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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마지막 길

기자명 법보신문

의식 멀쩡한데도 호흡기 떼라 강요
남 속여도 자기는 못속이는 게 수행

지난 주말 한 스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10월초에 입원하셨으니 불과 한 달 남짓 살다가 가신 셈이다. 스님은 한때 큰 절의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중앙종무기관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젊은 날 불문(佛門)에 들어 세수 70여 세에 이르기까지 삶의 대부분을 출가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그 스님의 마지막은 주변을 안타깝고 씁쓸하게 했다.
스님이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위암 말기였다. 온 몸에 암이 전이돼 손조차 대기 어려웠다. 스님에게 따로 상좌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평소 가까운 사이였는지 다섯 분의 스님과 두 분의 재가자가 병원을 찾아오고는 했다. 처음 위암이라는 진단에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려 당사자 스님은 “죽을 때가 되면 가는 게지”라며 의연한 듯했다. 담당 의사도 조용한 곳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하지만 딱히 갈 데가 없었는지 스님은 병원에 머물렀다. 며칠 뒤에는 은근히 수술을 했으면 하는 뜻을 전달해왔다. 담당 의사는 환자의 마지막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수술이 이뤄졌다.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수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수술로 자가 호흡이 어려웠던 스님은 부득이 인공호흡기를 부착해야 했다.


일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다. 스님과 함께 다니던 분들은 호흡기를 당장 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삼일이면 마무리를 하겠다”고 했다며, “그것은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진으로서는 난감했다. 환자가 수술을 원했던 것은 조금이라도 더 살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호흡이 어려워도 의식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병원비 걱정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 분들 요구대로 산 생명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로 의료진이라도 구속을 각오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었다.
나까지 나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많은 환자들이 있는 중환자실에서 입에 담지 못할 말들과 고성까지 오갔다. 당장 자신들이 호흡기를 떼겠다는 얘기도 했다. 같이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입장에서 난감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분들에게 독하게 말씀드렸다. “정 그렇게 원하시면 경찰 입회하에 호흡기를 뗄 테니 어느 분이 하시겠습니까? 단 그 분께서는 당장 수갑을 차셔야 하니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때서야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얼마 후 스님은 혼자서도 호흡이 가능해졌다. 호흡기를 뗀 스님은 며칠 전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냈는지 “내가 중환자실에서 죽을 뻔 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못 뜨고 말을 못했지만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행 중 한 분은 다시 스님에게 “더 이상 치료해도 가망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고, 끝내 스님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체 말을 하지 않았던 스님은 며칠 뒤 쓸쓸히 세상을 떠나갔다.


죽음은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수행자들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것도 삶 자체에 지극히 충실하려는 오랜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님이라고 모두 아름답게 떠나는 것이 아님을 종종 보게 된다. 세상을 속여도 자기 자신을 속이기는 어려운 것이 수행이자 마음을 다스리는 길임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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