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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차원의 사회적 담론은 있는가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12.12 16:18
  • 수정 2011.12.12 16:22
  • 댓글 0

종교를 비교해서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옳지 않을 뿐더러 당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더구나 종단이든 재가모임이든 불교의 고갱이와 달리 아집으로 인한 갈등이 툭툭 불거지고 있기에 이 글을 쓰기까지 망설임이 더 컸다.


하지만 쓰기로 했다. 듣그럽겠지만, 천주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불교 종단들이 배울 게 있어서다. 기실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다른 종교와의 열린 대화는 바람직한 미덕이기도 하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달리 신자들이 지며리 늘어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한국 천주교회는 2011년 12월 4일부터 10일까지를 제1회 사회교리주간으로 선포했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사회교리 주간에 천주교의 모든 교구들은 전국에 걸쳐 신자들에게 사회교리를 보급하는 행사와 교육을 시행한다. 천주교의 사회교리는 1891년 고황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발표한 뒤 100여 년 넘게 축적되어온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명문화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회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회칙이다. 두루 알다시피 바오르 2세 교황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회칙은 시장경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고 있다. 회칙은 “국제 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개별적 국가들에게 있어서 자유 시장은 재원을 배치하고 욕구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고 일단 긍정한다. 그런데 곧이어 선언한다. “그러나 시장으로 충족되지 않는 인간 욕구들이 있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 않고 그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랑과 정의의 엄격한 의무이다. 궁핍한 사람들이 지식을 얻고, 상호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재원과 능력들의 힘을 증가할 수 있는 재질과 적성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동등한 상품들의 교환 논리에 앞서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삼은 사회교리의 회칙은 나아가 “온 인류의 공동선”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가. 무분별한 시장경제 체제,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천주교 사회교리는 명백히 비판적이다.


회칙은 “인간의 노동과 인간 자신이 단순한 상품이 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할 필요성을 거듭 호소하고 있으며 달성해야 할 목표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정의 생활을 위한 충분한 임금, 연로와 실직에 대한 사회 보장, 노동 조건들의 적합한 규제“가 그것이다.


나는 지금 그 교리의 여부를 따따부따하고 싶지 않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이야기는 불경에서도 얼마든지 꺼내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넘겨도 좋을까? 전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천주교가 현대 사회에 맞는 교리를 지며리 다듬어 그것을 한국 사회에서도 명문화 해 사회구성원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는 현실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은 종교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그런 사람들이 천주교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에 대해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이나 영혼 구원과 관련된 사회질서에 관해 윤리적 판단을 내릴 소임이 있다”고 규정한 교회법을 들어 반박했다. 여기서 ‘교회’를 ‘종교’로 바꿔도 문맥은 통한다.


새삼 천주교의 사회교리를 소개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동안 법보신문을 통해 조계종단 차원의 사회적 담론 생산을 곰비임비 촉구해왔지만 감감해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종단 연구소가 무슨 담론을 내놓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손석춘

담론을 생산해 그것을 종단 차원의 교리로 차곡차곡 정리해가는 모습을 종단에 기대한다면 너무 과욕일까? 아니, 천주교의 사회교리를 들어 자극을 주고 싶은 간곡한 마음조차 과연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손석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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