해 이 두 가지가 자신의 ‘민족불교론’ 가운데 “불교대중화론(생존 및 불교근대화)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는 심각한 오독이다. 내가 말하는 ‘정체성’이란 일본불교와 구분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으로 굳이 김 교수의 용어를 빌자면 그의 ‘불교사회화론’ 가운데 ‘전통수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미 언급한대로 나의 관점은 ‘근대화’와 ‘전통수호’가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불교인들에게는 일종의 딜레마적 상황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두 과제가 함의하는 긴장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두 과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소위 ‘민족불교’로 결합되는가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선언적으로 이 두 과제를 결합한 대표적 인물로 만해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만해의 대처 주장을 ‘민족불교론’의 틀에서 어떻게 자리매길 할 것인지 궁금하며, ‘국가주의 불교’를 반대하면서 ‘세계불교주의’를 지향하였던 만해의 불교인식을 어떻게 ‘민족불교론‘의 틀로써 담아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2. 김 교수는 나의 ‘민족불교론’ 비판이 “조계종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내가 논문에서 “조계종단의 민족불교적 자기 정체성은 20세기 한국불교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근대화라는 중요한 과제를 희생함으로써 얻게 된 부산물”이라고 한데 대한 반박인 것 같다. 조계종단이 그 성립과정에서 ‘왜색불교’ 추방과 ‘전통복고’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어떻게 조계종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김 교수는 “조계종의 정체성에는 민족불교 이외에도 통불교, 선불교가 있다. 그런데 조 교수는 이를 고려치 않고 조계종에는 민족불교만이 있는 것처럼 단정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내가 혼란스럽다. 민족불교, 통불교, 선불교는 동일한 범주의 개념들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언급한다고 해서 나머지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내가 민족불교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통불교, 선불교를 부정한다고 하는 김 교수의 주장은 어떤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더구나 위의 문장에 이어서 “이는 결과적으로 민족불교 비판은 조계종의 비판이 되고, 조계종은 비판받아 마땅한 종단으로 볼 여지가 농후하다”라고 하는 문장은 의미전달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그 논리도 해괴하다. 악의적 왜곡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무언가 곡해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조계종의 민족불교 정체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조계종은 비판받아 마땅한 종단으로” 보게 되는 결과인지 궁금하다.


3. 김 교수는 ‘근대불교’와 ‘근대기 불교’를 구분해야한다는 나의 제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조 교수 입론에는 서구중심적, 오리엔탈리즘 의식이 있다고 본다. [중략] 조 교수는 ‘근대불교’적인 역사서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근대불교’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혹여 조 교수가 미국유학에서의 경험과 한국불교/조계종단의 시대흐름에 반하는 행태로 조계종단을 반근대적인 불교, 후진적 불교로 보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은가?” 아마도 내가 조계종단을 ‘전통복고’의 반근대적 성격의 종단이라고 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박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전통복고의 반근대적인 것’을 그대로 ‘후진적’인 것과 등치하고 있는 김 교수의 역사인식이 오히려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미 서구 및 일본 불교학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발표했거니와 ‘전통’을 후진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나에 대해 “미국유학에서의 경험” 운운하면서 “민족의 수호를 경시하는 코즈모폴리턴적인 의식은 없는지 궁금하다”라는 식의 발언에 대해서는 참으로 실망스러울 뿐,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근대불교’와 ‘근대기 불교’를 구분해야한다고 제안한 배경에는 근대한국불교가 한국사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불교사의 일부라는 점을 고려하는 ‘세계불교사’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 말 이후 스리랑카 불교 및 동남아 불교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그리고 구미에서의 불교를 함께 조망할 때 전근대의 전통적 불교와 구분되는 불교의 근대적 전환과 변용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4. 내가 제안한 딜레마론에 대해 김 교수는 “논자는 조 교수의 ‘딜레마론’을 사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특정의 상황을 이해하는 미시적인 수식어이다. 역사 해석의 기묘한 감상이다”라는 등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표현으로 비판 하지만 정작 그 비판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에게 “조 교수가 비판만 하지 말고,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의 관점으로 구체적인 역사 서술을 하기를 바란다”라며 충고하고 있다. 나는 이미 원고지 150매 정도 분량의 논문을 통해 김 교수의 ‘민족불교론’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적 관점 또한 제안하였다. 그리고 선후배 동학들의 질정과 의견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근대한국불교사에 대한 진지하고 열정 있는 토론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대불교사에 누구보다도 오랜 연구를 해온 김 교수도 지면이 한정된 신문이 아닌 학술적 논문으로 나의 입장을 비판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학술적 논쟁이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상대방의 논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반박의 논지를 정확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논지와 상관없는 사실이나 확인 되지 않는 추측을 언급함으로써 논쟁을 소모적인 것으로 이끌어서는 안 되며, 상대방에 대해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용어나 표현도 삼가 해야 한다.


향후 보다 나은 학술적 논쟁이나 대화가 있기를 기대하며 김 교수의 반박문에 등장하는 부적절한 표현을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김 교수는 내 논문을 두고 “도발적인 논문을 발표하였다”라고 언급했다. “도발적”이란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논쟁적’ 성격의 학술적 논문에 대한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김 교수는 “조교수는 조계종에 칼날을 대지 말고 태고종단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칼날이라니?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라면 단어가 전달하는 의미에 무감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조계종이 아닌 태고종단을 비판하라는 김 교수의 ‘주문’이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조계종단의 현재적 모습을 비판하는 발언을 많이 한 것은 한국불교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이다. 그러나 ‘칼날을 대는’ 비판은 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반박문의 곳곳에서 나의 논문이 “감정적” “단정적” “자의적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그 구체적 예를 들어주면 좋겠다. 구체적 예시 없이 동료 학자의 글에 대해 그런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해석은 열려있는 공간이다. 하나의 해석만이 유효하거나 한 사람의 역사가가 독점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역사해석의 개방성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논문 “근대한국불교사 기술의 문제: 민족주의 역사기술에 대한 비판”(‘민족문화연구’, 53호, 2010, 12)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이 재반박문도 같은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항일 민족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역사 이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근대기 특히 식민시기 동안 다기 다양했던 불교계의 모색과 시행착오를 ‘딜레마’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딜레마’는 근대한국불교사 전체를 조망하는 하나의 틀이며 상황을 이해하는 구도일 뿐, 근대기 동안의 불교와 관련된 개인의 삶이나 개별적 사건 하나하나를 ‘딜레마’의 관점으로 이해하거나 또 그 산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도 개인은 항상 어떤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개인의 ‘선택’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역사적 이해의 배경으로서 당시 한국불교가 처했던 상황을 딜레마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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