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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멸죄(滅罪)

기자명 법보신문

많은 복 쌓아도 삼업 못 없애면 깨달음은 없다

역사적 실존으로 부처님의 육신 소멸돼도
법신 소멸되지 않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죄는 본래 자성 없어 마음따라 일어날 뿐
마음이 공해지면 죄업 또한 저절로 사라져

 

 

▲혜능 스님의 생가터에 세워진 국은사. 이곳에는 혜능 스님의 부친 노씨와 어머니 이씨의 합장묘가 있다.

 

 

선지식들아,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 소원을 세워 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부터 말없이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善知識 後代得吾法者 常見吾法身 不離汝左右 善知識 將此頓敎法門 同見同行 發願受持 如事佛故 終身受持 而不退者 欲入聖位 然須傳受時 從上已來 然而付於法 發大誓願 不退菩提 卽須分付 若不同見解 無有志願 在在處處 勿妄宣傳 損彼前人 究竟無益 若愚人不解 訪此法門 百劫萬劫千生 斷佛種性)

 

이번 장에서는 혜능 스님께서 깨달음을 함께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절에 다니는 우리들은 흔히 보살(菩薩)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여기서 보살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역입니다. 뜻으로 풀이하면 보디(Bodhi)는 깨달음, 사트바(sattva) 역사(役事)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안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밖으로 그 깨달음을 삶 속에서 실천해 가는 것을 뜻합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이를 위해 서원(誓願)을 세우고 원력(願力)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서원(誓願)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발원(發願)을 합니다. 부처님께 절 한번 드릴 때 마다, 향 한번 사룰 때 마다 발원은 빠지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이 되겠지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들이 가장 흔히 하는 발원이 가정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나와 직접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발원이 잘못됐다거나 그르다고만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발원이 참다운 서원이 되기 위해서는 발원의 크기를 확대해야합니다. 가정이 편안해지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가 편해지고 궁극적으로 모든 중생들이 편안해 질 수 있도록 발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원이 됩니다.


이런 치열한 서원 위에서 수행하고 그 수행의 결과들이 삶 속에서 중생의 행복으로 회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살 즉, 깨달음과 역사의 올바른 의미입니다. 혜능 스님은 무상(無相), 무념(無念), 무주(無住)를 통해 깨달음을 구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역사는 그대로 보살행입니다. 사실 우리가 불교를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그 과정이 바로 보살의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라는 뜻은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부처님의 육신은 소멸되지만 그 법신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육신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는 부처님의 유언과도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앨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과 관료와 스님들과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大師言 善知識 聽吾說無相頌 令汝迷者罪滅 亦名
滅罪頌 頌曰
愚人修福不修道 謂言修福而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業元來在
若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無造
若解向心除罪緣 各自性中眞懺悔
若悟大乘眞懺悔 除邪行正造無罪
學道之人能自觀 卽與悟人同一例
大師令傳此頓敎 願學之人同一體
若欲當來覓本身 三毒惡緣心中洗
努力修道莫悠悠 忽然虛度一世休
若遇大乘頓敎法 虔誠合掌志心求
大師說法了 韋使君官僚僧衆道俗 讚言無盡 昔所未聞)


복을 닦음을 작복(作福)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복을 닦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남을 위해 보시를 한다면 그 복덕은 한량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을 짓는 것이 그대로 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시 공양을 하면 그 복덕은 끝이 없을 것이지만 그것으로 탐진치(貪瞋痴) 삼독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복은 작복보다는 기복(祈福)에 가까울 것입니다. 아무리 복을 짓는다고 한들, 그리고 부처님께 복을 빈다고 한들 도를 깨우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 돈으로 하고 싶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완성이 되거나, 절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짓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특히 여기서 복을 짓는다는 의미는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와 같은 것이 아니라 기복에 가까운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을 짓더라도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혜능 스님께서는 무상(無相), 무념(無念), 무주(無住)를 통해 마음 속 번뇌 망상을 완전히 털어버려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참회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본래 성품인 진여자성, 또는 청정한 불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죄가 소멸되는 것입니다. 즉 중생심이 완전히 탈각되고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앞서도 밝혔지만 남을 위해 보시하고 복을 구하는 것이 수행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 속 삼독을 없애 본래의 부처님 성품이 드러내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또한 본질적임을 혜능 스님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표 호불황제(護佛皇帝)였던 양 무제가 자신의 엄청난 불사(佛事)를 자랑하며 공덕을 물었을 때 달마대사께서 ‘공덕이 없다’고 한 것도 깨달음 즉 도의 차원에서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독경할 때마다 접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풀이하면 죄는 본래 그 자성이 없어서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만약 마음이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진다. 죄의 마음 모두 없애 다 공해지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참회다라는 뜻입니다. 혜능 스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의 의미를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한 게송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즉 무심(無心)이 되면 죄도 또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가 사라지면 바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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